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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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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조회 수 133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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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의 부엌에서 뒷산을 바라보면 작은 산의 능선이 하늘에 걸려 있습니다.
그 능선에 걸려있는 푸른 나무 사이로 삭막한 나무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죽은 나무 특유의 칙칙한 색깔을 하고 겨울이나 여름이나
앙상한 마른 가지로 하늘을 향해 서있던 호두나무와 감나무입니다.

그 호두와 감나무가 그렇게 앙상했던 슬픈 이야기 하나 전해드리지요.
뒷산은 국유지입니다. 저희가 제일 가까우니 주로 우리가 드나듭니다.
그런데 그 호두나무를 심고 열매를 거두었던 동네 할아버지가 몇해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요즘 시골에 누가 있어 농사를 짓겠습니까마는
더욱이 산에 오르내리며 산열매 농사를 관리한다는 것은 대단히 수고로운 일입니다.
시골에 후손도 살지 않아 자연히 그 호두나무의 임자는 이제 없어진 셈입니다.
아마도 그 호두의 주인은 뒷산 다람쥐와 청설모가 될 것이며
어쩌면 제일 가까운 우리 식구가 욕심내면 거두어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의 일이니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어느날 그 할아버지의 후손들이 나무 아래 왔다고 합니다.
그냥 두면 될 나무에 독한 약을 주입해 고사시키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의문에 쌓여 궁금해했습니다.
물론 그 의문은 물어볼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에 지금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옛날 전제정치의 왕정시대에 왕이 죽으면 그를 따르던 시종들을 모두 함께 묻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습니다마는,
어린 자식들을 두고 갈 수 없어 자포자기하는 죽음의 길에 동행하려는
못난 부모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마는,
자신이 지어먹던 생나무를 고사시켜 데려간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후손을 위해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이야기만 무성한 법인데...
그냥 그 나무와 할아버지가 뗄레야 뗄 수 없는 우리가 모르는 인연이 있나보다
하면 속 편한 일이 되겠습니다마는
위와 같은 상식의 입장에서 나무를 죽인 그 후손들의 생각이 불합리하다고 여길 뿐입니다.

떠도는 동네주민의 말에 의하면
심뽀가 못됐다는 것일 뿐입니다.
국유지에 심겨져 있으니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고
과수 농사를 지어먹겠다고 불원천리 내려 올 수도 없으니
그냥 두면 남 좋을 일 생긴다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 일로 나무를 죽였다면 할아버지의 가슴에 못박는 못난 후손일 터인데...
우리 사는 세상이 죽은 나뭇가지처럼 삭막하기 그지없는 세상이라는 것일텐데...
그냥 애틋한 사연이 있나보다 생각해야 제 정신건강에 좋을 듯 합니다.
저도 제것도 아닌 일이니 감 놔라, 배 놔라 할 것 없이
멋모르고 그 자리에 돋아난 풀처럼 무심하게 살아야 한다고 여겼으니까요..

올 장마 초에 비가 억수같이 왔습니다.
산에 있는 모든 것이 쓸려내려 갈 듯이 뒷산 아래로 큰 개울이 나타났을 정도였으니까요.
나무에 얽힌 알 수 없는 의혹들도 말끔히 씻겨내려 갔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여름의 절정기를 앞두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더군요.
나무를 옥죄던 독약의 기운이 쓸려갔을지도 모릅니다.
몇 년만에 돋아나는 새싹의 기운이 이젠 제법 무성합니다.
아마도 이대로 가면 내년에는 다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생각은 짧아 잠시 자연을 거스릴 수는 있겠지만
자연은 알 듯 모를 듯 모든 것을 덮어주는 너그러움이 있습니다.

내 사는 세상 마음에 안들어 다시 시작하고픈 이들이 많습니다.
부활을 꿈꾸는 이들은 우리 집 뒷산의 호두나무와 감나무 앞으로 오십시오.
자연에 맡기면 물 흐르듯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기운이 거기 그 자리에 있습니다.
다시 태어난 올해는 결실이 없겠지만
훗날 반드시 꽃이 피고 열매가 있음을 자연은 말없이 증언해왔지 않습니까?

  • ?
    솔메 2004.08.04 11:53
    억지로 죽어 서 있던 나무에서도
    삶의 교훈을 얻어갑니다.
  • ?
    부도옹 2004.08.05 00:01
    여름철이라 많이 바쁘시지요? ^^*
    새순이 돋은 호두나무 잘 가꾸어서 풍요로운 결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
    오 해 봉 2004.08.05 13:11
    그러니까 뿌리는 살아있었 것이었군요,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삼도봉에 가면서보니 물한계곡 쪽에도 온통호두나무 들이드군요,
    더위에 모두 잘 지네시는지요.
  • ?
    햄버거아저씨 2004.08.07 00:03
    애고!! 호두 감나무 좀 보고올걸 아쉽습니다
    요즘 두레 이레도 잘지내고
    여름학교 운영도 잘되는지 궁금합니다 ?

    여수에서 만날날을 기다립니다
    오기전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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