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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량 2] 한밤의 검은 사자들  
                              2002년 07월 22일  

연하천산장에서의 꿈 이야기는 참으로 야릇한 것이었다. 이광전 님은 산장 청년과 장 총각이 마치 서로 짜고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두 청년의 너무나 진지한 모습에서 뭐라고 한 마디 참견할 수조차 없었다.
어쨌든 서둘러 연하천산장을 떠나고 싶었다. 아침밥을 먹는둥마는둥 하고 다시 종주산행의 발길을 재촉했다. 벽소령을 거쳐 세석고원에 닿는 사이 연하천에서의 꿈 얘기가 안겨준 떨떠름한 생각을 떨쳐낼 수 있었다. 설국의 지리산 주능선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광전 님과 장 총각은 설경 속에서 신선놀음을 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걷고 또 걸어 천왕봉을 거쳐 밤 늦은 시각에 로타리산장에 도착했다. 로타리산장에는 그룹으로 지리산을 찾은 대학생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광전 님은 산장 밖에서 늦은 저녁을 지어먹고 밤 11시를 넘긴 시각에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대학생들과 반대편 침상에 자리를 잡고 눕자마자 종주산행의 피곤이 몰아닥쳤다. 스르르 잠속에 빠져들려는데 산장의 철문이 철커덩 하더니 싸늘한 바람이 휘익 날아들었다.

당시 산장 철문은 너무 오래 된 탓인지 약간 처져 있었다. 그래서 강풍이 들이닥칠 때마다 철거덩철거덩 하고 소리를 내며 열리고는 했다.
이광전 님은 다시 일어나 그 철문을 바로 닫았다. 또 철문은 안쪽에서 철사로 칭칭 감아 걸도록 돼 있었다. 이제는 더 올 사람도 없겠거니 하고 그이는 철사줄로 철문을 단단히 걸어잠갔다. 그런 뒤 다시 침상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옆자리의 장 총각은 심설산행이 벅찼던지 벌써 깊은 잠에 떨어져 있었다. 맞은편 대학생들 자리에서도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장 총각이 오늘 이곳에선 이상한 꿈을 꾸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니 이광전 님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대학생들도 누구 하나 떠들지도 않고 조용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한 두명의 코고는 소리도 들리다 말다 했다.
(오늘은 아주 편안하게 숙면에 빠질 수 있겠구나) 그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달콤한 잠을 청했다. 그는 곧 잠이 든 것 같기도 했고, 아직은 선잠으로 자는둥 마는둥 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덜커덩 철문이 열리면서 찬바람이 휘익 날아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광전님은 기가 막혔다. 좀 전에 자신이 손수 철문을 철사로 칭칭 감아 잠그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문이 어떻게 제 멋대로 열릴 수 있다는 것인가? 기가 막히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했지만, 열려 있는 문을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일어설 수도 없었다. 웬 사람들이 무장을 한 채 난폭하게 들어선 때문이었다.
"이 자식이 쓸만하군. 이 놈을 끌고가자!"
놀란 가슴으로 숨을 죽이고 바라보니 일본군 같기도 하고, 인민군 같기도 한 사내들이 대학생 한 명의 목을 나꿔채려고 하는 것이었다.

"윽윽, 목이 졸려요. 이 손 놓아요. 숨막혀 죽겠어요. 끄윽끄윽!"
대학생 한 명이 목이 졸리는 듯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며 몸부림을 쳤다.
"누구야? 무슨 짓이야!?"
이광전 님은 사내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려고 했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입밖으로 그 말이 새나오지 않았다.
남루한 차림의 6척장신 거구의 사내들은 대학생을 계속 침상에서 끌어내려고 했고, 대학생은 필사의 저항을 했다. 대학생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그가 비명을 내지르는 바람에 동료 학생들이 놀라 잠을 깬듯 "뭐야, 왜 그래?" 하고 물었다.

"안 되겠군. 오늘은 그만 가자!"
"하, 그 녀석 참 어지간하구먼!"
사내들은 그렇게 한마디씩 내뱉고는 철벅철벅 밖으로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이광전 님은 이 모든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산장의 철문이 열려 있고, 찬바람이 계속 날아들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철문을 열어둔 채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그이는 살금살금 침상에서 내려와 철문을 다시 걸어잠갔다. 철사로 단단하게 동여매고 다시 확인하기를 되풀이했다. 그의 온 몸은 후줄근하게 땀으로 적셔졌다.

아침에 다시 눈을 뜬 이광전 님은 간밤의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연하천산장에서 이상한 꿈을 꾼 장 총각은 간밤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광전 님은 대학생들 침상으로 다가가 "잠자다 비명을 지른 친구가 누구야?"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왜 비명을 질렀지?"
"일본군인지 인민군인지 이상한 차림의 남자들이 나의 목을 끌고 밖으로 데려가려고 했어요."
그 학생도 그것이 꿈속의 일인지, 실제상황인지 구분을 못 하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이광전 님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를뻔했다. 그 대학생의 목을 쳐다보고 기겁을 한 것이다. 손아귀로 우악스럽게 잡아끈 흔적이 벌겋게 자국으로 남아있지 않겠는가!
"자네 정말 숨이 막혀 고통스러웠냐?"
"예, 그들이 내 목을 죄어 그대로 죽는가보다 하고 생각했지요."
이광전 님은 할 말을 잃었다. 만일 그것이 꿈 속의 일이라면 대학생과 자신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다. 연하천에서 산장 청년과 장 총각이 똑같은 꿈을 꾸었던 것을 이번에는 로타리산장에서 자신이 대학생과 재현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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