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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93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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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쟁이' 사진작가 임대영 '지리산 사진전'을 보고-

"지리산을 사랑하는 데도 방정식이 있는 것이로구나!"
'지리산쟁이' 사진작가 임대영님의 지리산 사진전시장을 찾아보고 불쑥 머리에 떠오른 생각입니다.
나는 30년 가까이 지리산을 찾아다니며 나름대로 지리산을 사랑하는 방식을 터득했다고 믿고 있었지요. 그런데 임대영님이 포착한 지리산의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 놀랐어요. 아니,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답니다.
지리산 사랑은 그저 자주 찾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어떤 '방정식'에 따르지 않으면 백년하청이란 사실을 깨달았어요.

방정식(方程式)은 등식(等式) 가운데 미지수를 품고, 그 미지수에 특정한 수치를 주었을 때에만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말하지요. 이 특정한 수치를 방정식의 근(根)이라 이르고, 이것을 구(求)하는 것을 방정식을 푼다고 하지요.
지리산을 사랑하는 데 까다로운 수학의 방정식을 들먹이는 것을 얼토당토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지리산은 적당하게 그저 찾아가기만 하는 것으로는, 또는 산행 목적만으로 찾을 때는 그 진수(眞髓)를 결코 찾아낼 수 없다는 진리를 임대영님의 지리산 사진들이 보여주더군요.

나는 솔직히 사진에 대한 식견이 전혀 없음을 먼저 고백합니다. 그저 아무 것도 모르는 관람자의 입장에서 임대영님의 지리산 사진작품들을 보았지요.
하지만 나의 눈에 드러나는 그 사진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빛깔'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지리산의 빛깔'!
나로선 상상도 못한 경이로움의 극치였습니다. 거뭇거뭇 어둠이 묻어가는 반야봉 너머로 선홍빛깔이 거대한 부채살처럼 하늘로 뻗어오른 것 하며, 어두운 암청색 산자락들에 둘러싸인 맑고 밝은 산릉들의 너무나 순수한 연초록 빛깔의 그 투명함...!

지금까지 나의 눈으로 본 지리산의 빛깔은 어땠는지 한번 되돌아보았답니다.
신록이 오기 전에 먼저 산자락을 뒤덮는 분홍, 그리고 신록과 한여름철의 암청색, 깊은 계곡 폭포수의 흰색, 단풍의 현란한 빛깔들, 비가 그친 뒤 솟아오르는 연무와 겨울철 설화의 순수 백색, 그밖에 철쭉밭이며 야생화들의 청초한 꽃빛깔들이 있겠지요.
반야낙조도 지켜보았고, 섬진청류의 투명한 빛깔도 거푸 보았고, 천왕봉 일출의 광휘로운 색채도 경험했지요. '노고 운해' 뺨치는 '장터목 운해'를 지켜보며 목화밭에 침잠하는 착각에도 빠졌고요.

하지만 임대영님이 포착한 부채살처럼 하늘로 뻗어오르는 선홍빛의 거대한 파노라마는 본 적이 없어요.
"합성사진이 아닌가 의문을 갖는 이도 있더군요."
임대영님의 이렇게 말하자 함께 있던 사진작가 한 분이 "내가 그 촬영 현장에 없었다면 그런 의심도 할 법하지요"라고 하더군요.
임대영님은 "지리산을 찾는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지요. 사진작품을 염두에 두었으니까 이들 빛깔을 만날 수 있었지요." 하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 함께 있던 그 작가는 자신은 렌즈에 담는 데는 그만 실패했다네요.

"마음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요. 그냥 그저 지리산을 오르고 내리기에만 바쁜 이들에게 어찌 저 경이로운 지리산의 색채가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임대영님의 작품 가운데 운무에 반쯤 가린 천왕봉이 있어요. 그 한 컷을 포착하고자 눈속에서 하루종일 강풍을 맞으며 기다렸다더군요.
등산화 속의 발이 얼어붙었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고 순간적으로 운무를 떨쳐내는 천왕봉을 기어이 카메라에 담았다네요.
그런 뒤 마야계곡을 내려가다 거꾸로 처박혀 무거운 장비 때문에 혼자선 일어나지도 못했다더군요.

나는 80년대 중반 사진기자와 함께 지리산 출장을 갔었지요.
노고단 원추리 군락지가 황등색으로 빛나는 모습을 촬영해야 하는데 짙은 운무가 뒤덮고 있었어요. 무려 세 시간 이상 기다렸더니 원추리 화원이 겨우 얼굴을  내밀더군요.
하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면 운무가 뒤덮고는 했어요. 사진기자는 애를 태우며 구시렁거렸어요.
하지만 나는 살짝 얼굴을 내비쳤다가 수줍은 산골색시처럼 금세 운무를 뒤집어쓰는 원추리 군락의 눈부신 황등색에 넋을 빼앗겼지요. 미인은 고운 속살은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법이랍니다.

지난해 여름 중봉에서 만난 한 사진작가는 한달째 계속 중봉에만 머물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때는 그렇게까지 할 게 뭐 있느냐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임대영님 사진을 보니 이제야 깨우쳐지는 것이예요.
"지리산 사랑의 방정식은 이 능선 저 골짜기를 쫓기듯이 오르내리는 데 있지 않다. 어느 한 곳에선들 간절한 생각으로 기도를 하듯이 기다리며 머물고 있어야 한다."
사실 지리산을 사랑한다면서 거꾸로 학대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오늘입니까.
임대영님의 지리산 사진전이 안겨준 크나큰 교훈입니다.
  • ?
    yalu 2002.06.25 15:51
    저..사실,임대영님 사진전 후딱보고 빵사먹으로 비엔씨 갔거든요.부끄럽네요.전시끝나기전 다시 가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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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거사 2002.06.25 17:53
    지리산만 고집하는 임대영님의 혼이 담긴 걸작품이 방장님의 헌사로 더욱 빛을 내는군요. 한점의 작품을 위한 작가의 沒入이 어떤것인지 수학적개념의 비유가 이채롭습니다...
  • ?
    임대영 2002.06.26 08:54
    좋은 말씀 가슴 깊이 새겨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 ?
    하얀능선 2002.06.27 21:55
    전, 임대영님의 사진을 보고 지리산에 불이 난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어쩌면 저런 멋진 지리산을 포착하셨을까?? 임대영님의 지리산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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