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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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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사람들이 "신선이 옥피리를 분다"고 한 것은 칠불암 전신인 운상원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보옥선사가 가락국 7왕자를 데리고 이곳을 찾을 때 한 가닥 현악기인 '아크탈'과 퉁소인 '분지'를 갖고 왔을 거예요. 보옥선사가 인도에서 가져왔던 그 악기를 운상원에 들어올 때 떼놓고 왔을 까닭이 없지요.
그렇다면 그 '신선의 옥피리'는 그 한때의 소리로 그친 것일까요?
이 '신선의 옥피리' 소리가 우리의 토속음악과 융합되어 국악의 시원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일부 인사들의 주장이지요.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날까요.
'삼국사기 악지'는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법을 닦아 30여곡의 새로운 거문고 가락을 지어 제자인 속명득에게 그 음악을 전했다는 것이지요.
속명득은 이를 다시 귀금에게 전해줌으로써 금도(琴道)를 계승했답니다.
그런데 옥보고는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년) 때 사람으로 가락국 보옥선사의 운상원 시절과는 약 500~600년의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보옥선사와 옥보고는 아무 관계가 있을 수 없는 것이 되지요.

하지만 노산 이은상님을 비롯하여 일부에서는 보옥선사가 곧 옥보선인이요, 옥보선인은 곧 옥보고라는 등식을 성립시킵니다.
이 추론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 때가 아니라 가락국 김수로왕 때 옥보선인, 곧 옥보고가 현재의 칠불암, 곧 운상원에서 50년 동안 거문고를 갈고 닦아 새로운 곡을 창작하여 보급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하지만 금도가 끊어질 것을 염려한 신라왕이 윤흥을 남원(南原) 태수로 삼아 귀금에게 전수를 간청한다는 기록이 있지요.
남원은 칠불암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곳이지요.

이병도의 '삼국사기 역주(譯註)'는 '운상원은 당시 음악의 한 센터인 듯하며, 남원의 운상원은 그 위치가 지금의 운봉(雲峰)인 듯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개동천 운상원과 운봉 운상원이 따로 있었다는 것일까요?
화개동천 운상원은 칠불암이 되어 지금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지만, 운봉 운상원은 자취조차 찾아볼 수가 없는 현실입니다.
따라서 운봉에 운상원이 있었다는 것은 입증이 불가능하므로, 칠불암 운상원이 거문고 가락 창작의 산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은 판소리 동편제의 본고장이지요. 송흥록에서 송만갑을 거쳐 박초월에 이르는 수많은 명창들을 배출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조선시대 이후의 일이지요. 근세에 이르러 구례는 단소, 화개는 타령이 그 명맥을 이어왔지요.
남원 판소리, 구례 단소, 하개 타령이 지리산 음악의 한 특징을 이루기는 했지만, 이는 운상원에서 들려주던 '신선의 옥피리'와는 무관한 것이지요.
또한 옥보고에서 속명득, 귀금, 극종 등에 이르는 거문고의 명맥 잇기와도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의 존재가 다시 두터운 수수께끼에 둘러싸입니다. 거문고의 역사 또한 그러하지요.
현금(玄琴)이라고도 하는 거문고는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붙여서 만든 울림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6줄을 매고 술대로 쳐서 소리를 내지요.
소리가 깊고 장엄하여 예부터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일컬어졌으며, 학문과 덕을 쌓은 선비들 사이에서 숭상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줄풍류(현악영산회상)을 비롯하여 거문고산조, 그리고 가곡 반주 등에서 출중한 멋을 풍겨줍니다.

거문고는 중국 진(晋)나라에서 보내온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 제2국상 왕산악(王山岳)이 본디 모양을 그대로 두고 그 제도를 많이 고쳐 만들었다고 하지요.
왕산악이 100여곡을 지어 연주할 때 검은 학이 날아들어 춤을 추었기 때문에 현학금(玄鶴琴)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훗날 학을 빼고 '현금'이라 불렀다는군요.
그런데 1932년 지안현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악기 그림이 발견돼 거문고는 진나라 이전 고구려에 그 원형이 있었다는 것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거문고가 중국에서 건너온 칠현금을 개량한 것이 아니라면 왕산악 이전에 이미 그 원형이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거문고란 이름도 현학금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고구려금, 즉 감고(가뭇고), 검고(거뭇고)의 음변으로 보기도 합니다.
고구려의 이 거문고가 신라에 전해져 옥보고, 속명득, 귀금, 안장, 청장, 극상, 극종이 계승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거문고의 그 원형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어요. 운상원의 보옥선사? 지리산 신선의 옥피리는 아니었을는지 한번 유추해볼 만하지요.
  • ?
    솔메거사 2002.03.27 14:24
    한줄 거문고, 한가락 피리소리에도 그런 깊고 깊은 유래가 있었구만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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