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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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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조회 수 134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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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할 일을 생각해보다 잠들었던 어제.
그런데 오늘은 아주 이른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두레의 곤하게 자는 숨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서쪽 끄트머리 산중에 넘어가는 달을 잡고 늘어지는 감나무가 흔들립니다.
이슬에 촉촉한 토끼풀(클로버)에 발가락이 젖어들었습니다.
지천에 널린 질경이를 밟아 서걱거리는 소리에 잠든 독도(우리집 진돗개)가 깨어 꼬리를 살랑거립니다.
느티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잡고 한참이나 새벽하늘을 보았답니다.
가벼운 옷차림에 어깨가 서늘하니 새삼 이곳이 고원지대임이 생각나더군요.
저녁나절에는 땀내에 그렇게 달려들던 날벌레들도
새벽이슬에 날개가 젖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하하 밤새 집 주위에 울어싸던 개구리들이 다잡아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주변에 널린 잔가지를 모아 불을 붙였습니다.
이슬에 겉이 젖어 잘 안붙더니 그래도 이내 불길이 일렁이네요.
새벽 찬공기에 낮게 깔리는 연기가 피더니 속가지는 바싹한지 곧 사라집니다.
저는 불꽃을 보면 늘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불을 숭배한다는 조르아스터교(拜火敎)가 생명의 상징을 잘 찾아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불길이 살아있으려면 끊임없이 에너지원을 공급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살아있는 모든 것이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에너지를 먹어야 합니다.
기계처럼 생명이 없는 운동체는 생명이 소진한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로 움직이나
생명있는 숨붙이들은 생명있는 다른 숨붙이들을 에너지로 삼아야 합니다.
자동차가 쌀과 고기를 못쓰듯, 생명체도 석유를 못 먹습니다.
무기체는 무기물을, 유기체는 유기물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법입니다.

내가 먹고 움직이는 힘의 근원을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쌀과 고기, 온갖 물고기와 나무의 과일... 한때 모두 살아있는 생명들이었습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목숨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살기 위해 수없이 다른 생명들이 나를 위해 희생되어야만 하더군요.
생명의 원리는 결국 다른 생명의 피의 값임에 다름없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인간을 살리기 위해 대신 제물로 희생되었다는 예수의 피는
다른 종교와는 차별성이 있는 솔깃한 설득력 있는 생명사상입니다.
그 생명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라면 그의 피 값에 호응하는 삶을 살아야 하듯이
모든 지각있는 사람들이라면 나를 위해 죽어간
모든 숨붙이들의 희생에 화답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죽어간 생명이 다시 사는 부활의 삶이 아니겠는가 싶군요.
지금 살아있으려는 생각에
다른 생명을 취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본능이 싹트거든
다른 생명체의 몫까지 대신 살아준다는 생각이 간절했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을 취하는 자의 겸허한 마음으로
나를 위해 죽어간 모든 숨붙이에게 감사를 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 심정이 매일 매일의 열정(항상심:恒常心)이라면
우리 사는 세상이 보다 나은 곳이 되겠지요?

삭정이만 남아 매운 연기를 다시 냅니다.
동이 터 산자락이 드리운 그늘이 걷히고 있는 아침입니다.
조금 있으면 나는 오늘을 살기 위해 아침밥을 찾겠지요.
새삼스레 다시 깨달은 부활의 아침시간 같았습니다,





-다음 글은 일종의 광고일지도 모름-

올 여름에 생명을 주제로 삼은 캠프를 열까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먹은 생명체들,
나는 내 손으로 그들을 취할 수 있을까?
닭을 품 안에 안아봅니다.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팔딱거리는 심장을 확인하고
내 손으로 살아있는 닭의 목을 비틀 수 있을까?
내 손으로 펄떡이는 생명체를 자를 수 있을까?

사랑방안에 다음 내용이 있습니다
읽고 조언좀 해주셔요.
  • ?
    부도옹 2004.06.11 00:56
    아, 내 힘의 근원이 다른 생명의 피의 값이었다니....
    사람은 절대 자만해서는 안되겠습니다.
  • ?
    길없는여행 2004.06.11 12:08
    생명을 주제로 한 캠프~~~
    많은 어린이들이 참여했음 좋겠습니다.
    생명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요즘의 세태인데... ...
    이런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되고 이어졌음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좋은 일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 ?
    詩사랑 2004.06.17 15:14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려면
    그 생명과 직접 접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듭니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나의 존재함의 근원이 他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
    좋은 글 좋은 마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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