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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82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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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시루봉 외국인 별장촌(외국인선교사 수양촌)은 컨세트 건물의 교회가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해줍니다.
그 교회 뒤편 반쪽이 '王甑莊(왕증장)'이에요.
함태식님이 기거하는 왕증장, 그 문턱에는 '無碍人(무애인)'이란 글이 걸려 있었어요.

'一道出生死 一切無碍人'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은 나고 살고 죽는 것이 하나의 길이다.)
함태식님은 산자락에서부터 사들고 올라온 '보해'소주가 왕증장에 이르면 어느새 '무애주(無碍酒)'로 탈속한다고 말한 바 있지요.
"거리낌 없이 살려고 해. 무애인, 바로 그것이오. '일체(一體)는 유심조(唯心造)'라고, 모두 마음 먹기에 달렸지."

왕증장 앞 빨랫줄에 색다른 물건 하나를 걸어두었더군요. 무슨 시루 같은 것을 방충망으로 씌운 것이었어요.
자세히 보니 생선을 햇살에 말리는 것이더군요. 시골 농가에서 가끔 보는 것이지만, 그 높은 왕시루봉 산중에서 보는 맛은 또 달랐습니다.

"이광전 선생이 보기보다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지...부산 자갈치시장에 가서 손수 생선을 사다가 여기까지 지고 와선 저런 방충망을 씌워 매달아 놓은 거요. 그게 다 정이지. 이곳에 와서 정을 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스레 실감한다오."

피아골산장에서 종적을 감춘 함태식님이 왕증장에 은거한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그이와 막역한 사이인 광주와 전남지방 인사들이 잇달아 다녀갔고, 부산과 경남지역 산악인들도 꽤 많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제마다 마음의 선물을 한 아름씩 안고 왕증장을 찾고는 했었지요.
그러니까 함태식님의 표정도 어느 때보다 밝기만 했어요.

"이게 웬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가!"
함태식님은 노고단에서 떼밀려 피아골로 강제 하산 통보를 받고는 날벼락을 맞은 것으로 생각했다는 군요.

그이는 자신이 지키던 40평 단층 슬라브 '노고단산장'의 수용능력이 60~70명에 불과한데 등산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야영 텐트가 숲을 잠식하는 등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견디다 못해 전남도에 산장 증축을 요구했습니다.
1986년, 마침내 새로운 산장 건립 공사가 시작됐어요. 그이는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알고 무척 기뻐했다는 거에요.

함태식님은 새 산장 건립공사 감독을 자청해서 맡았습니다. '노고단산장'을 16년 동안 지켜온 그이만큰 산장 공사 감독을 잘 해낼 사람도 없을 테지요.
그이는 아주 중요한 피뢰침이 빠져 있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다섯 개의 피뢰침을 설치하게도 했답니다.

1987년 겨울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현대식 3층 벽돌 건물의 새 '노고산장' 공사가 거의 마무리, 우람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을 기뻐할 틈도 없이, 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전갈이 왔던 거에요. 새 산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직영한다는 것이었지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일에 대해서 한마디 언질도 듣지 못했고, 한번도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공단측에서는 오히려 공사감독을 하는 나를 독려까지 하지 않았던가."
함태식님이 훗날 손수 쓴 책에 "이게 웬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가" 하고 당시의 상황을 그렇게 들려줍니다.

1988년 1월9일,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영의 새 '노고산장'이 개관되기에 앞서 피아골대피소로 하산한 함태식님.
그로부터 그이는 노고단에서 밀려난 분노와 회한을 삭이느라 피아골에서 괴로운 나날들을 보낸 것이지요.

1991년 11월5일, 함태식님이 피아골에서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어요.
그이는 왕시루봉의 왕증장으로 옮겨 은거한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외국인선교사 수양촌' 관리인이 된 것이지요.
왕시루봉에 안긴 그이는 어느 사이 '무애인'으로 탈속(脫俗)을 했습니다.
일도출생사 일절무애인, 일체 유심조...그이는 바로 그 경지에 이르러 마음의 평화를 얻은 거에요.

그이에게 무엇보다 감동적으로 빛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노고단산장'에 집착하지 않고 '순수자연인'으로 돌아간 것이지요.
천국의 화원 같은 왕시루봉의 아름다운 자연세계, 그이는 동화세계에 노니는 동심의 어린이처럼 즐거운 나날, 낭만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 ?
    부도옹 2004.03.07 16:43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승화시켜 '순수자연인'으로 돌아간 함태식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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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유화 2004.03.08 08:33
    천국의 화원 같은 왕시루봉의 아름다운 자연세계..꼭 한번 보고 싶네요. '순수자연인' 누구나 맘은 있어도 실천하기는 어려운데 내면의 울림을 따라 일체 유심조, 마음의 평화를 이루신 함태식 선생님 더욱 멋있으십니다.
  • ?
    솔메 2004.03.08 11:47
    함 선생님의 높고 깊은 지리사랑이 어려움을 거칠수록 [무애인]으로 승화되는 감동을 엿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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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4.03.08 11:50
    정말 꿈 없는 명분 지상주의... "국립", "관리", "공단" 등 권위로 부풀어진 단어들... 내 것이 아닌 국가 것이라는 그 맛 없는 무관심... 아이고 지겨워요. 등 돌리시길 잘 하셨죠...
  • ?
    청죽 2004.03.10 19:14
    무애인.일체유심조. 참어렵고도 어려운 글인것을 함선생님의 무한한 가슴에 경의를 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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