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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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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조회 수 104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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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난 빈 들입니다....
라고 시작되는 시가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 고진하 시인이라고 기억되는데
언제부터인가 가을과 겨울의 들판을 보면 생각나는 구절입니다.

모두가 떠난 빈들.
도시에서는 정을 나눈 이웃들이 서로 헤어지면 허전하다가도 곧장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그 허전함을 도시의 언어로는 무엇이었는가를 표현하기 어려웠었는데,
가을걷이가 끝난 빈들을 보게 된 귀농 이후 그 말이 적절하다 여겼지요.
우리는 혼자라는 생각에 몸서리를 칠 때
이 시가 주는 강한 울림은 언제나 저를 더 슬프게 했었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경로를 거치는 헤어짐이 있습니다.
가끔가다 맛보게 되는 배반의 헤어짐은 더욱 참람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닳고 닳은 상상을 하게됩니다만,
여기서는 통속적 실연이 주제가 아니라 대부분 몇 번씩은 몸서 겪었을
이웃 관계를 잇속으로 따져대곤 하는 세태로 인해 오는 허탈함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면 살아온 기간이 아무런 의미 없는 빈껍데기만 같고
한 동안 헛농사 지은 할머니의 구멍난 버선 사이로 들락거리는 바람 같습니다.

모두가 떠난 빈 들은 참으로 쓸쓸하고 슬프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떠난 빈 들은 쓸쓸하지도 허전하지도 않음을 요즈음 배웁니다.
그것은 허전함을 다시 채워주려는 휴면기라고 느끼면서부터입니다.

한 달 전부터 시작한 면사무소의 공공근로로 인하여
전 요즈음 매일 출근을 합니다.
이제 추수를 끝내고 가지런히 정리를 끝낸 들판은 아주 큰 넉넉함이 보입니다.
아무 것이 없어도 가득 차게 보이는 들판은 일 년을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오는 포만감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 것이지요.

저의 생각의 부침과 관계없이 자연은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습니다.
아무 말이 없이 묵묵한 자연속에서 저는 요즘에야 조용한 깨우침을 얻습니다.
다시는 모두가 떠난 빈 들이라고 슬퍼하지 말라고.
가끔은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 조각의 펄럭거림이
폐허의 잔해처럼 보이지만은
그 너머에 풍성하게 쌓아 올린 짚더미를 보면
그 속에 푹 안기고 싶은 푸근함을 느끼곤 합니다.


**: 전 면사무소에서 일 한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논농사 직불제, 자운영 파종량.
    등을 입력하는 일인데, 토지면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알게 되지요.
    그런데 그중에 제가 앞에서 쓴 고진하 시인과 거의
    비슷한 이름을 가진 분이 계십니다.
    그 이름을 많이 입력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그 시가 생각이 더 나곤 합니다
    그리고 제가 공공근로에 나간다고 하니까
    한 친구는 드디어 "공직" 에 나아갔다며
    웃으며 축하해 준 친구도 있었지요.
    이제 한달이 되니 여기 저기서 월급은 받았느냐는
    친구들의 인사를 받습니다.
    아직은 정식으로 통장에 월급은 입금되지 않았지만
    언제든 오시면 쏘겠습니다.
    오십시오.
  • ?
    최화수 2002.11.15 16:49
    모두가 떠난 빈 들판...그렇지만
    휴면기라 쓸쓸하지 않다는 말씀!
    정말 조용한 깨우침인 듯합니다.
  • ?
    솔메 2002.11.16 10:25
    황량한 가을의 빈 들판에서도
    두레엄마의 따순 性情의 글귀가 다시 찾아올 충만함을 일깨워줍니다..
    복 받으시기를.....
  • ?
    moveon 2002.11.16 15:41
    마음 한귀퉁이가 허전한듯 했었는데. . . 두레 어머님 글을 읽으니 갑자기 오히려 그 허전함이 기쁨인것을 알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끼득이 2002.11.19 15:50
    날이 춥습니다.
    아침저녁 출퇴근길 옷 두둑히 입으시고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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