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921 댓글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지리산에서 득도(得道)의 경지를 얻고자 이른바 '공부'를 하는 이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요? 그 정확한 숫자는 물론 알 수가 없지요. 실제 지리산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이들도 그 숫자를 수백명, 또는 수천명으로 짐작만 할 뿐이예요. 현지 주민이나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개 500명 안팎에 이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산중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을 '토굴(土窟)생활'이라고 하지요. 지리산에서 사시사철 때를 가리지 않고 500여명이 '공부'한다면 지리산 전체에 500여개의 토굴이 존재한다는 얘기가 되네요.

도인(道人)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리산과 같은 영험한 산의 명당에서 혼자 '공부'를 하는 과정을 거친다나요. 1년이고 2년이고 세상과 담을 쌓고 오직 '공부'만을 하는 곳을 그들은 '토굴'이라고 일컫지요. 토굴이라고 하여 꼭 땅속이나 언덕에 파놓은 굴을 뜻하는 것은 아니예요. 자연암굴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무와 풀로 만든 작은 움막이 대부분이지요. 그 움막은 그야말로 비와 바람만 가려줄 정도로 초라하답니다. 집기도 식기 몇 개가 전부일 정도예요. 혼자서 극단의 고행과 금기생활을 하는 곳일 따름이지요.

하지만 이들 토굴이 죄다 형편없는 움막인 것도 아닙니다. 으젓한 암자(庵子)인 곳도 적지 않아요. 암자란 절의 작은 집을 일컫기도 하고, 스님이 임시로 거처하며 도(道)를 닦는 곳을 말하기도 하니까요. 큰 사찰에 딸린 암자에 신도들이 많아 본찰보다 더 큰집처럼 변질되는 곳도 있지만, 원래의 암자란 스님이 오로지 수행을 하며 정진하는 곳이지요. 지리산에는 이런 암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삼정봉 문수암, 노고단 남쪽의 문수암, 반야봉의 묘향대 등이 그러합니다. 이런 암자들은 거처하기에 거의 불편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삼국시대 이래 불가에서 배출한 여러 고승대덕들은 한결같이 움막 또는 허름한 암자에서 토굴생활을 하며 도를 깨쳤다고들 하지요.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편안하게 사는 데도 도를 터득할 수는 없을 테지요. 고승대덕들이 얼마나 가혹한 토굴생활을 이겨내고 득도를 했는 지는 고승열전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삼정봉 문수암 스님의 경우를 보면 토굴생활 만으로도 부족한지, 봉암사 등지의 선방을 찾아 하안거 동안거의 수행정진을 계속하더군요. 그래도 암자에 거처하며 수행을 계속하는 것은 선택받은 경우라 하겠지요.

지리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도 닦는 공부를 한다는 사람이 기거하는 움막을 만나본 경우가 있는지요? 그 토굴도 제마다 그 모양이 다르겠지만, 처음 그 모습을 보게 된다면 아마도 무척 놀라게 될 것입니다. 아니, 와락 덮쳐오는 무서움을 느낄 것이예요. 지난 89년 나는 덕평봉 선비샘에서 의신마을로 내려오는 산길 옆의 움막을 처음으로 지켜보았답니다. 의신마을에 사는 두 산악인의 안내를 받아 찾아갔었지요. 안내자들은 움막에 기거하는 사람을 잘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움막을 보는 순간 덜컥 겁이 나더군요.

우선 그 움막으로 들어가는 길이 전혀 없었어요. 사람이 찾아들까봐 나뭇잎 등으로 길 흔적을 지운 것이지요. 산중 깊은 적막에 완전 고립된 곳,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도 듣지 못할 그런 곳에 칙칙한 형태의 움막이 있더군요. 작대기 같은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풀잎으로 지붕과 벽을 삼은 그 움막은 비바람에 찢겨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습니다. 한낮에 힘센 장정들과 함께 찾았는 데도 무서움이 앞서는데, 그곳서 혼자 토굴생활을 하는 이는 밤마다 얼마나 무서울까요? 나는 도사 아닌 재벌이 된다고 해도 거기에 살 자신이 없었어요.

요즘 함께 지리산을 찾고 있는 한 친구는 임걸령 아래편에 있는 한 도사의 토굴에 들렀던 얘기를 하더군요. 우연히 어느 부인을 따라 그 곳에 갔었는데, 그 부인은 임걸령 사면을 내려선 뒤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계속 그 흔적을 지우더라네요. 그리고 가로, 세로를 지그재그로 한동안 정신없이 걸어간 끝에 한 도사의 토굴에 닿았답니다. 그렇게 절묘하게 세상과 단절된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군요. 그런데 이 친구는 그 이후 몇 차례 그 토굴을 찾아나섰지만, 두번 다시는 토굴의 근처에도 접근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도사가 사는 이런 토굴은 산꾼들이 바로 옆을 지나치면서도 전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런 토굴에선 나는 솔직히 하룻밤도 지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1년이고, 2년이고 혼자 토굴에서 기거하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저절로 무엇을 얻게 되나봐요. 하불, 상불의 토굴에서 공부했던 이들이 절륜의 정력을 얻는 것도 어쩌면 불가사의가 아닐 듯합니다. 진귀한 나무뿌리와 풀잎들을 먹으며 혼자 사노라면 일반인과는 달라질 수밖에요! 하지만 도(道)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네요. 선택을 받은 특별한 사람을 제외한다면요!

어떤 신통한 힘을 얻는 데는 상응하는 고행과 난관을 극복해냈을 거예요. 그 고난의 길은 아무나 도전할 수 없고, 극복해낼 수도 없겠지요. 어떤 신통력이든 그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선비샘 아래의 그 토굴을 거쳐간 사람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득도에는 한결같이 실패했다네요. 토굴생활을 하며 사람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진정한 깨우침을 얻는 것과는 거리가 먼 거예요. 득도에 실패한 이들은 토굴생활이 아까운지 대개 사이비 무당이나 엉터리 점장이로 흘러간대나요. 그래서 혹세무민이나 한다면 참으로 딱한 일이지요.
  
  • ?
    moveon 2002.06.19 12:44
    스님들이 특히 경계하는 일도 이런 "독각" 혼자서 깨닫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우연히 선비샘 근처에서 불쑥 접했던 스님을 보고 놀랬던 기억이 납니다.
  • ?
    솔메거사 2002.06.19 17:42
    일반인들은 이해할수 없는 道를 구하는 공부...영험한 지리산의 너른품에는 토굴공부를 하는 사람도 많군요. 인간의 길흉화복을 꿰뚫어보는 도인의 경지를 추구하는 사람들....
  • ?
    yalu 2002.06.21 11:26
    머리가 쭈뼛하네요...진짜예요?^^이런 일들이...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2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2) 4 최화수 2004.06.27 5986
211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6) 3 최화수 2004.07.09 5983
210 변강쇠와 옹녀가 살던 마을(1) 3 최화수 2004.06.13 5972
209 신통한 선물(?) '절륜의 정력' 3 최화수 2002.06.11 5969
208 노고단 '역사'도 복원해야 한다(3) 4 최화수 2005.06.10 5969
207 "흙 파고 씨 뿌린 일 죄가 되는가"(3) 4 최화수 2005.10.05 5967
206 지리산의 '자이언트(거인)'(1) 5 최화수 2002.10.28 5946
205 엄천사(嚴川寺) 차향(茶香)(1) 3 최화수 2004.07.21 5945
204 '소리'에 온몸 내던진 이화중선(4) 4 최화수 2005.05.13 5938
203 '지리산 사랑하기' 그 방정식(1) 4 최화수 2002.06.25 5933
202 황산대첩(荒山大捷)과 승전비(2) 4 최화수 2005.01.21 5931
201 부산 사람들의 지리산 사랑(10) 4 file 최화수 2010.05.08 5923
» 토굴서 '공부'하면 도사 되나? 3 최화수 2002.06.18 5921
199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딜레마(2) 8 최화수 2007.01.09 5920
198 노고단 산장과 '무장비 등산'(3) 4 최화수 2005.08.03 5913
197 얼룩 번져나는 '섬진강 그림'(3) 8 최화수 2003.11.10 5907
196 노고단 산장과 '무장비 등산'(1) 3 최화수 2005.07.13 5901
195 지리산 새우섬을 아시나요?(1) 5 최화수 2004.08.20 5894
194 노고단 산장과 '무장비 등산'(4) 5 최화수 2005.08.16 5894
193 칠불암(사) 오르는 도로에서(1) 2 최화수 2002.09.03 589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 Next
/ 1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