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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465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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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현대화', '지리산의 문명화', '지리산의 상업화'는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닙니다. 지리산이라고 하여 현대화, 문명화, 상업화의 도도한 물결을 외면할 수야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 한편에는 "지리산만은..."이란 한 가닥 희망이 자리하지요. 세상이 달라져도 지리산은 예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겁니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골짜기 숲속이야 그렇더라도 지리산 마을, 지리산 사람들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지리산 자락의 변모, 그 한 단면을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에서도 보게 됩니다.
대보름은 우리 민족의 '밝음사상'을 반영한 명절이지요. 설날은 폐쇄적 수직적 개인적 명절이요, 대보름은 개방적 집단적 수평적 마을공동체 명절입니다.
우리나라 세시풍습 절반이 설과 보름날에 집중돼 있어요.
우리 민족은 "달을 보고 농사를 짓는다"고 하듯이 대보름의 세시풍속도 풍성합니다. 동제(洞祭)와 달집태우기와 부럼깨물기 등 다양한 편이지요.

지리산의 현대화를 가장 적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이 세시풍속의 변화일 거에요.
기복으로도 유명한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는 지금 어떻게 치르고 있을까요?
'달집사르기'라고도 하는 달집태우기를 지리산 자락의 대표적인 고을 덕산(德山, 矢川)에서 한번 지켜볼까요?
덕산은 원리, 사리, 천평리, 본동 등으로 따로 달집을 세웠더군요. 그 가운데 드넓은 분지 한가운데인 덕천강변에 가장 커다란 달집을 세운 것이 '덕산 본동'이었어요.

이 거대한 달집은 왕대나무를 비롯하여 생솔가지, 잡목, 짚을 차량 10대 분량이나 들여 만들었답니다.
왕대나무는 불이 붙으면 마디가 터지면서 "탁!탁!" 소리를 내는데,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지요. 생솔가지를 쓰는 것은 연기를 많이 내뿜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달집 속에는 짚으로 달을 만들어 걸고 달이 뜰 때 풍물을 치며 태웁니다.
불이 타오르는 발양력과 달이 점차 생장하는 생산력에 의탁한 민속놀이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달집태우기는 무엇보다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대표적인 세시풍속이지요.
달집을 태워서 고루 잘 타오르면 그 해는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고, 달집이 타면서 넘어지는 쪽의 마을이 풍년, 이웃마을과 경쟁해서 잘 타면 풍년이 들 것으로 점쳤답니다.
달집을 세워놓고 사물놀이 등 풍악을 울리거나, 불을 지피는 사람은 마을에서 선택을 하여 목욕재계를 한 뒤 제물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것도 풍년을 염원하는 때문이지요.

덕산 본동은 국립공원관리사무소, 면사무소, 농협, 우체국 등 공공기관과 음식점과 가게 등 상가촌인 것이 특징이지요.
달집태우기에 많은 사람이 몰려나온 것도 농사가 풍년이 들듯 장사가 잘 되기를 빌고 싶어서일 겁니다. 달집 규모에 걸맞게 술과 음식도 많이 차렸고, 풍물놀이도 흥겹더군요.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꽤 많이 뛰놀고 있어 눈길을 끌게 했답니다. 도회지로 나간 젊은이 다수의 귀농 물결을 입증하는 것으로 주목됩니다.

아무리 현대화 바람이 몰려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리산 자락의 한 고을에서 우리 전래의 세시풍속을 지켜내는 주민들의 열의는 경탄 할만 하더군요.
평소 가게를 열고 손님을 맞고 보내느라 바빴을 부인네들도 거의 모두가 몰려나와 사물놀이 장단에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고는 하더군요.
서로 술잔을 권하거나,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고 하는 모습들도 보기 좋았습니다. 아이들이 유별나게 떠드는 소리가 여기선 오히려 잘 어울렸어요.

아, 그런데 그 다음 한 순간, 나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둑 위 주차장에 기름탱크의 유조차량이 서 있고, 거기서 파이프로 기름을 달집에 퍼붓는 것입니다. 생나무로 만든 달집이니 잘 타라고 기름을 끼얹는가 봐요.
아니, 유조차가 달집에 기름을 끼얹다니...너무나도 뜻밖의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지요.
어릴 때의 기억으로는 기름을 끼얹지 않아도 달집은 잘 타올랐거던요.
기름을 끼얹어 달집을 태우며 어찌 농사(또는 장사)의 풍흉을 점칠 수 있다는 것인지...?

유조차에서 파이프로 달집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 달집태우기의 현대화일는지도 모릅니다.
기름을 덮어쓴 달집은 불을 지피자말자 순식간에 벌건 불덩이를 내뿜으며 하늘 높이 타올랐습니다.
달집의 모양은 금세 간 곳이 없고, 불기둥만 보였어요.
"보름달이 어디서 떠올랐지?"
옅은 구름이 산등성이 위로 내려앉아 있어 보름달은 보이지도 않았어요.
달집에서 내뿜는 연기 기둥을 헤치며 법고춤을 추거나, 달집불로 콩 볶아먹을 일도 물론 없었어요.

이웃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달집을 태운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사그라드는 달집의 불에 콩이나 고구마를 구워먹고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지난 시절의 기억이었을 뿐입니다.
달집의 불이 아주 꺼진 것도 아닌데, 아이 둘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시각에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가 들리더군요. 바로 옆의 '천왕봉 나이트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었습니다.
달집 태우기에서도 지리산의 변화를 실감하고도 남았어요.
  • ?
    솔메 2003.02.20 17:32
    최선생님 말씀데로
    사니조아님이 '지리산이야기' 사진방에 올린 사진속에서 난데없는 기름 배달차의 주유호스와 gun을 들고 달집에 기름을 끼얹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빨리빨리 정신'! - 고도성장문화의 폐해의 일단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영산 지리산과 주변의 세시풍속도 변화의 바람에 휘둘리는 현상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공감합니다...
  • ?
    박용희 2003.02.21 11:41
    달집 태우는 걸 한 번도 본적은 없지만 우리 고유의 풍습이 사라지는 요즈음에 비추어 보아 그리 놀랄 일은 아닌 듯 싶네요. 대보름날 부럼대신 발렌타인 데이에 국적 불명, 재료 불명의 초콜릿을 사느라 정신없으니까요.. 우연한 계기로 우리 것에 관심이 많아 지고 있는 요즈음 저는 다음주에 장 담글 준비에 마음이 바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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