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암은 섬진강변에 느닷없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기암기봉에 자리하여 영험한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산꼭대기 벼랑들 사이에 터잡은 범상치 않은 품새로 하여 많은 기도객이 찾아들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이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는 곳은 깎아지른 벼랑에 선으로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이다. 천년 세월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변함없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처님이다.
원래는 ㄷ자형 바위가 자연적인 감실을 이루었다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법당이 세워져 그 안에 모셔져 있다. 끈질긴 불사의 결과이다.
사성암은 바위벼랑 허리로 돌담을 따라 걸어가는 동선(動線)이 이어져 있다. 이 돌담은 마치 성곽과도 같이 만들어져 있다. 사성암 주변을 안전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한 돌담이다.
나름대로 자연의 원래 형상을 잘 살리기 위해 휘어지고 굽어지고 들쑥날쑥한 바위벼랑을 잘 따라가게 해 놓았다.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지기 전의 아슬아슬한 바위벼랑과 거기에 새겨놓은 마애여래입상에 더욱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좁은 바위 벼랑 틈 금강굴을 빠져나오면 법당 앞에 서게 되는데, 그 길의 마지막이다.
"저 아래 섬진강이 굽이치며 흘러가고, 구례 들녘과 거기에 기대어 사는 마을들이 펼쳐지고, 눈 쌓인 지리산이 저 멀리 바라다 보인다.
그 모든 풍경들이 눈앞에 육박해 들어오듯 벅차게 펼쳐진다. 크고 장엄하고 아름답다.
그 곳에서 섬진강과 지리산을 보고 있으면 새삼 알게 된다.
역사와 현실의 굽이굽이에서 우리가 이 섬진강과 지리산에 기대어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아왔는지를. 이 산과 이 강에 얼마나 많은 눈물과 희망과 아픔과 각성을 실어 왔는지를."
'전라도닷컴' 남신희기자의 글이다.
"그렇게 섬진강과 지리산을 가슴에 잠시 품어보는 사성암"을 여러 차례 찾았다는 그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한번) 갔다 왔다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기에는 아쉬웠던가보니, 갈 때마다 늘 새롭게 안겨드는 풍경에 대한 기대감이 발걸음을 자주 그 곳으로 이끌었다.
그러면서 오래 알고 사귀어온 친구처럼 그 풍경들에 익숙해지고 그 풍경들에 정이 들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아마 몇 번은 더 가게 될 것 같다."
그렇다. 오산도, 사성암도 한번 다녀오는 것으로 그만 잊어버리고 말 곳이 결코 아니다.
오용민 사이트 운영자 정진원님은 오산 사성암을 지리산 유람에서 '우연히 얻는 기쁨'이라고 표현했다.
오산에 올라 섬진강과 지리산을 한 눈에 지켜보는 것은 지리산 여행이 안겨준 뜻밖의 즐거움일 수도 있다.
그런데 네 분의 성인(승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해서 '사성암'이라고 한다지만, 그는 달리 생각한다.
"제게 드는 생각 속에는 다른 이유가 생겼답니다. 신기하게도 네 개의 지리산 영봉이 그 곳 오산을 둘러치듯이 연결되어 보이는 것에 시선이 갔기 때문입니다."
"산을 신성시 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따서 '사성암'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지 않았을까?"
정진원님이 오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네 봉우리는 종석대, 노고단, 반야봉, 왕시루봉이었다.
지리산의 네 영봉을 성인으로 의인화하여 보는 시각도 놀랍지만, 그들 네 봉우리의 전망대인 오산에서 '사성암'이란 이름 연유를 생각하는 것도 아주 신선한(?) 발상이다.
따지고 보면 아무리 이름난 스님이라 하더라도 지리산의 영봉과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
사성암(四聖庵)은 더욱 신비롭기만 하다.
사성암은 바위 벼랑과 함께 독특한 양식으로 지은 건축물로서도 눈길을 끈다. 사성암을 한 바퀴 돌면서 느끼는 색다른 분위기도 좋다.
하지만 역시 사성암에 갔다면 오산 정상에도 올라보는 것이 당연한 노릇이다. 그 정상은 사성암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오르는 오솔길을 따라 불과 15분 남짓이면 닿는다.
사성암 동남쪽 200미터의 거리지만,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꽤나 가파르다.
오산 정상 또한 거대한 기암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 위에 오르면 마치 높고 뾰족한 망루에 서 있는 듯, 또는 헬기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오산에서는 섬진강 건너 지리산이 바로 건너다보인다. 종석대와 노고단이 정면에서 마주 보이고, 조금 오른쪽으로 왕시루봉이, 그 뒤쪽으로 반야봉이 올려다 보인다.
오산이 마치 망루와 같은 특수한 지형인 것은 이곳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이용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죽미리 각금마을에서 등산구 안내 표지판이 서있고, 그곳에서 1시간이면 정상에 닿는다.
정상의 높이는 겨우 542미터, 하지만 그 높이와 견줄 수 없는 너무 많은 감흥을 안겨준다.
정녕 지리산 여행에서 우연히 얻는 기쁨이라고 하겠다.
(2003년 1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