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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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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고들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길흉화복(吉凶禍福)의 덧없음을 비유한 말이지요. 화가 복이 되고, 복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화를 불러들이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저 유명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지리산 입산에서도 그것을 읽을 수 있답니다. 흔히들 서산대사라면 금강산이나 묘향산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이가 처음 머리를 깎고 불문에 귀의한 것도 지리산이요, 전후 20여년에 걸쳐 용맹정진하여 도를 얻고, 왕성한 저술활동을 한 곳도 지리산입니다.

'창밖에 슬피 우는 두견새 소리 / 눈에 가득 봄산이 다 고향 같도다 / 물 길어오다 문득 바라보니 / 흰구름 사이에 청산이 떠 있어라' 지리산 화개동천에서 그는 이 시를 처음으로 쓰고 머리를 깎았어요. 그의 나이 열여덟, 지리산 삼신동에 들어온 지 3년째였지요. 그로부터 그는 삼철굴(三鐵屈)에서 3년, 대승사에서 2년, 원통(圓通), 원적(圓寂), 은신(隱神) 등 여러 암자에서 여러 해 등 모두 10년 동안 수도에 전념하지요. 그가 마침내 도를 깨친 것은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라고도 하는 원통암에서였다고 합니다.

휴정(休靜)이란 법명을 얻은 그이는 그로부터 지리산을 떠나 오대산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 등에서 엄청난 족적을 남기고 1560년 다시 지리산 삼신동으로 돌아옵니다. 신라말 왕족 거서한(居胥汗)이 세웠던 내은적암을 고쳐 짓고 자신의 호를 딴 청허당(淸虛堂)을 지어 수많은 저술활동을 하지요. '삼가귀감(三家龜鑑)' 등 역저가 이곳에서 완성됐어요. 그이는 특히 '홍류교(紅流橋) 능파각(凌波閣)'이란 글을 남겼는데, 아주 명문장일 뿐만아니라 지리산 삼신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지요.

서산대사에게는 갖가지 신비로운 일화들이 따르고 있어요. 특히 임진란 때 승군들을 지휘, 신출귀몰하면서 세운 전과는 너무나 눈부시지요. 하지만 그이는 지리산, 그것도 삼신동에서 전후 20년을 수도하고 저술활동을 하면서 이뤄놓은 발자취가 더 큰 빛을 띤다고도 할 수 있어요. 지리산 개산(開山) 역사를 푸는 소중한 열쇠가 된 월궁(달의 궁전)에 대한 이야기도 그이가 쓴 '황령암(黃嶺庵) 사기(寺記)'가 그 단서를 제공하고 있답니다. 지리산 인문사적을 추적하는 데는 그이의 글이 절대적인 몫을 차지하지요.

서산대사의 위대한 업적을 나로선 감히 논할 수도 없지요. 하지만 그이가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은 오로지 지리산에 입산한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지리산이 위대한 인물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그이를 통해서 엿보게 됩니다. 1520년 최세창(崔世昌)의 외아들로 태어난 운학(雲鶴)이 바로 그이였지요. 그는 아홉 살에 어머니를, 다음해에 아버지를 잃었어요. 고아가 된 그를 안주목사 이사증(李思曾)이 한양으로 데려가 공부를 시켰지요.  성균관에서 유생들 틈에 끼어 공부했으나 학문이 늘지 못했다고 합니다.

운학 소년은 성균관에서 3년을 공부하여 생원시(生員試)를 보았지만 낙방하고 말았다네요. 동문 세 사람은 실망하여 전라감사가 되어 떠난 스승을 만나러 갔다는 군요. 전주에 닿고 보니 스승은 상을 만나 한양으로 가고 없었어요. 세 소년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다가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산천 구경이나 하자고 하여 지리산으로 발을 들여놓았지요. 지리산 삼신동을 찾은 운학 소년은 반년 동안 여러 사암을 돌며 방랑생활을 했어요. 결국 숭인(崇仁)이란 스님의 권유로 운학 소년은 입산 수도의 길을 걷습니다.

결과적으로 생원시에 낙방한 것이 전화위복이 된 것이지요. 그는 지리산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냥 평범한 유생으로 평생을 천덕꾸러기와 다름없이 살았을 거예요. 별다른 재능도 없는 그를 이 나라의 특출한 인물로 길러낸 것이 불가였습니다. 아니 지리산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그이는 삼신동에서 용맹정진을 하여 깨우침을 얻었으니까요. 서산대사를 말할 때 지리산을 빼놓을 수 없고, 지리산을 얘기할 때 서산대사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지요. 명산 지리산이 큰 인물을 배출한 것이지요.
  
서산대사의 글을 통하여 우리들은 지리산의 인문사적 그 핵심을 더듬어 보는 것도 가능하지요. 지리산에서 차지하는 서산대사의 비중을 짐작할 만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정녕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이가 입산 득도한 곳이 화개동천이고, 전후 20년을 머물며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도 지리산에는 그이를 기리는 어떠한 기념물도 없답니다. 그이의 유품이나 기념관은 지리산 아닌 다른 곳에 마련돼 있지요. 심지어 그이의 청허원이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지리산 문화 그 맹점의 표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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