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113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삼정봉에서 문수암을 거쳐 도마부락으로 작은 계곡이 흘러내린다. 이 계곡을 중심으로 아주 한적한 골짜기가 자리한다. 물론 문수암으로 오르는 오솔길도 이 골짜기를 따라 이어져 있다. 아주 깨끗하고 적막한 이 골짜기의 이름은 '견성골'이다.
필자가 주목했던 것도 바로 이 골짜기 이름이다.
'견성'이란 모든 망령되고 미혹된 생각과 괴로움을 버리고, 자기의 타고난 본래의 천성을 깨닫는 것을 뜻한다. 불가에선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하는데, 곧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문수암을 오갈 때마다 어김없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견성'이란 말의 뜻이다. 모든 망령되고 미혹된 생각과 괴로움을 어떻게 떨쳐내며, 자신의 타고난 본래의 천성을 어찌 찾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 골짜기에서 수행하여 견성성불의 경지를 이룬 스님은 송광사 제1, 2대 세조사가 된 보조국사와 진각국사 등 숱하게 많다. 그런만큼 비록 세파에 부대끼며 형편없이 더럽혀진 속인이라고 하더라도 이 골짜기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적요한 골짜기는 스스로를 돌아보기에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스로의 한계가 너무나 뻔하여 언제나 다람쥐 쳇바퀴이다. 깨우침이 어디 아무렇게나 오는가.
도봉스님은 문수암 토굴에서 20년 가깝게 홀로 고행을 계속하고 있다. 하물며 필자는 평범한 불자에도 못 끼는 주제이니, 깨우침은 고사하고 마음의 정리마저 제대로 못한다.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이 더한층 망령되고 미혹된 생각과 괴로움에 말려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가을 필자는 놀라운 하나의 사실과 마주쳤다.
한 할머니가 문수암을 찾아와 자신의 '49일재(四十九日齋)'를 올린 것이다.

49일재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에 지내는 '칠칠재(七七齋)'로 삼계 육도의 후생안락을 위하여 독경공양으로 명복을 빈다. 죽은 사람이 이 날부터 비로소 저승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망자의 49일재는 당연히 유족들이 지낸다.
그런데 이승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49일재를 손수 지낸다니 무슨 소리인가? 또 그 순간부터 그이는 이승에 존재하지만, 육신과 영혼은 이미 저승으로 가게 된다는 것일까?
아니면 속인으로선 자신의 49일재를 올림으로써 모든 망령과 미혹에서 해방이라도 된다는 것일까?

7년 전 초로의 한 할머니가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며 해발 1,000미터의 그 높은 문수암까지 찾아왔다. 허리도 굽고 관절통증도 심하게 앓고 있는 그이가 누구의 무슨 말을 들었는지, 멀고 먼 서울에서 찾아온 것부터 놀라운 일이었다.
할머니는 초라한 암자를 둘러보고 청한한 모습의 도봉스님을 한동안 바라보다말고 느닷없이 자신의 49재를 올려달라고 간청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의 49재 운운하는 것도 그렇지만, 수행만 하는 선승이 재를 올려줄 까닭이 없다.
그러자 할머니는 자신의 딱한 처지를 차근차근 모두 털어놓았다.

손바닥만한 집에 혼자 기거하는 그이는 식당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서울 근교 한 사찰에 불공을 드리는 것을 삶의 전부로 생각했다.
그런데 따로 살고 있는 아들이 언제나 말썽을 부리는 데다 근래 들어 집을 팔아달라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불공을 드리던 사찰도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겨 발길을 끊게 됐다.
그이는 자신의 49재를 스스로 앞당겨 올리지 않으면 영영 치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어찌어찌 묻고 물어 지리산 삼정봉 문수암까지 찾아오게 됐으니, 소원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도봉스님은 할머니의 49일재를 치러줄 수가 없었지만, 실망만을 안겨줄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한 가지 묘안을 제시했다.
"할머니가 70세 되는 해에 찾아오면 재를 올려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해 가을, 까맣게 잊고 있던 그 할머니가 그토록 불편한 몸으로 손수 재에 올릴 음식을 만들어 자신의 손으로 들고 문수암까지 찾아왔다.
할머니는 69세로 70세를 1년 남겨뒀지만, 이 해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미리 왔다면서 자신의 49일재를 꼭 올려달라고 간청했다.

도봉스님은 그 할머니를 위해 정성껏 독경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스님의 정성에 크게 만족하여 기쁜 얼굴, 가쁜한 마음이 되어 환자같지도 않게 펄펄 날다시피 문수암을 떠나갔다.
그 할머니가 서울로 떠난 직후, 문수암을 찾았던 필자에게 도봉스님은 그 모든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이 지난해 늦가을의 일이었다.
이번에 초파일을 맞아 문수암으로 오르는 견성골에서 필자는 불현듯 그 할머니의 49재를 떠올렸다.
아, 그 할머니는 그래서 모든 망령과 미혹을 벗어나 괴로움을 떨쳐내게 된 것일까...?
(2001년 5월4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4 "그대 다시 돌아오리"(3) 최화수 2004.02.26 972
293 '겨울 속의 봄', 왕산 쌍재 최화수 2004.02.08 1038
292 '봉명산방' 변규화님(2) 최화수 2004.02.26 1075
291 내일의 명소 '한이네집'(2) 최화수 2004.02.10 1085
290 잃어버린 '정령의 얼굴'(2) 최화수 2004.04.09 1101
289 2002년 2월 '두레네집'(2) 최화수 2004.02.06 1115
» 살아있는 이의 '49일재(齋)' 최화수 2004.05.11 1138
287 수달은 효녀를 알아본다? 최화수 2004.02.02 1143
286 "그대 다시 돌아오리"(1) 최화수 2004.02.26 1144
285 목통마을의 '여수새댁'(2) 최화수 2004.02.10 114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0 Next
/ 3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