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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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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Daum 칼럼 '최화수의 지리산 통신'에서 '지리산 샘물산행'을 한 일이 있습니다. 칼럼 회원들을 위해 1박2일로 이 행사를 마련했는데, '지리산의 달인(達人)' 성락건님이 삼신봉 들머리 원묵계 전나무동에 '나무닮아살래'란 오두막을 지어 입주한 것을 축하하자는 뜻도 있었지요. 그래서 그 숙소도 '나무닮아살래' 오두막으로 정했어요. 출발 하루 앞날 '자이언트' 이광전님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축하한다며 우루루 몰려가 술 마시고 떠들기만 하겠지...!" 민박비 얼마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자이언트님은 성락건님이 가난한 처지에 어렵게 지리산 오두막 꿈을 이룬 것을 잘 알고 있었지요. 그이의 말뜻을 알아차린 나는 아차 싶어 이웃인 '여포'와 함께 쌀 한포대씩을 차에 싣고 갔습니다. 그 쌀을 건네드리는데 "최화수님이 보낸 쌀은 이미 받았는데요" 하는 거예요. 자이언트님이 어느 사이 먼저 쌀을 가져와선 내가 보낸 것이라고 둘러댄 거지요. 이와 유사한 일이 한 두번 있었던 게 아닙니다. 무슨 축하할 일이 있으면 그이는 봉투를 내놓는데, 자기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산악회 이름으로 하기 일쑤예요.

'나무닮아살래'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모두들 샘물산행을 떠나려는데 자이언트님은 치밭목산장으로 간다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이가 타고온 자동차 안을 들여다보니 쌀포대가 몇 개 더 남아 있었어요. "앞으로 종주도 하고, 치밭목을 자주 찾을 것인데, 내가 먹을 양식 미리 좀 갖다놓으려구요." 그이는 결코 누구에게 무엇을 선물한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먹을 것을 미리 갖다둔다는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이를테면 선행(善行)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식이지요.

자이언트님은 치밭목대피소에 쌀포대만 메고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대피소에 때로는 너무 많은 등산객이 몰려 수용이 어려운 것을 알고는 여러 동의 텐트를 갖다 놓았어요. 비박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을 때는 등산객에게 텐트라도 제공하라는 것이지요. 그이는 이 대피소의 태양열발전기가 배터리 고장으로 무용지물이 된 사실을 알고는 대형차량용 배터리를 두번씩이나 구해 져다 올리기도 했지요. 지난해 12월 셋째 주말에는 '지리산 통신' 답사팀과 함께 치밭목 대피소에서 그 점등식(點燈式)을 갖기도 했답니다.

군기(?)가 엄하기로 유명했던 부산대산악부에서 산악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난 수십년 동안 단 한 주도 산을 떠나본 일이 없는 그이는 만년 젊은이처럼 지금도 힘이 넘쳐요. 하지만 자이언트님은 기골이 장대한 것과는 달리 의외로 섬세하고 다정다감하기도 합니다. 그이는 부인인 '그레이스' 신충희님을 대동하고 일부러 2~3일씩 치밭목에 머뭅니다. 부인 그레이스님이 민병태님이 좋아하는 비빔국수를 만들어 대접하게 하는가 하면, 대피소 침상 내부 청소에서부터 침구를 빨래하고 말리는 것까지 봉사하게 하는 거예요.

노고단의 함태식님이 피아골로 내려간 뒤 다시 왕시루봉 외국인선교사수양관 관리인으로 자리를 옮겨 몇 해 동안 지난 때가 있었어요. 당시 자이언트 내외분은 비어있던 오두막 한 채를 빌어 '광희장'이란 문패를 달고 함태식님과 가까이서 지내게 됐습니다. 교회가 있는 콘세트 건물 관리동 함태식님의 '왕증장' 앞 줄에는 모기장 그물망이 매달려 있고는 했지요. 그물망 속에 생선을 넣어 햇살에 말리는 거예요. 이 섬세한 그물망도 자이언트님이 손수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그 생선을 누가 사왔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지난해 지리산 종주를 나랑 함께 할 때였어요. 화엄사에서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비가 세차게 내리는 거예요. 비옷을 덮어쓰고 짐을 다시 꾸리는 등 일행이 부산을 떠는 모습을 지켜보던 자이언트님이 갑자기 자신은 자동차편으로 성삼재까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성삼재에서 걷기 시작하는 것이 무슨 종주냐?"며 그이에게 빈정거렸지요. 하지만 그이가 자동차로 먼저 오른 까닭을 노고산장에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지요. 비에 흠씬 젖은 우리 일행을 위해 특실을 얻어놓고, 저녁식사까지 완벽하게 준비하느라 그랬던 거예요.

지난달 불일평전 오두막 '봉명산방' 변규화님의 부친이 별세하셨다는 부음을 전해들었어요. 나는 자이언트님 내외분과 함께 경남 거창군 가조면 상가에 문상을 갔었지요. 하동군수 등 많은 문상객이 줄을 이었지만, 산악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변규화님은 괜히 수고스럽게 할 것이 없어 자이언트님과 나에게만 알렸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 부음을 인터넷에 띄우기까지 했는데...어쩐지 씁쓰레한 마음이 앞섰지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이언트님이 소리치듯 예의 그 '말'을 내뱉더군요. "오늘날에 있어 우리가 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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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거사 2002.11.02 23:46
    지리산은 그것의 몸체처럼 크고넓은 인물도 많이 배출하다는것을 통감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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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프맨 2002.11.05 21:29
    치밭목산장에서 자이언트님과 한잔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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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리지 2002.11.06 07:52
    자이언트 선생님의 기품에서 큰 산 지리산을 느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가슴 뭉클한 무엇을 얻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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