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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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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진입이 허용되지 않는 도로에서 이게 웬 말이냐고요?
어제 밤 꿈에서 달렸냐고요?
그랬었지요. 어제 꿈에서 신나게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꾸게 된 연유가 12년 전에 정말로 달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서울 목동오거리에서 살 때였어요.
당시에 서울에서 문산까지 자유로를 막 개통하고 오두산에 통일전망대를 개관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습니다. 직업이 편집자라 맨날 원고더미에 묻혀있다 폐결핵에 걸려 치료차 잠시 직장을 휴직했을 때인데, 운동을 한다고 자전거를 사서는 매일 목동도서관을 왔다갔다했습니다. 신문을 보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아침에 빵 하나 먹고는 도서관을 안가고 통합병원-가양동-김포공항-행주대교를 지나 자유로를 턱 올라탔습니다.


그 때는 일산 신도시나 파주, 교하 지구 등에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기 전이기 때문에 교통량이 전혀 없었습니다. 주말에나 드라이브족이 가끔 이용할 뿐인 도로였지요. 신문에도 아무런 이용객이 없는 도로에 무슨 예산낭비냐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이정표도 없는 왕복8차선 도로를,
아무도 다니지 않는 도로를,
정말 끝간데 없이 앞뒤를 둘러보아도 텅 빈 도로를,
저 혼자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제 기억으로 11월 말이었는데, 약간 눈발이 날리고 추운 날이었습니다.
달리다 너무 손이 시려워 핸들도 안잡고 겨드랑이에 깍지끼고 달렸습니다.
서커스에나 나옴직한 폼이었다고요? 정말 자전거 잘 탄다고요?


아마도 자전거 잘 타는 피가 섞여 있나보죠.
우리 아버님이 전쟁 전 이북에서 넘어왔을 때 서울에서 밥 먹으려고 했던 첫 일이 수색역에서 짐 자전거 뒤에 석탄 한 가마니를 싣고 용산역 앞에 배달해주는 일을 하셨었다고 하시더군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용담 섞인 자랑으로 하신 이야기지만 그 좁다란 철로 레일 위로 달리셨다고 하니 어렸을 때는 와아! 하고 믿었지만, 지금은 뻥이였을거야 하면서도 이레에게는 할아버지의 전설을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만능 스포츠 선수였습니다.
외할아버지 앨범에는 영화 YMCA야구단에나 나올법한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그 옛날의 야구선수였습니다. 겨울에는 한강다리 밑에서 열리는 빙상대회에 출전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엄씨 성을 지녔으니 어쩌면 왜정 때 자전거 잘 타는 엄복동이가 친척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자유로 현장으로 돌아가서
어쩌다 차 한 대가 씨융 지나갑니다. 정말 속도 측정하는지 자기 차가 갖고 있는 스피드 한계점을 다 내고 있는 것처럼 달려들 가더군요....
너무나 추운 상태로 달리는데... 교하부근이었나, 길가에 가게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왕대포"
저야 술도 못하지만 너무나 추운 김에 들어갔습니다.
돈도 없이 나와서 주머니를 뒤지니 천원짜리 한 장과 동전 몇 개만 달랑 있습니다.
얼마냐고 물으니 막걸리 한 사발에 500원이라고 하더군요.
가만 생각해보니 술 마시면 열도 오르고 따뜻해 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 안주도 안시키고 두 사발을 마셨습니다. 얼음 약간 아작하게 씹히는 막걸리였는데 김치도 주었습니다. 일단 주는 것은 다 먹고 몸도 따뜻하기에 나왔지요.
한 10분 쯤 지났나...
자유로가 다 내 것이었습니다. 정말 자유로웠습니다.
빈속에 마신 술기운에 오두산 통일전망대까지 노래 흥얼거리며 드라마에나 나옴직한 시골 영감네처럼 자전거를 탔습니다. 전망대 거의 다가서 교통경찰을 만났습니다.
뭐라고 내가 말했는데, 교통경찰이 그냥 가라고 하더군요.
내가 뭐라 했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음주운전인데, 자전거라 뭐라고 그러지도 못하는가 봅니다. 아마 황당했겠지요.


통일전망대에 들어가는데 입장료를 내라고 그러는군요.
입구에 군인이 있었습니다. 제가 자전거를 옆에 끼고 이야기했지요.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 돈이 없다고...
병사 둘이서 자전거를 보고 기가 막한지 가만히 보더니 역시 그냥 들어가라고 합니다.
입구 들어서서 바리케이트 대놓은 곳에 자전거를 묶어놓고 들어갔습니다.
어디서 관광버스가 와서 아이들이 견학을 하는지 왁자하게 떠드는데
아무도 없이 몇시간을 고요히 자전거를 타고 있다 그런지 생경한 느낌이었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과 임진강의 합수 지점인 이곳은 뻘 밭이었습니다.
강 건너 김포반도와 북한 개성방면을 번갈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나머지 동전을 망원경보는데 다 집어넣고 북한 땅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는 안보시대의 호기심도 잠깐, 곧 망원경이 철컥 잠겨버리데요.


오는 길은 오후가 되어서 그런지 그리 춥지는 않았습니다.
아까 길 건너의 그 왕대포 집이 나타났습니다. 돈이 없으니 그냥 달려야 했습니다. 철새도래지라고 적힌 길가의 표지를 보며 잠시 쉬며 강을 주시했지만 낮이라 그런지 새라곤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오는 길엔 배가 무지하게 고팠습니다. 지금 도서관에 있으면 우동 한 그릇 먹고 있을텐데...
배고팠던 기억은 있는데,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 기억엔 없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거의 어둑어둑해져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거의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도 몸살 하나 안걸렸습니다. 말로는 병 때문에 휴직했으면서도 어찌보면 지금보다도 더 튼튼한 체력을 갖고 있던 셈입니다.
그 후로도 당일 자전거 여행을 자주 했습니다.
목동에서 성산대교-마포구청-홍제동-구파발 지나 북한산성까지 자전거 타고 가서 원효봉 지나 제가 옛날부터 좋아하던 바위가 있는데, 거기 가서 앉아있다 오거나, 불광사에서 비봉까지 왔다 가곤 했습니다.
26살 인가... 막 군대 제대한 친구와 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대청봉-오색약수로 가는 설악산 종주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친구 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쫓아가기가 너무나 힘든 친구였는데, 5년이 지난 그 무렵에 다시 불광사에서 비봉-보현봉-평창동으로 내려오는 휴일 산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그 좋던 체력을 다 까먹고 바위 하나 못 기어오르고 버벅대는게 아닙니까? 몸의 근력도 안지키면 사라지나봅니다.


요즘 제가 제 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자전거 타고 자유로 타라면 탈 수 있겠나?
어디 웬만한 봉오리나 제대로 올라가겠나?
몸 살핀다고 시골 와서 전보다 더 체력이 없어졌습니다.
요즘의 몸짱 신드롬을 보면서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왕년을 읊어댑니다,
그런데 그게 믿을만한 것이냐고 되물어온다면
사실 그것이 현재의 몸 상태를 대변하는게 아닌지?
참 그것처럼 서글픈 질문이 없습니다.


  • ?
    허허바다 2004.02.16 10:56
    정말 대단한 추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ㅎㅎㅎ 바로 그때 개관하던 그때 님과 똑같은 시기에.. 전 친척이 공병대 준위여서 자유로와 그 통일전망대를 공짜(?)로 가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철책선옆을 군 짚차를 타고 경계병의 경례까지 받아가면서 말입니다. 그때가 대북 확성기옆 밤나무 울창한 곳 떨어진 밤 주우러 갔다가 발동이 걸린 것이니... 아마 한 10월말? 쯤 되겠네요 ^^* 저도 집이 그때도 지금도 목동이고.. 자전거로 출퇴근도 하면서 매일 그 목동도서관앞을 보행신호등 켜지면 그앞 주유소앞 신호등에서 그곳까지 역주행으로 전속력으로 달리곤 했었는데..ㅎㅎㅎ 정말 닿을 듯 말 듯한 인연이군요... ^^* 언제 한번 만나 목동에서 미사리까지 자전거길 따라 한강을 자전거 유람 같이 해 보십시다 ㅎㅎㅎ
  • ?
    두레네집 2004.02.16 13:03
    그때 도서관 옆 파리공원에서 음악회 같은 행사가 자주 열렸었는데, 지금도 그런 것 하는지 궁금하네요?
  • ?
    허허바다 2004.02.16 13:15
    예... 날이 따뜻해지면 또 요란할 것입니다. 예나없이 ㅎㅎㅎ 지금은 추워 조용하지요...
  • ?
    솔메 2004.02.16 14:24
    자유로를 자유롭게 달리던 일이 자유로운 추억으로 뇌리에 날아드는 일!!
    정말로 자유로운 일이네요.^^
  • ?
    월전 2004.02.16 21:11
    고등학교 때 서울 서교동에서 임진각까지 왕복 12시간
    자전거를 달렸었지요. 판문점까지 가고 싶었는데.....
    오는 길에 폭우에 거지꼴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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