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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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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조회 수 1659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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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이레가 초등학교 졸업을 하였네요
우리가 삶의 터를 옮긴 탓에 이레는 세 군데의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화성 겨울 바람이 거센 남양만 바닷가 인근의 학교와 전남 구례 섬진강이 흐르는 지리산 아래의 토지초교, 그리고 이곳 남한의 한복판 가을 바람이 솔솔 부는 추풍령 고개 마루의 초등학교입니다.


졸업을 앞두고 자그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레네 학교 졸업앨범을 사야한다는 것인데 졸업앨범의 가격이 무려 7만원이었습니다.
18쪽의 크라운판 하드카바의 도서를 칠만원이라? 대학교의 가죽표지로 된 100여쪽의 앨범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두 사진으로 직접 붙여도 그런 제작비용이 나올리 없는데...
아무리 졸업생수가 31명이라 제작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인쇄기를 돌리는 고비용의 방식이 아닌 컴퓨터 출력으로 스캐닝하면 되는 방식이 있는데...
뭔가 덮어 쒸우려는 업자의 농간이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평소에도 그런 편이지만 뭔가 불합리한 것에는 도저히 수긍하지 않는 저의 성격이 이를 걸고 넘어졌습니다. 학교에 연락하니 학부모 대표자가 담당했다고 하기에 알아보니 아마 자신들도 그렇게까지 비싼줄 몰랐다고 하시며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의를 했으니 따라 갈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군요. 이레의 경우 6학년 2학기의 전학생이라 소풍이나 수학 여행도 함께 하지 못했었습니다. 더군다나 앨범제작에 동의하지도 못했던 터라 우리는 안해도 된다고 하십니다.
사실 그냥 하나 덜렁 사면 업자는 동그란 사진 하나 추가하고 돈받으니 좋겠지만, 사는 우리야 그렇게 절절한 인연도 없는데 너무 큰 댓가를 지불하는 것 같아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그거보다 치사하게 아이들의 추억을 담보로 치졸한 상술에 무턱대고 따라가는 것이 더 약오르다고나 할까요?
이레의 사기도 있고 해서 이를 어찌 설득해야 하나 고민하다 이야기를 하니
이레가 쉽게 동의를 해줍니다. 대신 다른 선물을 해달라고 하기에 동의를 했습니다.


이레가 제일 추억이 많이 긷든 구례의 학교로 가서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습니다.
7만원 보다 세배는 훨씬 넘는 비용이 예상되는 선물이었습니다.
사실 그보다도 저도 두레엄마도 두레도 모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지만서도...


보고픈 이들을 보았습니다.
피아골 계곡의 구르던 둥근 돌이 아름답게 장식된 정겨운 평도교회 손목사님과 사모님이 활짝 웃고 계셨습니다. 뜨뜻하게 지핀 구들방에서 이틀이나 자며 밤새 목마르면 마시던 고로쇠물보다 더 진한 인심, 손마다 따뜻한 체온으로 오래 부여잡고 계시는 할머니들, 나이롱 전도사를 꼭 사역자 모시듯 너그럽게 받아주신 교인들...
강변에서 은어 잘 끓이시는 송정횟집 장훈이네 식구, 언제나 부처님 같은 미소의 피아골 주유소 아저씨 내외와 동준형제, 우리 일에 애타하시던 이장님, 우리가 살던 송정학교에 새롭게 이사한 철민이네, 이사하면서 일나가서 인사드리지 못했던 효님이 아주머니를 보니 묵은 빚이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늘 학교 뒤의 두릅과 밤 밭에 다녀오시면 한 소쿠리 가득 내어주던 두릅과 밤과, 콩. 그리고는 나눠주던 된장보다 찌지름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그런송정리 마을분들...
두레엄마가 다니던 면사무소 직원들, 두레가 다니던 구례동중 선생님, 머리 깍던 소망 미용실, 보통 먹다 곱빼기 먹게된 현이네 짜장면집, 군것질하던 만물슈퍼 아줌마. 길 지나다 아는 아이들만 만나면 차창밖으로 이름부르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제가 다 설레었습니다.
이레네 학교에 가니 마침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나오셔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새학기를 앞두고 많은 일이 산적해 있으신 것 같더군요. 이레의 학교이야기를 다 들어주시고는 흔쾌히 사진을 같이 찍어주시고 학교배경을 지닌 문집을 앨범대신 주십니다. 토지학교는 올해 졸업생이 총 9명이어서 같이 단체사진으로 앨범을 대신했다고 하십니다. 물론 두레 때도 그러했지만...  갈수록 졸업생 수가 줄어드는 시골 학교를 지키시는 선생님께 전학간 아이가 다시 찾아가 죄송스런 부탁을 한것은 아닌지 부끄러웠습니다.


보고픈 곳들을 보았습니다.
살 적엔 몰랐는데, 왜 그렇게 산이 높은지, 차 앞유리로 바라보기에는 다 담을 수 없는 높은 산자락, 보아도 보아도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섬진강, 조그만 겨울 바람에도 우스스한 푸른 대밭, 우리와 함께 살던 똑똑이와 또또 총명이와 톰은 이제 거기 없지만 그 녀석들이 살다간 개집과 깨어진 프라스틱 밥그릇은 거기 있었습니다. 고물장사가 다 뜯어간 함석지붕을 말없이 이고있는 폐허같은 우물가, 심어놓은 매실 묘목도 누근가 파가고 없지만 그래도 그때 심어놓은 앵두나무는 거기 있었습니다. 풍성함을 안겨주던 세종대왕상 옆의 매화는 가지마다 가득 꽃을 피우고 잉잉거리는 벌의 날개소리가 귓가를 넘어 가슴 속을 찌릅니다. 우거진 풀이 말라 엉겨붙은 조그만 연못엔 이제는 물줄기가 말라 힘없는 웅덩이로 변했습니다. 다 완성하지도 못한 개울로 가는 사다리를 만지작거리며 듣는 변함없는 한수내 물소리만 이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이레의 졸업선물이라기보다. 우리가족 모두의 지난 시간 더듬기는 산동온천에서 말끔하게 단장되었습니다.
돌아오는 아침에 산유화님이 추풍령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자리에 반가운 이들이 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레의 졸업선물, 추억이 긷든 우리 모두에게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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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4.02.29 19:25
    2004.2.28 23:10경 송정가든 맞은편... 차조차 드문드문해진 19번 도로가에 잠시 차를 멈춥니다. 내려서 짙은 안개와 함께 어둠이 모든 걸 꽁꽁 숨겨 버린 그곳을 둘러 봅니다... 학교 문, 앞 섬진강, 오브넷 가족들이 앉았던 교정앞 계단... 그곳엔 바람없는 이슬비만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 이슬비 두레네 돌아간 뒤 지리와 섬진의 슬픔이었나 봅니다... 이레야 졸업 축하한다! 내일 모레면 중학교에서 첫날을 맞이하시겠네요^^* 이젠 숙녀가 되셨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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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거사 2004.03.01 09:20
    사람은 그리움에 젖는데.옛 강물은 어제처럼 여전히 굽이쳐 흐르기를 그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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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버거아저씨 2004.03.02 06:27
    아이고 두레아빠 왜 울집에는연락이 없었나요
    추풍령보다 가까운데 왔을때 우린 만나기가 좋운데요
    아까울 따름이군요
    다음에 만나면 혼날 연구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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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득이 2004.03.03 11:04
    정든 이웃과의 만남, 참 좋은 가족나들이였는가 봅니다.
    읽는 내내 따스한 정에 가슴이 뎁혀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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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학 2004.03.03 15:23
    옛살던 동네에서 눈시울을 붉히셨군요.정이 무엇인지?
    잘 하셨습니다.저도 둘째애를 6학년때 전학을 시켜서
    5년을 다녔던 학교로 가서 졸업식에 참석하고 사진도 찍고 눈시울을 적셨던 적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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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4.03.03 17:22
    두레네의 추억여행에 나도 덩달아 동참해봅니다.
    이태 연속으로 5월이면 만났던 송정분교의 교정도 생각해보았고요..
    한수내의 물빛과 그 소리는 아직도 여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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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해 2004.03.05 17:17
    정만큼 질기고도 아련한 감정이 없나 봅니다.
    식지않는 옛정으로 서로서로를 안아주는 모습을 보니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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