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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704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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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에 대한 개념과 인식은 지난날과 지금이 비교가 되지 않지요.
요즘은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가 언제나 풍성하니까 설 명절이 특별히 기다려질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1960, 70년대까지는 명절 아니면 배불리 먹을 것도 없고, 설이라야 무명베옷이나마 새옷을 입을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설날의 명절 기분은 지난날이 지금의 몇 갑절이나 좋았답니다.
아무리 가난한 마을이라도 이 명절 때만은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꽃밭을 이루었고, 윷놀이 널뛰기 등 민속놀이로 신명 한마당이 펼쳐지고는 했어요.

요즘은 설, 추석 때마다 이른바 '귀성(歸省)전쟁'을 치르지요. 대처에 사는 사람은 거의 고향 다녀오는 것이 명절의 가장 큰 일인 듯합니다.
민족 대이동에 따른 차량 정체로 난리를 치르면서 고향에 가보았자 늙은 부모밖에 없어 썰렁하지요.
요즘은 60대 노인네들이 마을청년회 회원이에요.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대처로 떠나가고 없어요.
하지만 1960년대까지는 남녀노소 구분없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어요. 지리산 골짜기에 초등학교 폐분교가 많은 것도 지난날 어린이가 많았던 증거입니다.

오지 마을일수록 설 명절은 더욱 즐거운 법입니다. 음식도 놀이도 모두 함께 어울려 즐기기 때문이지요.
지리산권에서 전기가 가장 늦게 들어온 곳이 오봉리입니다. 왕등재 옆 외고개 북쪽 기슭에 있지요.
10여년 전 나는 방곡천을 따라 이 마을을 찾아가는 동안 지리산 주변의 가장 때묻지 않은 골짜기임에 경탄했지요.
그 골짜기 중간에서 마주친 방곡리와 가현마을의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답니다.
1951년 설 다음날 아침, 주민들이 몰살당한 비극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빨치산이 아니었다면 군부대는 커녕 지서 순경조차 발길 한번 들여놓지 않았을 외진 산골짜기입니다.
엄천강으로 흘러드는 방곡천은 꽤 넓은 논밭을 옥토로 가꾸고, 좌우 지리산 산자락이 청정지역으로 감싸안고 있어요.
이 골짜기로는 지리산 등산에 나서는 이들도 거의 없답니다. 그만큼 때묻지 않은 순결한 처녀지이지요.
이곳 마을 청년 40명이 군부대 노역에 동원됐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것은 그렇다치고, 노인과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 떼죽음 당할 줄은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설 바로 다음날 아침 가현리와 방곡리 주민들을 집단 학살시킨 11사단 9연대 화랑부대는 정오께 서주리 강변 모래밭에 화계리 등 인근 13개 강변 마을 주민 2000명을 집결시켰답니다.
서주리 강변은 동천강이 엄천강으로 흘러드는 곳입니다.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와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자리합니다.
왕산 자락의 전구형왕릉이 가까이 자리한 곳으로 현재는 임천교, 서주교의 두 교량이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고, 그 위로 휴천계곡 50리를 따라가는 포장도로가 열려 있지요.

지리산 주능 북쪽의 모든 계곡의 물이 이들 마을 사이로 흘러내리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1951년 설 명절, 이 아름다운 서주리 강변에선 양민들이 흘린 피가 바다를 이룹니다.
이곳에서는 가현과 방곡리에서와는 달리 빨갱이 성분이 강한 분자들을 추려낸다며 주민을 모두 엎드리게 했어요.
4~5시간을 차가운 모래바닥에 엎드려 떨고 있는 주민들 가운데 군화발에 등을 채이는 사람은 앞으로 불려 나갔지요.
밑도 끝도 없이 불려나간 300여명은 빨갱이 성분이 다분하다는 거였어요.

[대대장의 사격명령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탄알이 소낙비처럼 구덩이로 향했다.
살점과 팔, 다리, 몸뚱이, 내장은 내장대로, 목은 목대로 떨어지고 날아가며 튕기곤 하였다.
계속되는 총소리가 비명을 지르게 하고, 피바다를 이루며 비린내가 진동하였다.
기관총의 실탄도 소진되자 투척조는 수류탄의 핀을 뽑고 구덩이 속으로 던졌다.](송진현의 '돌개바람')
바로 이날 하오 6시 서주리 강변 진흙 구덩이 속에서 쓰러진 주민 300여명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기를 업은 부인네들도 다수라는군요.

이 잔혹의 극치인 양민 집단학살극을 치러낸 군부대는 그 다음날 인접한 거창군 신원면으로 옮겨갔지요.
거기서도 양민 719명에 대한 집단 살륙극이 자행됐어요.
양민 학살극은 그 며칠 뒤인 정월 대보름 다음날,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점동부락 뒤편의 소정골짜기로 이어졌답니다.
어디선가 버스 11대에 양민들을 잔뜩 싣고 온 군인들은 이 골짜기에서 600여명 전원을 학살했답니다.
외공리 양민학살대책위는 지금 양민학살 증거보전을 위해 사유지에 있는 '무덤 땅 1평 사기운동'까지 벌이고 있답니다.

지리산 양민학살 사건은 아직 '미결의 장'으로 묻혀 있습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 유가족 보상과 명예 회복 조처가 마무리 되지 않고 있어요.
과거 독재정권 아래서 발생한 의문사 진상을 밝히기 위한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2000년 10월 출범했지요. 민주화운동을 하다 희생된 억울한 죽음들에 대한 진상 규명이 반드시 이뤄져야 마땅하겠지요.
그에 못지 않게 지리산에서 아무 죄 없이 무참하게 숨진 양민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유가족의 명예회복 조처도 미뤄둘 일이 결코 아니에요.
        
  • ?
    솔메거사 2002.02.14 17:35
    동족의 손에 자행된 참살극-[함양거창 양민학살사건]앞에서 할말을 잊게 하는 부끄럽고 험한 역사입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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