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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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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 붙은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학교입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운동장 옆으로는 지리산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개울이 섬진강으로 합류하고, 강변 바위에선 간간이 참게가 기어다니기도 합니다. 과거 송정분교인 이곳은 폐교된 후 지금은 생태교육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준비중인 곳입니다.'-두레네집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두레네 오는 길'의 첫 머리 부분이다. 지도도 함께 올려져 있는데, 석주관(石柱關) 칠의단(七義壇) 바로 옆 한수내가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국도변에 자리한다.

이 안내문을 접한 필자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왕시루봉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개울 한수내, 참게가 기어다니는 섬진강변, 돌담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초등학교 분교를 왜 몰랐을까 하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필자는 일찍이 바로 이웃한 석주관 칠의단을 찾았었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고전장(古戰場) 일원을 둘러보지 않고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섬진강을 따라가는 19번 도로를 얼마나 지나다녔던가. 그런데도 이곳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기만 하였다.

하지만 아직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생태학교로 가꿀 것이라는 두레네집은 그림처럼 아름답게 눈에 그려졌다. 부지런히 오르내렸던 왕시루봉 자락에 대한 기억과 섬진 청류에 합류한다는 한수내, 거기에다 사진과 글로 지켜본 두레네집 가족들의 너무나 순수하고 맑고 밝은 모습에서 쉽게 연상이 됐던 것이다. 두레네집 가장인 안윤근님이 홈페이지 '두레네 글방'에 올려놓은 '자연이라는 시골서 살려면', '신선이 먹는 음식' 등을 읽어보면 두레네가 얼마나 아름다운 가족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필자가 오용민의 지리산 포털사이트의 '두레네집 이야기'를 한번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일과의 한 부분처럼 됐다. 이 사이트에 들기만 하면 아픈 머리까지 씻은 듯이 낫게 되는 것이었다. 한번 찾아가야지, 가야지 하는 얘기를 지리산에 함께 다니는 '돌쇠' 아우에게 말했더니 그가 먼저 다녀왔다고 했다. 그럼 나도 가야지, 그렇게 하여 서둔 것이 그만 황량한 겨울철에 찾게 되었다. 겨울의 자연은 아무래도 삭막한  회색그림일 테고, 교실 난방 등 두레네 가족에게 부담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두레네집에 닿고보니 역시 최악의 상황에서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것은 계절이 겨울인 때문이 아니라, 아직 도로공사가 끝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레네집 동쪽 경계는 한수내로 근래 쌓은 듯한 높은 석축이 있고, 서쪽 경계는 윗 내한마을(송정리 본동)로 가는 도로가 산을 깎아 넓혀놓은 채 그대로 있었다. 필자는 '우리를 바라보는 언덕 위의 괴목나무'를 먼저 찾아보았다. 아, 그 나무는 포크레인이 흙을 깎아내 절벽이 된 곳에 위태위태, 불안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언덕 위의 괴목나무'는 '두레네 글방'에 올려진 글 가운데 가장 슬픈 이야기였다. 그 글은 '요즘은 집에 있으면 아침부터 저녁 내내 쿵쿵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로 시작된다. 집 앞에서 안동네까지 가는 좁다란 길을 2차선 아스팔트 도로로 확장 포장한다며 언덕자락을 깎아내고 깎은 돌과 퍼낸 흙을 계곡에 메운다는 내용이다. 굽은 길을 직선으로 내느라 자연파괴가 더 많은데, 그나마 집 앞의 수령이 오랜 괴목나무 한 그루가 있는 부분만 곡선을 살렸다고 했다.

'그 나무 아래로 도로를 내는데 꼭 해변가에 모래더미를 세우고 막대기를 꼽아 한줌 한줌씩 가져가다 쓰러지는 놀이처럼 나무 아래 흙을 야금야금 파들어가는 모양새로 만들어놨습니다. ...(중략)... 지금도 나무 밑의 바위를 포크레인이 쿵쿵대며 부수고 있습니다. 저 나무가 저기 저렇게 서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주의 기운을 받았는지, 이 길을 오가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아 축적해 놓은 에너지는 또 얼마인지, 오늘 그 기운이 이렇게 교실 창문 밖을 내다보는 제 눈으로 향했나 봅니다.'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비분강개할 일을 두레네는 동화를 읽어주듯이 차분하게 들려준다. 밝고 맑고 건강한 두레네의 진면목은 그 글의 마지막 대목에서 더욱 빛난다. '학교를 드나드는 마을 아이 하나하나를 내려다보던 나무, (중략) 이제 우리 식구가 사는 온 모습을 지켜보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나무의 마지막을 지켜볼지도 모르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저 나무가 이 땅에 뿌리박은 우리 식구들을 끝까지 지켜보는 나무가 되었으면 합니다. (중략) 천년 세월 그 자리에 남아있기를...'
(2002년 2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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