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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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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와운마을의 젊고 아름다운 부인(2)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30분 가량 기분좋게 걸어가니 와운마을이 나왔다. 하지만 '샘말댁이 소피를 보는데 송이버섯이 망칙스럽게 요상한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마을은 이미 아니었다. 소설가 강위수씨가 이 마을을 찾아 마을 할아버지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던 것은 77년이라고 했었다. 그로부터 10년 세월에 강산이 변해 있었다.

10여 가구의 집들은 전형적인 지리산 땅집이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 집집마다 '민박'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주민들은 벌이나 치며 근근히 살았는데, 두 서너 해 전부터 도시 사람들이 피서 삼아 몰려와 뱀탕도 찾고, 염소며 토종닭도 주문하고는 하여 민박집도 열고 음식도 팔게 됐다고 했다. 놀기 삼아 찾아온 이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와운마을 가운데 나의 눈길을 끄는 집이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기막힌 미인이 좁은 마루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 미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좁은 마당에서 북적거렸다. <산색시>라는 극영화를 촬영하러 온 배우와 스텝진이었다. 와운마을 집과 골짜기가 시대극 산골 영화를 찍기에 안성마춤인 때문이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니 촬영팀은 어딘가 가고 없고, 한 무리의 중년 사내들이 왁자지껄 경상도 사투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영화 촬영 뒷 얘기도 들어볼 겸 그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마당 한편에서 한 젊은 부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저기 마루에라도 앉으세요." 그녀는 아주 친절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이웃처럼 스스름없이 대하는 그녀였다. 한여름철에 장작불을 때느라 팥죽같은 땀을 흘리면서도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 더운 여름에 웬 장작불을?" "녜, 찜틀을 한다니께요." "찜틀?" "독사 살모사 능구렁이 등 뱀 50마리를 한꺼번에 넣어 찜틀로 만드당게요." "!?..." 나는 너무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유,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은 분은 다 손님이랑게. 꿀차라도 드릴 것이닝까네, 마시고 가시더라구." 일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그녀는 말끝마다 웃음을 흘렸다. 돈을 받고 파는 꿀차가 아니니까 기어이 꿀차 한 잔은 마시고 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아리따운 부인 앞에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이 나의 오금을 조리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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