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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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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 단성에서는 새소리, 붉게 떠오르는 태양, 서쪽 하늘을 빠알갛게 물들이고 지는 저녁 놀, 온통 하얗게 반짝이는 별들, 은은한 달빛, 주위의 산과 나무, 붉은 흙...이 소중한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고 있는 아들을 보노라면 참 흐뭇합니다.'-김희덕님이 칼럼 '내손으로 집을 짓고 싶다' 2호에 올린 글의 일부다. 이 짧은 글에서도 김희덕 정재성 부부가 지리산 삶을 선택한 이유를 충분히 엿보고 남음이 있다. 자연 속에 뛰노는 아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그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연상됐다.

이 칼럼에는 비닐하우스에 임시로 만든 그들의 움막집 사진도 실려 있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맨땅에서 지리산 삶을 시작한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또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모내기' 등의 글에 드러나 있다. 보름 간격으로 서울의 직장과 지리산 움막을 오고갈 때 기차 안에서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기도 하는 그녀의 글에는 신랑이나 아들 자랑이 넘쳐난다. 지리산 삶의 편린을 진솔하고 재미있게 들려주면서도 그 한편에 애잔한 여운을 남길 때도 있었다.

그녀의 칼럼은 지리산 신랑과 한이, 할머니 얘기를 언제나 앞세운다. 그런데 필자는 그 틈새에 들려주는 김희덕님의 서울 생활 얘기가 참으로 신기(?)했다. 이를테면 '달리기와 만경대 릿지'란 글에서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을 뛰어넘는 그녀의 특출함을 지켜보게 된다. 그녀는 달리기를 한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10킬로미터를 달린다. 그녀는 북한산 만경대 릿지를 탄다. 다시 대남문으로 이동, 산친구들과 도킹하여 산을 내려온다. 달리기도 하고 바위도 타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지리산 단성과 서울을 오가며 청산유수처럼 거침없이 들려주는 그녀의 얘기는 흥미진진, 아니 신기하기까지했다. 필자는 드디어 이 한이네 일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됐다. 2001년 6월 첫째 주말 '지리산 통신' 정기산행에 김희덕님과 그녀의 남편 정재성, 아들 한이, 한이의 할머니가 함께 참가한 것이다. 갓 30을 넘긴 김희덕님은 대단한 미인이었다. 그보다 언제나 밝은 표정에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약간 수척한 듯한 그녀의 남편은 입이 무거운 사람으로 보였고, 실제로 별로 말이 없었다.

유평계곡 마지막 마을 새재에서 쑥밭재~하봉~치밭목산장을 돌아오는 산행 코스였다. 하봉 능선을 한동안 따라오르는데 앞에서 아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산새의 지저귐처럼 계속 낭랑하게 6월 신록 숲에 번지는 아기의 웃음소리가 참으로 청량했다. 뒤따라가보니 김희덕님 일가족이었다. 그녀 신랑은 한이를 지게배낭으로 업고, 할머니는 숲속에서 약초를 채취하며 앞서간다. 다른 이들은 그냥 오르는 데도 숨차 하는데, 한이네 가족은 웃음을 꽃다발처럼 엮어가며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다가 신랑이 조금 힘들어 하길래 제가 한이를 업겠다고 그랬지요. 그래서 서로의 짐을 바꾸고 오르는데 이녀석 장난이 아닙니다. 한발한발 내딛어 가는데 허벅지에 힘이 팍팍 들어갑니다. 예전에 북한산을 업고 오를 때는 고만고만했는데 그동안 한이가 많이 크긴 컸나 봅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떻게 애기를 업고 가냐고 놀라더니 뒤에 신랑을 보고서는 "아니 애기를 아빠가 업지 않고 엄마가 업고 가냐고…" 뭐라 하더군요. 그래서 이러다간 신랑 욕먹겠다 싶어 얼른 바꾸었습니다. 사실은 제가 힘들어서이기도 했구요. 헤헤~~ ](김희덕님의 글)

김희덕님 일가족은 아주 유쾌하고 즐거운 산행을 하는 것이었다. 지리산에 안긴 일가족의 행복한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도 흐뭇하게 해주었다. 다만 한이 아빠는 다소 내성적인 듯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말이 없었다. 예절 바르고 차분한 성격의 젊은이로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 자락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그 결단이나 용기만 보더라도 그를 이해하는 것은 충분할 것이다. 어쨌든 첫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안겨준 한이네 일가족이었다.

한이네 일가족을 만나본 뒤 필자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단성의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역시 사람에 대한 호감이 먼저였다. 그의 일가족이 친근하게 생각되지 않았다면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이네 집에는 꼭 한번 찾아가보고 싶었다. 어느 곳에서 땅을 마련해놓고, 농사는 어떻게 지으며, 집은 어떤 모습으로 짓고자 하는지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은 희덕님이 잘 웃는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다, 한이네 일가의 진면목은 그 집을 찾고서야 비로소 엿볼 수 있었다.
(2002년 3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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