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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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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꽃안개'와 수만 마리의 '햇병아리 떼'-

지리산의 인문사적에 대해 나의 눈을 뜨게 해주었던 고마운 분으로는 학교와 회사 선배였던 이종길(李鍾吉)님과 언론계 대선배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한 김경렬(金敬烈)옹이 있답니다.
이종길님은 지리산에 푹 빠져 있던 부산의 산악인 성산(成山)님과 함께 다닌 끝에 <지리영봉>이란 책을 먼저 펴냈지요.
김경렬옹 역시 부산일보 등에 지리산 관련 글을 많이 쓴 데 이어 역저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1, 2권을 썼어요.
그 뒤 나의 <지리산 365일> 4권이 나오자 한국일보 서화숙기자가 우리 세 사람을 지리산에 불러모아 취재를 한 적이 있었지요.

뱀사골 전적기념관 앞에서 만나 달궁을 거쳐 정령치에 올라 세 사람에게 '산상토론'을 시키더군요. 지리산 얘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중산리로 멀리 돌아와 하룻밤 민박을 하면서 계속 이어졌지요.
그날 밤 나는 술에 취한 김에 김경렬옹에게 덕산 잠두봉 골짜기의 '노오란 꽃안개'와 심원 골짜기의 '수만마리의 햇병아리 떼'에 대해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따져물었던 것 같아요.
지리산 이해와 사랑의 대스승인 그이의 글 가운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바로 '노오란 꽃안개'와 '햇병아리 떼'였거던요.

김경렬옹이 심원 골짜기에서 지켜보았다는 '햇병아리 떼' 얘기는 이러합니다.
1980년 10월 어느 비 개인 다음날 아침이었다네요. 임걸령에서 홀로 야영을 하고 일어났더니 천길 아래 심원계곡에서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예요.
이상하다 싶어 가만히 내려다 보니 수만 마리의 햇병아리가 골짜기를 메운 듯 깔려 있었다는 겁니다.
그이는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에 이렇게 썼어요.
'무수한 햇병아리가 골짝을 메우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수만 마리의 양떼 같기도 했다. 나는 그 때 연거푸 탄성을 올렸고...'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이는 부리나케 8㎜ 소형영화촬영기를 들이댔답니다.
자르르 자르르 물소리를 내며 필름이 돌고 있는 데도 화인더가 캄캄해졌다네요. 이럴 수가 있을까 하여 촬영기를 테스트해 보니 정상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렌즈에 은실같은 물방울이 서려 있는 것을 알고 서둘러 렌즈를 훔치고 새 필름을 갈아끼우는 사이에 햇병아리 떼가 사라졌다고 해요.
나중에 필름을 현상해 보니 앞 부분만 촬영이 됐고, 뒷 부분은 전혀 감강(感光)이 안 되어 있었다더군요. 다만 1미터쯤 기록에 성공, 환각이 아님을 알았었다네요.

김경렬옹은 또한 덕산 인근 잠두봉 골짜기의 '노오란 꽃안개'를 인근 마을 주민들의 얘기를 빌어 다음과 같이 기록했어요.
'노오란 꽃안개가 밤마다 산골짝에서 피어올랐다. 흐린 밤에는 주홍빛으로 핀 때도 있었다. 철조망으로 바리케이드를 친, 초소 근무를 하던 보초병이 질겁을 하여 도망친 일도 있었다.
마을 어린이들은 밤이면 무서워 혼자서는 변소에도 못 갔고, 어른들은 골짜기를 바라보는 것마저 꺼렸다...
아무도 없는 밤길에 도란도란 얘기 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 보았으나 오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웬 귀신 이야기? 나는 지리산 인문사적을 추적하는 책에 귀신 이야기를 들먹이는 것이 못마땅했었지요.
하지만 그이는 그곳에서 일어났던 역사의 비극을 함께 기록했답니다.
'1949년 9월에서 12월 사이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서 700명의 지리산 사람들이 죽임당했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 원리, 신천, 동당, 내대, 중산, 내공, 외공마을, 단성면 상촌, 구만, 백운마을, 하동군 옥종면 두양, 중대마을, 청암면 묵계, 갈재마을 사람들이 좌익단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덕산의 시천농업창고에 수용돼 온갖 가혹행위를 받다 총살당했다.'

하지만 나는 '노란 꽃안개'와 '수만 마리의 햇병아리 떼'를 일종의 환각현상일 것이라며 빈정거렸지요.
김경렬옹은 굳이 어떤 변명을 하기보다 자신이 근래 만났던 구빨치산의 유명한 황의지장군 하며, '망실빨치산' 정순덕 이홍희 2인부대 하며, '소정골 골짜기의 비극' 등등 지리산에서 빚어진 아픈 역사들을 장황하게, 아니 열정적으로 설명하더군요.
그는 특히 잠두봉 골짜기의 '노오란 꽃안개'를 가슴 아파했는데, 그의 역사를 보는 아픈 마음이 심원골에서 수만 마리의 햇병아리로 나타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임대영님의 지리산 사진작품전에 갔더니 김경렬옹의 그 '노란 꽃안개'와 '햇병아리 떼'를 금세 연상이 됐어요.
거뭇거뭇 어둠에 잠겨들고 있는 산릉 그 까마득한 아래에서 잠자는 강물만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거예요.
'등식 가운데 미지수를 품고, 그 미지수에 특정한 수치를 주었을 때에만 등식이 성립한다'는 방정식의 이치는 지리산을 이해하는 데도 적용이 될 듯합니다.
지리산은 미지수를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 지리산 발자취에 대한 지식이나 지리산에 대한 애정의 수치 만큼만 보여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
    솔메거사 2002.07.02 12:09
    지리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탐구심이 일반인은 이해할수없는 부분까지도 보게 하는것 같군요.'사물은 아는것 만큼 보이고 보는것만큼 느낀다'는 말도 있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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