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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사랑을 위하여' 답사팀과 함께 달궁~심원계곡에 콸콸 쏟아져내리는 물길을 내려다 보고 있노라니, 10여년 전 심원마을에 들러 청정계류를 지켜보며 정령치 마애석상군에 대한 열변을 토하던 김경렬님이 문득 떠올랐다.
"정령치로 가야겠습니다" 그러자 '자이언트' 이광전님이 정말 뜻밖에도 "마애석상군도 볼 텐가?"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곳을 알고 계세요?" "그럼요!"
아, 그 순간의 기쁨이란! 정령치로 수없이 넘나들면서 '정령의 얼굴'을 찾아보지 못한 자신이 이 때처럼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정령치에 닿고보니 이게 또 웬일이겠는가? 전에 보지 못한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이란 안내표지판이 내걸려 있었다.
마애불상이라니?
달궁의 노인이 마한 때 조각한 '정장군, 황장군의 조각상'이라고 말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때라면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령의 얼굴'을 보러 간다는 엄청난 기대와 유혹에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불상이란다. 그것도 개령암지 불상군이라고 하니, 이 정령치에는 개령암이란 암자가 있었고, 그 터에다 새긴 불상군이란 뜻이다.

정령치 마애석상군을 찾아보지 못한 이유는 그곳에 이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선입감 때문이었다.
김경렬님은 달궁마을에서 은장골을 거쳐 네시간이나 걸어오른 끝에 어렵게 현장에 닿았다고 했었다. 그런데 정령치에서 고리봉을 향해 능선길을 채 2, 3분도 걷지 않아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500미터'란 안내표지가 있고, 거기서부터 길 양편에 흰 줄을 매달아 놓았다.
혹시라도 길을 벗어날까봐 목책 대신 안내 와이어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아주 편편한 길에 어린아이라도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너무 수월하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마애석상군 앞에 닿았다.
마애석상 조각을 확인하기에 앞서 '보물 제1123호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이란 안내현판을 먼저 만났다. 돋을새김한 불상 12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위치도도 만들어 놓았다.
'가장 큰 불상은 4미터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타원형 얼굴, 다소 과장된 큼직한 코, 간략하게 처리한 옷주름, 듬직한 체구 등이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정령의 얼굴', 정장군, 황장군의 얼굴이 아닌, 그것도 고려 불상이라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게 정말 불상일까요?"
나는 김경렬님이 '정령의 얼굴'에 감격하고 흥분하던 모습을 지을 수가 없어 과연 불상인가 하고 의문부터 던져보았다.
"국가 지정 보물이니 불상이 아니라고 의심할 여지가 없네요."
동행한 솔메거사가 이마에 돋을 새김한 것을 가리키며 불상이 맞다고 했다.
그렇다. 지난 92년 1월15일 국가지정 보물로 지정되기까지 문화재 전문가들이 면밀하게 분석했을 것이다.
'불상 아래 明月智佛(명월지불)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어 진리의 화신인 비로자나불을 뜻하는 듯하다'고 현판에 씌어 있다.

달궁마을 정종근 할아버지가 김경렬님에게 정령과 황령 수비성을 쌓은 '정장군'과 '황장군'의 얼굴이라고 말한 두 석상만이 4미터의 크기로 크게 돋을새김을 해놓았다. 나머지 조각들은 1~2미터의 작은 것들로 김경렬님은 후대에 조각한 불상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보물 지정 안내 간판에는 '작은 불상 역시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하여 큰 불상과 동시에 조각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니까 저 까마득한 마한 왕조의 달궁 피난도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김경렬님은 1978년에 작고한 달궁마을 양계원(85세)씨가 60년 전에 황포수를 따라갔던 얘기도 들려주었다.
양씨는 몰이꾼으로 함께 갔는데, 덕두산에서 몰이를 하며 마한 장군상(마애조각상) 근처에 이르렀다. 마침 새끼 일곱 마리를 거느린 어미 멧돼지를 발견했는데, 어쩐 셈인지 황포수가 그토록 찾았던 멧돼지를 보고도 총구를 겨누지 않더라고 한다. 멧돼지를 잡을 생각은 고사하고 몰이꾼들에게 서둘러 하산하자고 하지 않겠는가.
"여긴 마한 임금님의 성지(聖地)니까 말여, 그냥 내려가자"고 하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지정 보물 1123호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이란 현판 앞에서 '마한의 얼굴'도 '정령의 얼굴'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런데 이게 또 어찌 된 일일까?
마애불상군 12구가 자리한 거대한 암벽이 형편없이 쪼개지고 무너지고 하여 4미터의 큰 불상 한구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그 형태조차 희미하여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정령의 '정장군'이 화를 내어 자신의 조각상 하나만 남겨놓고 모조리 쫓아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김경렬님이 촬영한 사진에는 완벽한 모습이었는데, 보물 지정 이후 이 모양이 됐다.
(2002년 8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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