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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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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소재들은 전해 내린 구전에 준한 픽션일 것이다.
따라서 그 주인공들도 가공의 인물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구전이 도사린 고향을 찾아 수백년 우리 한국인의 정서 속에 살아온 그 주인공을 그 고향에서 기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위의 글은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2004년 2월5일자)의 '변강쇠의 고향' 중 일부입니다.
이규태님은 구전 주인공의 고향을 복원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영화나 텔레비전 로케이션 현장이 관광지로 뜨고 있으니, 판소리 주인공들의 고향은 그에 비하면 농도가 한결 진한 편이라는 것이지요.

[춘향의 고향, 심청의 고향, 흥부의 고향도 고증 끝에 찾아 유적들을 복원시켜 놓았다.
다만 성적(性的) 문제로 도외시됐던 '변강쇠가'의 고향마저 복원됐으니, 변강쇠 옹녀 시대의 흐름에 감격하고 있을 것이다.]

변강쇠와 옹녀의 묘는 지난 2001년 6월 '변강쇠 옹녀 바로알기 선양회'가 경남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오도재 북쪽 산기슭에 조성했어요.
이 선양회는 한풀이 한마당으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묘제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변강쇠와 옹녀의 관계가 노골적인 성의 문제로만 전해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선양회 관계자는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 함양 지역의 잠재된 힘을 부각시키기 위해 묘제를 기획했다"는 거예요.

함양읍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인월쪽으로 향하면 금세 조동마을과 마주칩니다.
지난날 제한역(蹄閑驛)이 있던 이곳에 지금은 '지리산 가는 길'이란 간판이 내걸려 있지요.
바로 남쪽의 지안재를 거쳐 오도재를 넘어가면 '가루지기 타령'에 등장하는 '등구 마천'의 마천면 등구마을과 연결이 됩니다. 이어 칠선계곡이 임천에 합류하는 마천면 의탄마을과 마주칩니다.
(지안재로 오르는 S자를 겹쳐놓은 듯한 이 도로는 요즘 한국타이어 CF의 배경무대이기도 합니다.)

함양에서 오도재를 넘어 촉동~등구~창원~마천으로 이어지는 이 '지리산 가는 길'은 곧 변강쇠와 옹녀가 지리산으로 들어갔던 길이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변강쇠와 옹녀는 지리산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으며, 지안재와 오도재를 넘어 마천 땅으로 들어갔다는 것이예요.
변강쇠와 옹녀 정착지가 '등구 마천'로 보고 있는 것이지요.

[첩첩 깊은 골짝에 빈집 하나 있어 들어가 사는데 임진왜란 때 부자 하나가 피난해 살았던 집으로 오칸 팔작 집이었다.
나무 해오라 시켰더니 변강쇠, 장승 패서 때니 성난 팔도의 장승들이 모여 응징을 의논하는데, 이때 관할 구역인 함양 장승이 보고를 한 것으로 미루어 변강쇠가 살았던 집은 지리산의 함양 쪽 기슭임을 알 수 있다.]

이규태님은 변강쇠와 옹녀가 살았던 곳을 함양 쪽으로 보았고, 함양의 유지들도 그들의 집터를 휴천면 월평리로 추정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변강쇠와 옹녀가 살았던 집은 함양이요, 함양에서는 유지들이 모여 전설을 추적하고 왜란 때 피난해 살았다는 구전의 골짝을 찾아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로 그 집터를 추정했다.
그러고서 그 오도재에 변강쇠와 옹녀의 쌍묘를 조영하고 묘제를 올리고 있으며, 연휴마다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휴천면 월평리는 오도재 북쪽 산기슭입니다.
그런데 판소리 '가루지기 타령'에 등장하는 '등구 마천'은 오도재 남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지요.
변강쇠와 옹녀가 살았던 폐기와집은 이곳 사람들이 '빈대궐터'라고 부르는 구양리 마을 뒷산(오도재 남쪽)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빈대궐터는 가야의 마지막 왕인 양왕의 대궐터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지요.

변강쇠와 옹녀의 집은 오도재 남쪽인가, 아니면 북쪽인가?
그들의 쌍묘가 오도재 북쪽 기슭에 자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이런 의문 못지 않게 또 하나 따르는 문제가 있답니다.
그것은 변강쇠와 옹녀가 산 곳은 함양이 아니라 남원 땅이라는 주장입니다.
        
  • ?
    김용규 2006.08.20 09:59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님으로 계시며 시인이신 강희근님의 시가 오도재를 소재로 한것이어서 여기에 옮겨 봅니다.

    여름 오도재

    둥구마천 넘어가는 오도재
    둥구마천 소리만 들어도 으슬 으슬 추워지려는데

    한여름, 골짜기로 내리는 물이 한 두층 냉동실
    띄워 갖고 흘러내리고
    냉기는 보라 모시올 같은 바람 띠루 띠루루 뽑아낸다

    여름이 멈추는 곳에서
    우리는 적의敵意 거두고 무장을 푼다

    얼굴을 흔들며 목소리 딱, 딱 부비고
    판소리 한 소절 띠루 띠루루 뽑아낸다

    (가만 있거라 보자 강쇠야 옹녀야
    너것들 어디짬에서 발 당구고 종일을 놀았더냐)

    산적은 죽어 풀그림자 되고
    옹녀도 죽어 삼봉산 저며내리는 기氣에 들어가
    앉았을까

    우리들의 기는 탁족, 살 달래는 탁족으로
    풀 누그러뜨리고
    복분자, 옹녀 복분자주 한 잔으로 구비 구비 긴 사연
    골짜기를 마신다

    서녘해는 술잔 밖으로 떨어지고
    둥구마천에서 보낸 파발이, 저녁이라고 적은 파발이
    맨발로 와 곁에 서고.......
  • ?
    섬호정 2006.08.20 17:08
    오도재 사연이 담긴 마천골 지역 (금대암) 의 옛선사의 설화를 기억해 내는 중입니다만, 확실한 줄거리가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군요 금대암의 환암주지 스님에게 오도재 정자에 올라 들은 내용인지라 경건함을 느꼈건만, 아쉬울 뿐이네요^^&
    오도재의 사연중,
    변강쇠와 옹녀의 고향이 함양 마천 오도재지역이라는 여산선생님의 본문에서 더 호기심이 생깁니다

  • ?
    김용규 2006.08.23 20:55
    변강쇠와 옹녀를 천하의 잡놈, 탕녀로 많이 표현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부부가 결혼을 해서 서로간에 진하게 사랑을 한 짓거리밖에 없었지요. 가루지기 타령의 표현상 당시에 금기시 했던 것을 적나라하게 표현을 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쉽게 이혼을 하는 요즘의 세태와 아주 대조적이기도 합니다. 변강쇠는 오직 옹녀만을 사랑했으며 단지 게을렀다는 단점을 지적할 수 밖에 없네요.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확신을 할 수 없는 스님의 말만 믿고 공양미 삼백석에 자신의 몸을 팔아 용케 해피앤딩이 되었지만, 사기를 당할 수도 있었고, 현실적인 대안은 앞을 볼 수 없는 자신의 아버지 눈과 발이 되어 자신이 잘 봉양을 하는 편이 훨씬 효녀였을 거라는 요즘식의 해석을 해 봅니다.
    이처럼 우리네 고전 작품속에서 앞의 사람들이 해석을 해 놓은 것에 무조건적인 맹종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을 해 봅니다.
    작품속의 가상적 인물일수 있지만 변강쇠와 옹녀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도 한번쯤 봤으면 하는 느낌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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