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는 화개천 위에 육중하게 들어선 '쌍계 2교'. 이 교량 가설과 함께 진입도로 등 '쌍계사 지도'가 달라졌다.
아래 사진은 석문광장의 상징과도 같은 '백운장'. 오랜 세월 화개동천과 쌍계사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
쌍계사로 들어가는 화개천 위에 육중한 콘크리트 교량이 새로 들어섰다. ‘쌍계 2교’이다.
원래의 쌍계교는 너비가 워낙 좁아 차량의 통행에 불편이 따랐다. 그래서 2차선으로 폭이 넓은 교량을 가설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이 쌍계 2교는 차량의 통행 편의를 뒷받침한 것만이 아니라 쌍계사로 진입하는 도로의 지도를 바꿔놓았다. 이 교량 주변에 화개녹차 전시관 등이 들어선 것 등 주변의 상황 변화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치명적 타격을 받은 곳은 석문 광장의 식당가이다.
사찰로 드나드는 새 도로는 석문광장을 무시하고 직진을 한다. 석문광장을 지나는 기존 도로는 돌계단으로 차단을 해 놓았다.
길을 이렇게 고친 데는 사찰과 석문광장 주민들과의 이해(利害)관계 등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을 터이다.
어쨌거나 기존 쌍계사 진입로에 익숙해 있던 이들에게는 새 도로가 황당하기 짝이 없다.
기존 석문으로 들어섰다가 계단으로 막혀 있는 것을 지켜본 한 할아버지는 “저것은 사람의 목을 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석문의 문을 열어 숨통을 터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는 것.
새 쌍계사 진입도로는 네 번째로 바뀐 길이다. 처음에는 석문을 지나 개울을 건너 쌍계사 마방으로, 두 번째는 지금의 룸비니 동산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길이었다, 세 번째는 쌍계교에서 석문 식당가를 지나는 길로 지난 1963년에 만들었다.
석문광장 주변 식당가는 반세기의 긴 세월 동안 사하촌 특유의 정취와 전통을 이어왔다.
이곳에는 백운장과 지리산여관이 있고, 식당과 찻집, 기념품 가게 등이 정겹게 자리한다.
이들 집집마다 갖가지 일화와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백운장의 여주인은 ‘화개동천의 사전(事典)’으로 불릴만한 인물이다.
화개동천 사암(寺庵)의 내력은 물론, 화개 골짜기 곳곳의 사연을 그 누구보다 소상하게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어먹기 일쑤이다.
백운장 구월순 여사. 그 누구보다 맑고 밝고 상냥하고 활달한 성품이다.
지리산 화개동천을 찾는 수많은 이들이 오랜 세월 한결같이 이 백운장에 발걸음을 들여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석문광장의 쓸쓸한 현실이 백운장이라고 하여 예외일 수가 없다.
사진을 봐도 이해가 잘 안가네요.
많은 변화가 있었군요. 백운장인지 어딘지에서
하루 묵은적도 있었고 사찰국수 맛있던 기억도 나는데
이왕이면 길이 잘 소통되게 해야지 어떤 이해관계가 있길래
그렇게 했는지 의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