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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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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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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의 가뭄도 유별났는데
가을 가뭄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뒷 밭에 옥수수와 콩을 걷고 난 후에 모종 낸 배추를 옮겨 심었었습니다.
비가 오기를 기다려 옮겨심어야 하는데 기다려도 오지 않길레
나름대로 물을 흠뻑 주고 심었습니다.
배추모종을 쪼아 먹는 닭들이 접근할까봐 모두 닭장에 가두어 놓고 말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물통을 날라 주었지만
낮에는 밤따러 산에 가느라 돌아보질 못했습니다.
화단에는 비실비실한 것을 심고 뒤에는 좋은 모종만 심었는데도
물을 틀어놓을 수 있는 화단의 배추는 무성히 자랐는데, 뒤의 배추는
결국 모두 말라 죽었습니다.
이제는 때도 놓쳐 배추를 심어도 나지 않을텐데 그나마 앞의 것이나마
우리 식구 먹을 것만 남았으니 다행이지요.
가두어 논 닭들도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매일 낳던 알들을 드믄드믄 낳습니다.
배추가 비싼지 달걀이 비싼지 얼추 계산해도 가늠이 안가지만
둘 다 잃어버렸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닭장 너머 고소하다는 듯 닭들이 머리를 내밀고 약 올리기에
물이나 먹으라고 호스로 뿌려주지만 정작 물 주어야 할 배추가 없어 허전합니다.
여름내 듣던 개울 물소리도 잦아들었습니다.
꼭 초봄의 갈수기 마냥 돌 밑으로나 흐르고 있으니
풍요의 계절 답지않게 삭막함을 더해줍니다.
목표가 없이 허둥대던 삶을 돌아봅니다.
나름대로 무슨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오지만
만일 배추를 심고 거두겠다는 희망으로 그러했지만
그 희망의 대상이 사라졌을 때 내가 대처할 차선의 선택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시기를 놓치면 거둘 수 없는 자연의 이치대로
내가 지금의 시기에 할 일을 놓쳐 거둘 수 없는 인생의 결말이 있게된다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나의 의지로 다되는 것이 아닌데
밤도 따고, 배추도 걷고, 달걀도 얻는 농꾼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역량인가 봅니다.
더 시간이 지나야 흉내라도 내 볼 수 있으려나 생각해봅니다.

저녁 나절 추석을 바라보는 초생달이 예쁜 몸짓을 하고
몸을 떨구려는 벗나무 잎새 사이로 날아오르는 반딧불이 더없이 반갑습니다.
작년에 바라보던 달빛이 아니고
이전에 보아왔던 반딧불이 아님은 분명한데
내 눈에 익숙한 반가움으로 말입니다.
늘 이렇게 처음 대면하는 자연이 오래된 친구같은 정겨움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지
혹 이러다 배추는 어디다 심엇는지도 모를
무심(無心)을 찾는 도사 되는거 아닌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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