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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488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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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한 큰 바위에 '三神洞(삼신동)'이라고 새겨놓은 신흥부락에는 지난 84년 경상남도 보호수(保護樹)로 지정을 받은 푸조나무 한 그루가 있어요. 높이 20여 미터, 밑둥치 둘레가 6.5 미터나 되는 이 거대한 나무는 지난날의 신흥사 자리에 세워진 왕성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무성한 잎으로 하늘을 온통 가리고 있지요. 최치원이 지팡이를 꽂아둔 것으로 움이 나서 이렇게 자라났다 합니다. 그러니까 이 나무는 신라말 이래 1,000여년의 오랜 세월을 삼신동을 지켜오고 있는 셈이지요. 나는 10여년 전에 이 나무 아래서 불가사의한 경험을 했답니다.

푸조나무 바로 옆에 구멍가게를 열고 있는 2층의 양옥집 한 채가 있어요. 그 집 가게 앞에 내놓은 탁자에는 푸조나무가 드리운 나뭇잎 그늘로 여름철에는 앉아 놀기가 그저그만입니다. 발 아래 화개동천 요란한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신선이 된 최치원이 흰 백말을 타고 외나무다리를 바람처럼 건너왔다'는 얘기(김일손의 '두류산기행록')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그이가 꽂아놓은 지팡이가 움이 터 자랐다는 푸조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면서 어찌 그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좀 무엇한 얘기지만, 그이는 경주최씨 중시조(中始祖)이기도 하지요.

1989년 8월 하순의 어느날이었어요. 나는 그때 <지리산 365일>이란 글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었는데, 그 취재를 위해 신흥마을을 찾았던 게지요. 화개동천에는 영농후계자들의 모임인 '칡넝쿨회'가 있답니다. 칡넝쿨 회장 등이 이 푸조나무 아래서 나랑 한바탕 술판을 벌이게 됐어요. '칡넝쿨회' 회원들 가운데서도 술이 아주 센 세 청년이 나에게 집중적으로 술잔을 안기더군요. 쥐포 안주 한 가지에 소주를 두 박스나 비웠으니 나는 그 독주를 치사량(致死量) 이상 마셨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나를 주당(酒黨)으로 알고 시험을 했다는 겁니다.

사실 나는 날마다 술을 즐겨 마시기는 하지만, 그때도 주량이 겨우 소주 한, 두병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지리산의 진짜 주당들을 1 대 3으로 상대했으니, 죽기로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 말려들지 말았어야 했지요. 상식적인 수치로 따져도 나는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불가사의했습니다. 그렇게 술을 마신 나는 정신이 말짱했는데, 그들이 오히려 아주 곯아떨어지는 것이었지요.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산행에 나섰는데, 함께 가겠다고 약속을 했던 그들은 일어나지도 못하더군요. 이 때부터 그들은 날더러 '술고래' 라고 부르더군요.

'술고래'? 하지만 실제의 나는 '술새우'(?)에도 못 미칩니다. 나의 술 실력이란 주당들과는 아예 비교조차 안 되고, 일반 술꾼 반열에도 끼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수준이었지요. 그런데 그 날은 안주도 없이 그 엄청난 '깡소주'를 어떻게 마셨으며, 또 어째서 아무런 부작용도 없었을까요? 그래서 그것이 나로서도 참으로 불가사의한 노릇이었지요. 다음날, 그 다음날도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요. 그 불가사의가 나에게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으니까요. "나의 어디서 그 엄청난 독주를 이겨낼 힘이 있었을까? 굳이 찾는다면, '신선 할아버지' 도움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구요? 나는 그날 칡넝쿨회 청년들이 술잔을 나에게 빠른 속도로 집중적으로 안기는 것에서 직감적으로 그들의 의도를 읽어냈지요. 술시합!? 그렇습니다. 지리산 청년들이 나를 주당으로 오해하고 술마시기 시합을 걸어온 것이었어요. 그럼, 나로선 어떻게 했어야 옳았을까요? 죽지 않으려면 백기를 들어야 마땅할 노릇이었지요. 나는 잠시 그 갈등으로 고개를 들고 푸조나무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중시조 할아버지의 지팡이! 그 푸조나무 아래서 백기를 들 수야 없지 않은가! 아마도 나는 "힘을 주세요!" 라고 간청했던 것도 같아요.

'최치원 신선'이 나에게 술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아이가 들어도 웃을 얘기지요. 하지만 그 이유 밖에는 그 엄청난 술을 거짓말같이 말짱하게 이겨낼 수 있었던 까닭을 찾을 수 없으니 어쩝니까! 그날의 그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나의 의식이 어떤 착각현상을 일으켜 혼동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문도 해봤어요.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칡넝쿨회 회원들이 나를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무서운 주당'으로 아주 치부를 하더군요. 날더러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다"고 하는 말까지 하더군요. 그러니 그렇게 술을 마신 것이 틀림이 없는가 봅니다.

왕성초등학교 앞에서 하늘을 가리고 서있는 푸조나무가 과연 최치원의 지팡이였을까요? 관청에서 공식적으로 내세운 현판에도 그렇게 씌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팡이가 1,000여년의 오랜 세월을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여 삼신동을 지키고 있다는 자체가 신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푸조나무가 이처럼 거대한 나무로 살아있는 것도 '신선 최치원'의 존재를 기리기 위한 것일 테지요.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불가사의, 그것이 지리산에는 의외로 많은 듯합니다. 자연 세계, 그 무한한 영역을 아주 유한할 뿐인 인간이 어찌 짐작이라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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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lu 2002.05.18 10:25
    아!~바보 돌틔는 소리.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군요.작년 그곳을 그냥 지나쳤어요.다만,왕성초등학교몇회 동창회라는 플랜카드가 펄럭이는,뽕짝이 흘러나오는 그곳을 그냥 지나쳤네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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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거사 2002.05.18 11:15
    대단한 異蹟이 나타났구만요 ! ...지리사랑정신을 끝없이 宣揚하시는 최선생님에게는 당연스러운 이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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