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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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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황산대첩은 최영 장군의 홍산(鴻山)대첩과 함께 왜구 토벌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높이 평가됩니다.
그로부터 왜구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고, 고려의 왜구 대책도 보다 적극적으로 전환이 되었다는 군요.
하지만 이 황산대첩의 엉뚱한 피해를 지리산이 안게 되었답니다.
2000여 왜구 중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은 자는 70명에 불과했어요. 이 패잔병들이 지리산으로 도망을 가선 악랄한 분탕질을 한 것이지요.

왜구 패잔병들은 천왕봉으로 가서 500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성모석상(聖母石像)에 칼질을 했습니다.
왜구들은 이성계가 성모석상의 보살핌을 받아 자신들을 패퇴시켰다고 믿고 그 보복을 한 것이지요.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그 사실이 씌어있어요.
'석상의 머리에 찍힌 곳이 있어 알아보았더니 태조(이성계)의 인월대첩 때 패한 왜구들이 쫓겨가면서 찍고 간 것을 뒷사람들이 이어놓은 것이라 한다.'

왜구 패잔병들의 패악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저 신라 고찰 법계사를 불태웠고, 다른 한 패는 영신봉 아래 위치한 영신사를 불태우고 석탑과 돌부처를 부수기까지 했어요.
김종직의 '유두류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영신사에 들어갔는데...돌부처의 한 쪽이 일그러졌는데, 이것 역시 왜구가 찍은 것이라고 한다. 아, 왜구들은 참으로 잔인한 도적이다...'

황산대첩에 고무된 이성계는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 건국의 꿈에 부풀게 된답니다.
이성계는 격전 바로 다음해인 1381년 운봉을 다시 찾아옵니다.
황산이 바로 건너다보이는 운봉들녘에 광천(廣川)을 끼고 있는 야트막한 산언덕이 있어요. 이성계의 토벌군이 운명의 일전을 앞두고 전의를 다졌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성계는 언덕 한편의 큰 바위벽에 다가가 징으로 글자를 새겼어요.

황산대첩의 뜻깊은 승전을 오랫도록 기리고자 바위에 이름을 새긴 것이에요.
이성계 자신의 이름과 함께 황산전투에 참가했던 8명의 원수(元帥), 그리고 4명의 종사관 이름도 새겼답니다.
현재 이 바위에는 보호각을 세워놓았어요.
'어휘각(御諱閣)으로 불리는 이 보호각은 바위 한편을 기둥 대신으로 사용한 특이한 모습이어서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이성계가 새겼다는 글자는 일제 말기 일본인들이 징으로 쪼아 뭉개버리는 바람에 멸실이 되고 말았어요.

이성계가 암벽에 이름을 새겼던 곳을 포함하여 노송이 뒤덮고 있는 야트막한 언덕을 두르고 있는 이곳 일대는 사적 제104호 '황산대첩비지(荒山大捷碑址)'입니다.
행정구역으로는 전북 남원시 운봉읍 화수(花水)리이며, 24번 국도에서 바래봉과 반대 방향으로 지척의 거리에 자리합니다.
황산대첩비는 선조 10년(1577년) 왕명으로 세웠어요.
당시 전라도 관찰사 박계현이 옛날 태조가 승전한 황산이 시대가 흐르고 지명이 바뀌어 잊혀져 가니 비석을 세우는 게 좋겠다는 청을 올린데 따른 결과였지요.

황산대첩비는 이성계 장군이 10배의 왜구들을 대파함으로써 만세에 평안함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새긴 것이지요.
이 비문은 호조판서 김귀영이 짓고, 여성군(礪城君) 송인이 글씨를 썼으며, 전액은 남응운이 했고, 박광옥이 세웠다고 합니다.
처음 비석을 세울 때는 귀부(龜趺)와 비신(碑身)이 크고 높은 데다 이수가 너무 커서 얹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남원지방의 석수와 힘센 장정들을 모두 모았으나 이수를 끝내 얹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는 군요.
그 때 이러한 모양을 구경하고 있던 마을의 한 어린이가 앞으로 나섰다네요.
그 아이가 묘책을 일러주었답니다.
"비신 주위에 흙을 같은 높이로 쌓으면 저절로 얹혀질 텐데!"
이 아이의 가르침으로 마침내 큰 이수가 비신 위에 무사하게 얹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 ?
    김용규 2005.02.12 09:20
    역사의 한 귀절을 장식하고 있는 조선건국의 뒤안길에 지리산이 한몫을 한 셈이군요. 세인들에게 잊혀져가는 지리산의 역사 흔적들을 이 오브넷에서 최화수님께서 계속 재생시켜 내니 재미가 있고 공부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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