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정말 강산이 달라졌다.
지리산 바래봉 능선의 '철쭉 지도'(?)가 달라진 것이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덕두산~바래봉~부운치의 철쭉 화원의 규모가 처음 세간에 알려졌던 1990년 당시보다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다.
철쭉 군락과 목초가 뒤덮고 있던 그 환상의 능선이 지금은 잡목 등으로 엄청나게 잠식이 된 상태다.
더구나 파란 초원 위에 양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듯한 형상의 철쭉 군락이 있던 곳에 지금은 다른 수종의 나무를 바둑판처럼 심은 계획조림도 해놓았다.
그러니 바래봉 철쭉의 장관이라는 것도 지난날과는 동떨어진다.
필자는 지난 5월22일 정령치에서 서북능선을 따라 바래봉을 찾았다.
분홍빛 물결의 철쭉 화원, 녹색의 융단인 드넓은 목초지, 그리고 한가롭게 노니는 하얀 면양떼들...
이런 삼위일체의 환상을 그리며 십수년만에 찾은 바래봉은 그러나 지난날 필자에게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 그 환상적인 정경이 아니었다.
1990년 4월22일, 5월13일, 5월20일 필자는 세 차례에 걸쳐 바래봉을 포함한 서북능선을 찾았다.
세 차례 모두 그 상황이 기막히게 달랐다.
한번은 비가, 한번은 안개가, 그리고 또 한번은 바람이 얼마나 신비로운 조화를 빚어내던지!
무엇보다 규방의 색시를 선보듯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친 그 환상적인 철쭉의 화원이라니!
필자는 졸저 '지리산 365일'과 '지리산 1994' 등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지리산 8경의 하나인 세석고원의 철쭉을 단연 압도하는 '철쭉의 능선'이 지리산에 따로 있다.
이 환상의 철쭉 능선이 일반 등산객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꽁꽁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숲속에 가려 있는 것이 아니라, 철조망을 둘러쳐 막아놓았다. 4킬로미터 가량의 능선 일대를 빈틈없이 가느다란 철망으로 막아놓고 있다.]
왜 철조망을 둘러놓은 것일까?
덕두산~바래봉~부운치 능선 약 4킬로미터 구간은 국립종축장 남원지원(운봉목장)이 면양을 방목하는 목장이었던 때문이다.
면양떼를 보호하고 다른 짐승과 등산객의 출입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쳐두었던 것이다.
목초지의 너비는 능선의 지형에 따라 좁게는 100여미터, 넓게는 수백미터에 이르렀다.
바래봉 일대가 철쭉 화원의 장관을 연출하게 된 것도 전적으로 면양 방목에 따른 것이었다.
면양들은 식성이 왕성하여 잡목들 먹어치웠다. 그러나 철쪽나무는 독성이 있어 입을 대지 못 했고, 그래서 바래봉 일대 방목장에는 목초지 위에 철쭉 군락이 양떼처럼 자리했다.
그 모양이 어쩌면 장독대를 여기 저기 흩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이 세월이 십수년이나 흘러 또 강산이 변한 것이다.
국립종축장 남원지원에서 면양떼를 산 위로 올려보내지 않게 되었다.
바래봉 능선에서 면양떼의 모습이 아주 사라졌다.
면양떼를 보호하던 철조망도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철조망이 사라지고 어느 사이 잡목이 목초지를 현저하게 잠식한 것이다.
철쭉의 환상적인 정경도 십수년 전과는 견주기가 어렵다.
화원의 규모부터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바래봉의 철쭉 지도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
면양을 방목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바래봉의 '그림'이 이렇게까지 달라지는가 보다.
바래봉 철쭉에서도 우리가 읽어야 할 역사가 있으니...
노고단 모임에 오시지 그러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