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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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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동천 '삼신동(三神洞)'은 의신, 영신, 신흥 세 마을을 일컫습니다. 최치원 등이 신선이 살만한 곳이라고 하여 그렇게 명명했다지요. 하지만 이 삼신동은 왜구의 침입과 임진왜란, 의병들의 항전, 여순반란과 6.25전쟁 등을 겪을 때마다 혹독한 수난을 당했어요. 일제 때 삼신동 주민들은 義神, 靈神, 神興이라고 썼던 마을 이름에 모두 귀신 신(神)자가 있어 재난을 입었다고 생각하여 마을 이름의 한자 글자를 義信, 新興으로 바꾸거나, 영신은 아예 덕평(德平)으로 고쳤다는 군요. 그러니까 이제는 진정한 삼신동(三神洞)은 사라진 셈이지요.

사실 지금의 신흥부락은 옛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고, 지난날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찾을 수가 없어요. 그 유명했던 사찰 신흥사(또는 신응사) 자리에는 왕성초등학교가 세워져 있고, 바위에 새겨놓은 '三神洞'과 '洗耳岩'(세이암) 각자(刻字)가 고작이지요. 다만 왕성초등학교 교문 앞에 수령 천년의 도나무(경상남도 지정보호수 1호)가 전설을 안고 서 있답니다. 이 나무는 고운 최치원이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두었더니 잎이 나서 지금까지 싱싱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른 몇 사람이 양팔을 벌려야 될 만큼 큰 둥치예요.

하지만 '홍류교 능파각'이 섰던 곳에 대한 묘한 어떤 미련을 떨칠 수가 없네요. 거기에는 또다른 신비로운 사연이 전하기 때문입니다. 서산대사의 '능파각기'에 '도사들이 환골의 수련을 하지 않아도 바람을 이끌어 날렵하게 다닐 수 있다'는 대목이 있지요. 바로 그 대목이 주목되는 것입니다. 홍류교 능파각이 있던 곳에는 원래 위험한 물길 위에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가 있었다지요. 그런데 그 외나무다리를 신선이 된 고운 최치원이 흰 말을 타고 평지처럼 건너오갔다는 겁니다. 김일손(金馹孫)의 '두류기행록'에 그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신흥사 주지 옥륜 스님이 조연 스님과 함께 두 시내가 합쳐지는 곳에 '홍류교 능파각'을 세운 것은 조선 명종(明宗) 16년(1561년)이예요. 그런데 그보다 72년 앞인 성종(成宗) 20년(1489년)에 이곳을 찾았던 김일손은 신흥사의 운중흥(雲中興), 요장로(了長老) 두 스님으로부터 홍류교 이전의 외나무다리를 건넌 신선 얘기를 듣게 됩니다. 김일손은 직접 그 외나무다리를 건너고자 했지만, '몇 걸음 내딛지 않아 정신이 아찔하여 떨어질 뻔했다. 되돌아와 아래로 내려가 옷을 걷어올리고 건넜다'고 합니다. 두 스님이 들려준 얘기는 이러합니다.

[근세에 퇴은(退隱) 스님이 신흥사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스님은 자신의 문도에게 "손님이 오실 것이니 깨끗하게 소제하고 기다려라"고 말했답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등넝쿨을 엮어 가슴걸이와 고삐를 한 흰 말을 타고 재빨리 건너오는데, 외나무다리를 마치 평지처럼 밟으니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절에 도착하자 스님이 방으로 맞아들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손님이 작별하고 떠나려 하니, 절에서 공부하고 있던 강(姜)씨 성을 가진 젊은이가 그 기이한 손님을 신비롭게 여겨 말의 재갈을 잡고 그를 따라가려 했습니다.

손님이 채찍을 휘두르며 떠나려고 하는 바람에 소매에서 책 한 권이 떨어졌는데, 젊은이가 황급히 그 책을 주웠답니다. 그 손님은 "내 잘못으로 속세의 하찮은 사람에게 넘겨주고 말았구나. 소중히 여겨 잘 감춰두고 세상에 보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 뒤 손님은 급하게 떠나 다시 외나무다리를 지나가버렸습니다. 강씨 젊은이는 지금 백발 노인이지만, 아직 진양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그 책을 보여달라고 해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합니다. 그 손님은 고운(최치원)인데, 죽지 않고 청학동에 살고 있다 합니다.]

김일손은 운중흥, 요장로 두 스님으로부터 듣게 된 이 이야기를 '두류산 기행록'에 그대로 적었지요. 그이도 승려가 한 이야기는 터무니없다고 덧붙여 썼답니다. 하지만 그이는 신흥사를 떠난 이틀 뒤 불일폭포를 찾게 되는데 불일암 스님으로부터는 '청학(靑鶴)'이 날아들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지요. 그런가하면 김일손보다 3년 먼저 불일폭포를 찾았던 남명 조식은 불일폭포 아래 학연 암벽의 이끼를 걷어내고 '三神洞' 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손수 확인하기도 했답니다. 이처럼 화개동천에는 신비로운 얘기들이 전해오고 있는 것이지요.

신라 말기에 산으로 들어간 고운 최치원이 조선시대까지 흰 말을 타고 다니는 신선으로 목격됐다는 것은 물론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얘기지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리산 연봉을 감싸고 흐르는 연무를 지켜보며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자연세계의 신비로움에 흠뻑 빨려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의 생각의 깊이와 넓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겠지요. 홍류교 능파각이 있던 자리에서 외나무다리가 걸려 있던 때의 '신선' 이야기, 거기서 무엇을 느낄 것인지도 생각하기 나름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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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거사 2002.05.09 17:17
    불일폭에 오르자면 야영장자리 못미처 왼쪽곁에 있는 너럭바위- 孤雲선생이 학을 불러서 타고다녔다는 [喚鶴臺]와도 연결이 되는 깊은 전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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