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년의 다발적인 지리산 산사태는 지구의 온난화 등 기후변화적 측면이 강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집중강우 현상이 자주 일어났던 동부 지리산권에 산사태가 집중된 것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여기다 연약지반과 지질, 급경사 등 산사태 요인을 죄다 충족하고 있다는 관계 전문가들의 주장에 대해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리산의 산사태와 사람의 발길은 전혀 무관한 것일까?
그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에 의한 자연파괴가 산사태를 촉발한 사례도 없지 않은 것이다.
태풍 매미로 지리산 곳곳이 찢겨나갔다. 특히 지리산 북부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에 엄청난 상처를 입혔다.
한 마을이 통째로 쏠려내려가다시피 하여 대피령이 내려진 곳들이 있었다.
견성골 하류와 같이 계곡이 강처럼 깊고 넓게 패이기도 하고, 암자 주변에선 산사태로 인명 피해를 내기도 했다.
천왕봉 남쪽의 산청군 시천면 반천마을의 경우 양수발전소 송전탑 공사를 위해 임도를 낸 곳에서 바위가 굴러내려 민가를 덮치는 등 사고를 빚기도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 녹색연합이 이번에 발표한 지리산 산사태 실상은 국립공원 구역 밖은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천왕봉 주변 등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의 산사태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마천과 휴천 등지 지리산 산록 마을 주변에 일어난 피해는 훨씬 더 심각했다.
도로를 개설하거나 인공시설물 공사 등을 벌인 곳 등에 피해가 집중된 것이다.
금계마을에서 오도재로 오르는 포장도로와 그 주변 축대는 쑥대밭이 되기도 했다.
태풍 매미가 저질러놓은 지리산 일대의 피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일 것이다. 도로와 하천, 교량과 축대 등의 복구공사비가 엄청나게 투입됐고, 이들 복구공사에 따른 황토물 방류 등으로 엄천강 등 1급수 하천의 다슬기가 사라지기까지 했다.
지리산 하천 등의 생태환경 파괴는 우리의 눈으로 지켜보는 산사태의 겉보기 못지않게 끔찍한 것이다.
천왕봉 남서쪽 통신골의 산사태는 인위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지리산 현지 인사들의 증언이다.
오랜 기간 로타리산장 관리인으로 일한 조재영씨는 이미 십수년 전에 통신골의 산사태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했었다.
"전기톱으로 수석을 채취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통신골 산사태를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 북쪽 전망대인 삼정산에서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금세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맞은편 금대산 주변 일대가 손톱에 마구 핥퀸 얼굴마냥 갈갈이 찢겨 어지러운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천 가흥리 옆 60번 도로에서 급경사를 무릅쓰고 암자로 꼬불꼬불 오르는 도로를 낸 것부터 눈에 거슬린다.
결국 태풍 매미 때 이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인명사고를 빚었다.
암자가 있기 때문에, 송전탑 공사를 위해서, 또는 무슨 명승지를 만들고자 하는 명목 등으로 가파른 산에 도로를 개설한다.
지리산 일대의 산판도로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산자락을 파헤치고 인위적인 시설물을 하는 것으로 산사태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노고단과 세석고원 등에 야영장을 개설한 결과 얼마나 넓은 곳이 민둥산으로 변했는지 우리는 두 눈으로 익히 지켜보았다.
그곳들을 다시 복원하는데 엄청난 예산과 노력, 시간이 소요됐다. 장터목과 임걸령, 선비샘 주변의 원상복구작업 또한 마찬가지다.
또 임걸령 삼거리~피아골, 삼도봉~화개재 등 등산로 상당 구간은 사람의 발길에 의한 자연 훼손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 실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소화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