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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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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서산대사의 경우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나이 열다섯살이던 운학(雲鶴) 소년은 과거시험에서 낙방을 먹고 지리산으로 나들이를 와서 신흥사 스님의 권유로 머리를 깎았어요.

'화개동에 꽃이 지는데
청학의 동우리에 학은 아니 돌아오고
잘 있거라 홍류교 아래 흐르는 물이여
너는 바다로 돌아가고
나는 산으로 돌아가려네.'

그는 처음 화개 골짜기의 이곳 저곳 사암을 돌며 유랑생활을 하던 중 숭인(崇仁)이란 스님으로부터 "마음을 비우는 공부를 하라"는 말씀을 들었답니다.

운학 소년은 '마음을 비우기 위해' 의신사 뒤편의 삼철굴(三鐵屈)에서 세 해 여름, 대승사(大乘寺)에서 두 해 여름, 원통암(圓通庵), 원적암(圓寂庵), 은신암(隱神庵) 등 여러 사암(寺庵)에서 두서너 해를 보내며 수도에 전념하게 됐어요.

이렇게 용맹정진한 그이는 마침내 대오득도의 깨달음을 얻어 휴정(休靜)이란 법명을 얻게 됩니다.
서산대사로 불린 그이가 얼마나 큰 인물로 추앙을 받고 있는지는 설명이 필요없지요.
그이는 10년 뒤 다시 지리산 화개골로 돌아와 내은적암(內隱寂庵)에서 '청허원'을 열었다지요.

하지만 서산대사가 입산 득도하고, 불후의 명저 '삼가귀감(三家龜鑑)' 등을 저술하는 등 전후 20여년을 머물었던 화개동천에 그의 발자취를 기리거나 추적해볼 수 있는 흔적은 깡그리 사라지고 없답니다.
삼철굴이 어디이며, 대승사, 원적암, 은신암, 내은적암은 어디에 있었다는 것일까요?
의신사가 자리했던 의신마을 주변 일대일 것으로 짐작만 할 뿐,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답니다.
그이가 잠시 머물다 간 사찰에 서산대사 유물관 등이 들어서 있는 것과 비교가 되지요.
지리산의 '잃어버린 역사'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서산대사가 수도정진했던 화개동천의 숱한 암자들 가운데 단 한 곳인 원통암만은 근년에 복원이 되어 숨은 듯이 자리하고 있답니다.
'지리산 최고의 명당'이란 원통암이 그곳이예요.
의신마을의 솟대가 서있는 골목길에서 출발하여 30분 가량 골짜기를 따라 오르면 닿게 되는 외진 곳이지요.
지리산 지도를 내놓고 의신마을 주변을 한번 샅샅이 뒤져보세요. 아무리 훑어보아도 '원통암'이란 보이지 않을 거예요.
원통암은 겨우 2, 3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인사만 '원통암터(圓通庵祉)'로 은밀히 알고 있었을 뿐예요.

서산대사가 머문 다른 사암과 토굴들은 그 위치도 모르면서 어째서 원통암터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을까요?
앞서도 말했지만, 이른바 풍수지리에 밝은 이들은 이곳이 지리산 최고의 명당이란 거예요.
지리산에서 이른바 '공부'를 하여 득도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이 원통암터에서 단 일주일만이라도 머물고 싶어했어요.
지난 80년대 중순께 이 원통암터는 당시 칠불사 주지였던 통광(通光)스님이 친척 명의로 땅을 사들여 다시 암자를 짓고자 200여평의 터를 반반하게 닦고, 진입로에 돌계단도 만들어 놓았어요.
물론 이곳에 그 누구도 찾아들어 수행을 하는 것도 금지했지요.

원통암터가 어째서 명당일까요?
지리산 주릉에서 흘러내린 지맥이 원형의 울타리를 두르고 있는 한가운데 지점에 이 터가 자리하는데, 정남향으로 백운산이 눈높이로 들어온답니다.
또 서산대사가 득도를 한 곳도 바로 이곳이라고 하는 군요. 통광스님이 만난을 무릅쓰고 이 터를 사들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하지만 국립공원 구역이다보니 암자 복원 허가가 나지 않아 십수년 동안 기다려왔어요.
그런데 어쩐 셈인지 근년에 암자 복원이 완료된 겁니다.

원통암, 그렇습니다. 지금은 원통암터가 아닌, 날아갈 듯한 당우도 당당한  원통암이 서있는 거예요.
지난해 가을 '지리산 통신' 답사 팀이 이 원통암을 찾아갔었지요.
하,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으리으리하고 근사한 기와집의 당우로 다시 태어났는지요!
부잣집 별장이나 특별한 인물의 휴양소와 같기도 하여 당혹감이 앞서더군요.
의신마을에서 한적한 골짜기를 따라 오르던 오솔길에 총총히 전주가 세워져 있는 것도 어울리지 않고요.
아, 한눈에 이것은 서산대사가 공부하던 그 암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었어요.

원통암은 복원된 후 칠불사의 직전 주지스님이 머물다가 지금은 통광스님과 인척인 비구니 스님이 머물고 있어요.
수도정진만 하는 선승인가 봐요.
하지만 새로 세운 원통암은 너무나 반드르르 윤기가 납니다. 불교가 탄압을 받았던 시기에 공부했던 서산대사가 별장같이 잘 지은 암자에서 공부했을 까닭이 없어요.
그러니 '서산대사의 원통암'은 복원이 된 것이 아니라, 아주 사라지고 없는 셈이지요.
그이의 족적이 담긴 곳으로 화개골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원통암, 왜 옛 모습대로 재현하지 못했는지 정녕 아쉽기만 합니다.
  • ?
    솔메거사 2002.08.16 10:59
    崔 孤雲의 깊은자취와 휴정의 得道도량이던 화개동천에 올곧은 연구와 고증에 의한 遺志傳承은 부족한데 물질문명에 기반한 物神의 그림자만 지리산 최대 吉地 명당인 원통암도 덮고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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