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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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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년 동안 신흥마을에서 칠불사를 걸어서 오르내렸어요. 걸어서 오를 때는 주로 목통마을을 통과하는 지름길을 따라 갔지요. 목통마을은 범왕리와는 달리 도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겨우 10 가구의 이곳 주민들은 그러나 하동읍보다 전기를 먼저 썼다더군요. 화개재에서 흘러내리는 목통계곡에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벼를 도정하기도 하고, 밤에는 집집마다 전기를 공급했다네요. 근검절약하는 산간생활에 익숙한 주민들은 마음만은 넉넉하여 누구나 친절하고 소탈했는데, 정 또한 넘쳤어요.

칠불사를 찾을 때 그 길목의 이 목통마을에 들러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운 시간이었지요. 이 마을은 사하촌으로 대개 칠불사에서 일을 해주고 품삯을 버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요. 그들은 주지스님의 색다른 면모며, 사찰에서 벌이는 불사 등에 대한 뒷얘기를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런 얘기들은 칠불사를 또다른 각도에서 이해를 하게 해주었답니다. 하지만 이 목통마을도 지난날의 그 마을이 아닙니다. 도회지 사람들이 들어와 별장인지, 아방궁인지 지어 살게 되니 민심 또한 달라진 것이지요.

목통마을은 최근까지 단천골 단천마을처럼 지리산 산간부락의 전통적인 생활 풍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어요. 주민 소득도 크게 넉넉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고만고만 했어요. 집집마다 토봉을 치고 산간 영농을 하고, 나무로 불을 때고 했어요. 그래서 저녁밥 지을 때는 온 마을에 구수한 연기가 피어오르고는 했답니다. 그래서 나는 지리산의 옛 풍정을 그대로 이어가는 민속마을로 지정하여 보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물레방아도 사라지고 주민의 의식도 알게 모르게 변한 것 같아요.

이런 변화가 어쩌면 그렇게 급작스레 이뤄질 수 있을까요? 나는 그 의문을 칠불사로 오르는 도로에서 찾았습니다. 지렁이처럼 뚫렸던 도로가 확, 포장된 뒤로 도로 주변의 옛 귀틀집이나 하천부지 등에 고래등 같은 '어마무시한' 집들이 앞을 다투어 들어서기 시작한 겁니다. 돈많은 이들은 쓰러져가던 초가라도 사들인 뒤 주변 하천부지나 산지며 전답을 끌어넣어 자연석을 성곽처럼 두르고 근사한 별장을 짓는 거예요. 민박집과 음식점도 들어섰는가 하면 산비탈을 헐고 대규모 생수공장까지 들어섰지요.

나는 칠불사로 오르는 도로 주변의 거의 모든 언덕과 하천부지가 가진 자들의 개인땅으로 흘러들어 돌담장을 두른 것에 너무 실망하고 있답니다. 길가의 야생화며, 하찮은 떨기나무까지 긴 오름길의 고단함을 덜어주고 정겨운 말동무가 되어주던 것을...! 그보다 칠불사를 오르는 동안 돈으로 떡칠(?)한 집들이 눈과 마음을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하더군요. 지리산 높은 산비탈에 뭘 그리 요란하게 집을 지어야 하는지요. 그냥 고만고만한 오두막이라도 불편없이 살 수 있고, 정겹게 보일 것이예요.

화개동천은 차 시배지로 40~50리에 걸친 우리나라 최대 야생차밭이 예로부터 이름나 있지요. 지리산 화개동천을 찾아 입산을 했고, 또 이곳에서 공부하여 깨달음을 얻었던 서산대사는 화개동천 야생차를 마시며 이렇게 노래했다지요. '낮에는 차 한 잔, 밤에는 잠 한 숨, 푸른 산과 흰구름, 함께 무생사(無生死)를 말하세.' 칠불암 도로를 따라 오르면 이 시가 저절로 떠오르는 거예요. 김수로왕의 7왕자가 운상원에서 수도할 때 심은 차의 유종(遺種)이 이어져 화개차가 됐다는 설화도 전해오고 있거던요.

칠불사로 오르는 길에선 초의(草衣)선사를 생각지 않을 수 없지요. 우리나라 차(茶) 전래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차 종자를 가지고 와서 지리산에 심었다고 합니다. 그 화개차를 빛낸 이 가운데 한 사람이 초의선사일 거예요. 칠불암에서 그이는 이렇게 노래했지요. '밝은 달은 촛불이며 나의 벗이네. 흰 구름자리 펴고 병풍도 되네. 젓대소리 솔바람소리 소량도 해라. (중략) 흰 구름, 밝은 달 두 손님 모시고 나 홀로 차 따라 마시니 이것이 승(勝)이로구나'

초의선사가 칠불암으로 오르던 그 오솔길 대신 포장도로가 열려 있고, 그 도로 주변에 외양부터 대단한 별장이며 저택들이 들어서 있지요. 물론 그들은 이 골짜기를 걸어서가 아니라 승용차로 편안하게 오를 거예요. 이들이 초의선사의 저 차시(茶詩)를  생각이라도 해보았을까요? '흰 구름, 밝은 달 두 손님 모시고 나 홀로 차를 따라 마시니 이것이 승이로구나.' 어쨌거나 나는 칠불사로 오르는 길고 비탈진 도로를 따라가며 서산대사의 '낮에는 차 한 잔, 밤에는 잠 한 숨...'이란 시도 함께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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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거사 2002.09.19 10:19
    아마도 초의선사의 '東茶頌' 한구절인듯하여 감동적입니다, 저는 그길을 승용차로 서너번 갔었기에 범왕리쪽으로만 통과했지요.10여년전에 애들과 칠불암아자방을 돌아보고 산길의 자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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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거사 2002.09.19 10:24
    골짝에서 코펠밥을 해 먹고 쉬다가 내려온 기억이 새삼스럽고 때가 가을이라서 경사진 산동네에 울긋불긋허던 감을 보고 좋아하던 애들과 다시한번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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