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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근석(男根石)의 수난 (3)
                                     (2000년 6월28일)


몇 해 전 일입니다. 한 단체가 '한국의 산' 강좌를 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전남 영암 월출산을 답사하며 이태호교수(미술사)가 현장강의를 했습니다. 성풍속에 대한 그이의 해박한 지식은 물론, 거침없는 입심에 놀랐습니다.

그이는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이란 책을 펴냈는데, 이 역저는 '역사의 속곳을 걷어올린 한국의 성풍속도'란 찬사와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동안 미개척 분야나 다름없는 성(性)이 인문학적 지평에서 본격 전개됐다는 평가였습니다.

"우리 민중들의 성의식과 문화는 우리 예술사의 미의식을 형성하는 근간이며, 우리 문화 전통에서 성은 생각보다 대단히 개방적"이라고 그이는 말합니다. 조상들의 성문화는 성숙하게 잘 일궈놓았는데, 우리가 이를 잊은 채 살아왔다고 합니다.

산을 찾는 이들도 성과 관련한 설화가 전해오는 곳에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산악회 활동을 할 때 나는 경주 건천의 여근곡(女根谷)을 일부러 답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신라의 여왕이 지혜로운 해몽으로 적군을 사로잡았다는 설화가 전해 옵니다.

문경 주홀산의 여궁폭포와 같이 색다른 이름을 안고 있는 지형지물을 호기심으로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끝에 얻어낸 나름대로의 결론은 우리나라의 산악지형은 참으로 절묘하다는 것입니다. 건천의 여근곡이나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외국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산악미를 한결같이 칭송합니다. 그림같이 아름답고 아기자기하며, 오묘하다는 것입니다. 굳이 유별난 이름을 달고 있지 않아도 신비한 형상을 빚고 있는 바위나 계곡들이 전국 곳곳에 너무 많이 산재합니다.

강원도 평창군 백룡동굴에는 남근을 닮은 종유석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근석을 현지 경찰서장 일행이 잘라내 반출을 했다가 말썽이 일자 45일만에 도로 갖다놓은 사건이 벌어져 우리 모두 어이없어했던 일이 있습니다.

옛날 마님들은 속치마끈에 '코'라 불리는 노리개를 차고 다녔습니다. 코는 남근의 은어로 노리개의 이름이 된 듯합니다. 그 노리개는 일종의 주력을 믿은 때문이요, 남근을 닮은 종유석을 떼내 집으로 가져간 것도 같은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백룡동굴의 남근을 닮은 종유석들만 수난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날 아침산의 저 절묘한 남근석도 수난을 당했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전에 어떤 낌새도 보이지 않고 일어난 일이라 그 사건은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두어달 전의 일입니다. 남근석 부근의 오솔길로 들어서던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남근석 주변의 숲이 훤하게 뻥 뚫려 있습니다. 다시 보니 남근석을 가리고 있던 사방의 나무들을 베내버린 것입니다. 그 모양은 속옷까지 벗긴 꼴이었습니다.

전기톱이 날카롭게 지나간 자국들이 드러났습니다. 남근석은 발가벗겨져 저만큼 떨어진 오솔길에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남근석으로 접근하기 쉽게 길을 다듬어 놓았습니다. 그 앞에는 '남근석'이라 새긴 간판까지 세워 놓았습니다.

아, 나뭇잎을 속옷처럼 두르고 절묘하게 숨어있던 아침산 남근석은 이처럼 발가벗겨진 채 노출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무슨 개패와도 같은 '남근석'이란 명찰까지 달고 모든 것을 까발린 채 내팽개쳐져 있는 꼴입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누구의 짓일까요? 전기톱날에 베낸 나무를 다시 원상으로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그보다 발가벗긴 남근석은 신비로움도, 근엄한 위엄도 잃고 말았습니다. 누군가 격분하여 남근석이라 새긴 간판을 뽑아 숲속에 내팽개쳤습니다.

아침산 남근석은 원래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두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자연 그대로 가만 두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인 듯합니다. 이젠 어쩔 수도 없지만, 나는 아직도 발가벗겨진 남근석을 바로 쳐다보지 못 합니다.


  • ?
    김용규 2006.09.29 20:08
    남근석 하면 요즘의 야한 의미속에 킥킥거리면서 속물적인 것으로만 치부를 하기 쉬우나 아들을 하나 낳지 못하면 칠거지악중의 하나로 한 연인의 인간적인 모든 운명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현실이 조선 시대엔 분명히 존재했었습니다. 요즘의 헌법 이상으로 절대적인 상황이 전개된 것이 현실이었던 분위기에선 아들을 낳으려고 발버둥을 쳤던 우리네 선조님들께선 얼마나 많은 인간적인 갈등을 가졌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남근석의 수난은 어떻게 보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여인)의 절대적 인간적인 운명과 직결되었다는 것에서 해석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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