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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나루>두레네이야기

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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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조회 수 107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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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결을 거슬러오르는 거친 바람이 섬진강을 드러눕게 합니다.
그럼에도 가슴 들뜨게 하는 화사한 강뚝의 매화는 다른 생각을 가져오게 만듭니다,
아직도 아침의 강바람은 제법 차서 옷깃을 여밉니다만
흔들리는 꽃잎은 포근한 느낌을 담뿍 줍니다. 차가움 속에 따뜻함을 느끼게 하니
자연은 이리도 상대적인 것들을 조화롭게 품어안는가 봅니다.

들고 내쉬는 숨결 따라 파고드는 은은한 매향은 옛 선비들의 찬가를 떠오르게 합니다.
지난 시절 그 분네들도 이렇듯 강가의 봄 향기를 마시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호미들고 감나무 껍질을 벗기시던 아랫집 효님이 아주머니(할머니)를 보고 인사드리니
이따 들어가다 묵혀놓았던 무 좀 들고 가라고 하십니다.
어제는 비닐 봉다리에 직접 담그신 된장에 봄나물까지 담아주셨는데...
일전에 면사무서에서 급여를 받은 두레엄마가 들어오는 길에 마을 아지매들에게 2만원어치 맥주를 쐈더라고 했었는데 지고 못 사는 품앗이 정서의 끈이 은연중 이리도 긴 것이겠지요.
겨우내 놀고 먹어 나온 뱃살이 부끄러워 헛, 둘, 셋, 넷 하며 발 종종거리는 제가
너 댓살 먹은 귀여운 아이같아 보이는지도 모릅니다.


칠의사 가는 길 위에 서있습니다.
사람은 "길 위의 존재"라고 야스퍼스가 말했다는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지닌 것임을 불현듯 생각해봅니다.

칠의사 옆으로는 왕시루봉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계곡이 있습니다.
그 깊숙한 안쪽으로 이 지역의 무속인들이 비나리를 하러 자주 오는 곳입니다.
촛불을 키고 가고 푸닥거리를 하다 남은 음식을 제사밥이라고 두고 갑니다.
저번에 계곡입구에 멀정한 사과와 배가 바위옆 계곡에 흘러 다니길레 집어서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사밥이라는군요.
그이들과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신령이 깃든 정성스런 음식이겠으나,
그런 믿음이 없는 저에게는 맛있기만한 공짜 음식이었습니다.
물론 저와 또 다른 믿음의 세계를 지닌 분들에게는 귀신이 쒸운 발칙한 금기(禁忌)이겠지요.
하나의 사물을 놓고도 보려는 이들의 마음세계에 따라 천처만별한 셈입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의 제자이신 김흥호 교수께서 풀이한 <벽암록,碧巖錄> 해설서인 <푸른 바위 위에 새긴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반야체(般若體)는 무한대(無限大)요 반야용(般若用)은 무한소(無限小)다"


반야는 산스크리트어 "Prajna"의 중국 음운으로 "참다운 이치를 깨달은 지혜"라는 뜻이라는군요. 김흥호 교수님은 이를 "반야체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반야용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가장 높고 숭고한 존재와 대비되는 낮고 천한 인간. 이 두 존재의 조화가 오늘 바람 많은 차가운 강변에서 꽃피운 매화의 따뜻함과 연상되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주어들은 온갖 생각이 있었는데 제나름대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한대란? - 인간은 우주의 한없고 끝없는 세계를 알려고 무진장 애를 씁니다. 인간은 그리스신화의 별자리이야기를 넘어 갈릴레이가 해상도 좋은 망원경을 개발한 이후 렌즈의 직경이 12m가 넘는다는 팔로마산 천문대, 고도의 전파망원경, 거기에다 우주공간에 허블 망원경까지 발사해 대기의 저항과 굴절을 없애고 보다 선명한 관측 기구를 끊임없이 개발해 냅니다.
우주 끝까지 전력을 기울이나 아직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지구 주위를 달이 돌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태양계는 은하계의 한 구석에서 은하 중심을 돌고, 은하계는 안드로메다 은하계와 같은 또다른 성단과 함께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우주 중심을 돌고...
알 수 없는 무한대를 찾아 인간의 정신은 우주를 찾아다닙니다.


무한소란? - 물질의 기본이라는 분자를 현미경으로 발견한 근대과학은 고배율의 전저현미경을 개발해 원자를 발견합니다. 더욱 개발을 거듭해 핵 주위에 전자가 도는 것을 발견하고... 그 힘 주위의 소립자를 발견합니다. 수 십km의 중성자 가속기를 개발해 점점 더 작은 물질의 기본 단위를 찾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물질물리학의 지평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톱 쿼크를 찾아내고....
더 작은 무한소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천체물리학과 물질물리학, 거대한 상극의 세계나 미미한 하극의 세계는 동일한 세계인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인간이 찾아 헤매는 최첨단 과학정신은 다름아닌 하느님을 찾아 나선 것과 인간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두 세계는 결국 동일한 세계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태양주위를 지구가 돌 듯, 원자 주위를 전자가 도는 것입니다. 스티븐 호킹의 비유처럼 호두껍질 속에도 우주가 있듯 동양학의 우주관에서 제시하듯 인간 자체도 소우주인 것입니다.


천상에 계신 하느님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상한 품격, 위대한 업적을 찾아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높고 높은 세계를 걷는다는 것은 곧 낮고 낮은 세계를 찾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가장 숭고한 일에 자신의 일생을 매진하려는 사람은 가장 낮고 천한 일에 자신의 일생을 거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곧 하늘 일을 한 것이라는 성경의 비유처럼 벽암록은 동일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반야체는 무한대요 반야용은 무한소다. 겁나게 커다란 교회의 유명한 목사나 입장료 수입이 엄청난 대 사찰의 짱짱한 주지스님이 아니더라도 병든 할머니 업어나르는 동네이장의 손길이 보다 나은 생명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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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옹 2003.03.19 10:47
    잘 읽었습니다. ^^*
    80년대말에 회사동료들과 중산리계곡으로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세미나를 갔는데 제가 계곡에서 제사밥을 주워다가 푸짐하게 쏜(?)적이 있었습니다.
    다들 맛있게 먹고난 뒤에 사실을 알고는 전부 뒤집어졌던 추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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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3.03.19 11:27
    급하고 매달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생각해보아야 할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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