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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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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쌍계별장이다. 쌍계사 경내에 위치한 이 별장은 누구에게나 고향집 같은 포근함을 느끼게 해준다. 쌍계사를 다녀왔으면서도 쌍계별장을 보지 못했다면 그는 보물 한 가지를 놓친 셈이다. 쌍계별장을 한번 찾은 사람은 이 집의 가족처럼 계속 찾아간다. 쌍계별장은 그만큼 아름답고 정갈하고 조용하며,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지리산 최고의 집이다.'(필자의 졸저 '지리산 365일')

쌍계사의 울울창창한 숲속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이 별장은 세 채의 고풍이 넘치는 기와집이 소담한 뜰을 감싸고 있고, 뜨락에는 화초들이 그득하다. 하지만 으리으리한 부잣집 별장이 결코 아니다. 그냥 시골에서 뿌리를 잘 내린 여느 가정집과 같다. 다만 집안에 먼지 하나 앉을 곳이 없을 만큼 청결하고 조용한 분위기이다. 이 별장을 지키는 주인 내외의 정성이나 인품이 집 전체에 그득하게 배어 있는 것이다.

뜨락 한편에는 유리벽의 작고 이쁜 별당인 차실(茶室)이 먼저 반겨준다. 이 차실에는 화개 명산물인 녹차는 물론이요, 커피와 홍차 등 각종 차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또한 물을 끓이는 커피포트와 다구(茶具) 일체, 그리고 탁자와 의자 등이 비치돼 있다. 이 차실은 주인이 집안에 있든 없든 365일 개방해 놓는다. 쌍계별장에 묵는 손님은 물론, 지나가는 길손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 별당 차실에서 안주인으로부터 직접 차 대접을 받으면 최고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이는 녹차의 향기와 같은 말들만 나긋나긋하게 들려준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들려주는 얘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숲속의 동화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녹차 한 잔의 대화', 쌍계별장 안주인의 지고지선의 지성(知性)이 세파의 어지럽고 혼탁한 잡념을 떨치게하고 마음을 여미도록 해준다.

"쌍계별장을 찾아온 손님들이 지리산의 품에 안겨 지리산의 정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또 밤이 깊도록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도록 분위기를 심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모두이지요." 쌍계별장을 지키는 윤석천씨 내외의 꾸밈없는 얘기다. 이들 부부는 누구든지 '소리없이 왔다가 흔적없이 가는' 것을 바란다. 또한 쌍계별장이 널리 알려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한번 다녀가는 사람에게 아는 사람을 데리고 오지 말라고 부탁한다. 쌍계별장의 수용 능력에 한계가 따르는 때문이다.

쌍계별장의 전신은 유명한 고승인 해성스님이 지키던 도원암이었다. 이 암자를 사들여 별장으로 만든 것은 윤석천씨 어머니인 김씨 할머니이다. 가톨릭 신자인 할머니가 30여년 전 이 암자를 구입하고 별장으로 열게 된 데는 신화적인 사연이 있다. 당시 남편과 사별하고 부산에서 살던 그이는 길을 가다 가게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추하게 보이는데 충격을 받고 이 때부터 인적이 드문 곳에 살 결심을 했다.

"때마침 집에 일하러 오는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남편이 병들어 생계가 막막하여 고향인 쌍계사를 떠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곧잘 쌍계사를 자랑하면서도 고향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고는 하더군요." 그 얘기가 계기가 되어 쌍계사를 찾게 됐고, 때마침 암자를 내놓아 사들였다고 한다. 또 하동군수가 군청 손님에게 마땅한 숙소가 없다며 일방적으로 여관허가를 내어 떠맡기는 바람에 '쌍계별장'의 문을 열게 됐다는 것이다.

김씨 할머니가 부산의 집을 떠나 어떻게 적적한 산속에서 홀로 살기를 결심했을까? 김씨 할머니는 당시 자신의 심정을 다음 시조가 그대로 대변해준다고 했다.

'청산이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 창공이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 미움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김씨 할머니는 쌍계별장을 '말없이 티없이, 미움도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고자 그렇게 가꾸어온 것이다.

현재의 윤석천씨 부부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쌍계별장의 전통을 어김없이 이어가고 있다. 쌍계사를 찾아 만추의 고색창연한 산사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보고, 돌아오는 길에 쌍계별장의 별당 차실에 들러 이 집 안주인이 끓여주는 차 한잔을 들며 나긋나긋한 그이의 얘기를 듣는다면 심신이 정화될 것이다. 지리산의 아름다움은 숲과 계곡만이 아니라, 산자락의 집 한 채, 그 집을 지키는 이들에게도 넘쳐나고 있다.
(2001년 11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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