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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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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도 날이언마는 낫같이 들리도 없으니이다. 아버님도 어버이신마는 어머님같이 괴실리 없세라, 아아 어머님같이 괴실리 없세라.' 어느 이름도 모르는 인사가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을 이처럼 절절하게 노래했지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 한편을 더 들어볼까요. '어머니 / 먼 관모봉 산마루에 / 다시 이 해의 눈이 / 쌓여서 은(銀)으로 빛나옵니까 / 물 길으시는 당신의 / 붉으신 손도 보이는 듯하옵니다' '류정(柳呈)님의 '관모봉(冠帽峰) 아랫마을'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처럼 잊혀질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었다고 해도 어머니가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신다면 참으로 불행한 것이지요. 어머니가 그리울 때는 어떻게 하나요? 물론 사람마다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어머니와의 사랑과 추억이 묻혀 있는 고향으로 찾아가는 이도 있을 것이고, 산길이나 들길을 헤매는 사람도 있겠지요. 정호승 시인은 "눈물이 나면 선암사로 가라"고 했네요. '선암사'란 시에서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고 말했답니다. 그 시를 한번 볼까요.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 죽은 소나무뿌리가 기어다니고 /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 앞 /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눈물이 나면 정말 선암사로 가야 하겠네요.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면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준다 하니까요.

하지만 어머니가 그리워 울고 싶을 때는 조계산 선암사가 아닌, 지리산 화엄사나 연곡사도 좋을 듯하네요. 화엄사를 찾았다면 각황전 뒤편 효대(孝臺)를, 연곡사에 갔다면 '동부도' 뒤편 산비탈길로 걸어올라야 할 것입니다. 웅장한 목조건축물인 각황전과 거대한 석등 사이를 지나 동백숲 사잇길로 올라가면 아름다운 반송이 감싸고 있는 효대에 닿는데, 이곳에 저 유명한 '4사자3층석탑'이 자리하지요. 연곡사 동부도 뒤편 산비탈길을 10여분 올라가면 참으로 아름답고 정교한 조각의 '북부도'가 맞이해 준답니다.

화엄사와 연곡사는 신라 사찰의 지리산 입산 1호의 천년 거찰입니다. 두 사찰은 신라 진흥왕 5년(554년)에 창건됐는데, 모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웠다고 하네요. 지리산 문화 발전은 사찰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연기선사의 위치가 참으로 막중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연기조사는 지리산의 서쪽에 화엄사와 연곡사를 창건한데 이어 4년 뒤에는 지리산 동부에 법계사와 대원사를 똑같이 창건하게 되지요. 또 그이는 그보다 33년 앞서 대원사와 가까운 사천 땅에 다솔사를 창건했다는군요.

지리산 초기 불교사에 단연 빛나는 스님이 연기선사입니다. 그렇다면 그 연기선사는 누구일까요? 그것이 미스터리입니다. '대화엄사사적' 등에는 연기선사를 인도의 승려라고 기록하고 있답니다. '여지승람'에는 '어느 때 사람인지 모르지만 지리산에서 화엄사를 세웠다'고 했고, 지리적으로 보아 백제의 스님일 것이란 주장도 있지요. 그런데 1979년 신라 경덕왕 때의 '화엄경사경(華嚴經寫經)'이 발견됨으로써 그 의문이 풀렸지요. 연기는 황룡사 승려로 경덕왕 13년(754년) 화엄경사경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이에 따라 화엄사와 연곡사 등의 창건 연대도 신라 진흥왕이 아닌 경덕왕 때로 바로 잡혔고, 창건 이후 중건에 큰 업적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던 자장율사와 의상대사도 화엄사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지요. 이는 지리산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여기서 감히 불교문화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화엄사와 연곡사를 창건한 연기선사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아주 극진하여, 그래서 저 아름다운 화엄사 효대의 4사지3층석탑과 연곡사의 북부도를 낳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를 감동케 해줍니다.

화엄사 4사자3층석탑은 국보 제35호, 연곡사 북부도는 국보 제54호입니다. 석탑과 부도가 국보로 지정돼 있는 사실만으로도 두 석조물의 탁월한 예술적 경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예요. 그 출중한 예술적 아름다움은 차치하고, 이 석탑과 부도는 연기조사가 어머니를 그리워한 것의 소산물이라고 하여 더욱 주목되는 것입니다. 불가에 귀의하면 그 순간부터 속세의 가족과 인연을 끊게 되는 것인데, 어떻게 지리산의 대사찰을 잇따라 세운 대선사가 어머니의 사랑에 그토록 연연했던 것일까요? 그것이 더욱 놀라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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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거사 2002.11.29 23:51
    緣起조사는 그 法名에도 깊은 의미가 있어보였습니다만, 어머님에 대한 깊은 지극함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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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2.12.01 22:51
    '물 길으시는 당신의 / 붉으신 손도 보이는 듯하옵니다'--어머니 그리는 간절한 글귀입니다.-
    고려 말기의 일연선사도 그 어머니 그리는 마음에 국사도 마다한 사연이고 보면 부처님의 多生父母十種大恩중에서도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을 연연함이 으뜸인가 하네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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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학 2002.12.02 10:37
    잘 읽었습니다. 공부한답시고 어릴 적 어머니곁을 떠난 사람에게는 아직도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찾아 뵙고 안부를 전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토요일만 되면 고향을 다녀와야 하는 학창시절 향수병이 되살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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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chi92 2002.12.04 09:38
    선암사 해우소(仙巖寺 解優所) ** 省巖 朴紋奭 **
    주머니 불룩한/두개 불알/천길 단애(斷涯)에 걸려/풍경(風磬)처럼/달랑대는 뒷간/지독히 묵은 바람은/아득한 미명(未明)의 어둠 깨쳐/천년 너머 분다.
    몸뚱이 안에 들끓는/백 천 가지 욕망/천년 바람에 곰삭이고/버섯처럼 피어나는/번뇌의 운해 헤치려/한번 용쓰는 찰나(刹那)/허공을 가르는/후련한 해탈(解脫)/바람은 제 풀에 놀래/풍경을 친다.
    번뇌는 옛적에 날리고/통싯간에 감도는/천만년의 고독/뒷산엔 한여름/뻐꾸기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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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해 2002.12.06 20:37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아주오래전 지리산365일을 삼권까지 읽고 지리산종주산행을 했던때가 생각납니다...책덕분에 많은거 배우고 돌아왔었습니다.
    우연히 들렀다가 님의 글을 뵈니 너무 반갑습니다.^^
    여전히 지리산사랑에 여념이 없으신 모습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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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바람 2003.02.04 14:56
    어머니 계실 때에 그 넓고 포근한 가슴에 안겨 맘껏 응석도 부리고 울어 보지 못했는지 지금 그 품안이 새삼 그리워, 생각만 하면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목놓아 통곡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난 울고 싶을 때마다 멜로 드라마를 생각한답니다. 극장에 가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를 보고 실컷 울어보고 싶다고. 옛날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봤을 때 그렇게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란 영화두요.

    그러나 요즘은 낙동강가를 달리다 보면 강건너 마을과 산들이 너무 아름다워 외롭고 울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멀리 가덕도 연대봉과 하구의 갯벌, 발갛게 그림자를 드리운 석양에 비춰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게 해 주신 분께 항상 감사드리고, 이런 환경에 처한 자신의 행운에 우쭐해 하면서도
    울고 싶을 땐 물풀과 물새가 아름다운 둔치도나 걸어가도 좋을 만큼 빠안히 눌차도가 보이는 신호 공단의 어느 바닷가를 떠 올리곤 합니다.
    정호승 님의 시 너무 좋군요.
    좋은 글 띄어 주신 여산님, 존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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