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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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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바람 불며 가자

  로타리 산장을 바로 지나면 길 옆에 졸졸 물이 흐르는 곳이 있고 내가 보기에는 총각샘 만큼이나 운치 있고 물맛이 좋은 곳이다. 다만 바위 사이로 흘러 내리는 물을 받으려면 댓잎과 그릇이 있어야 하지만.

  별로 특징없는 길을 좀 걷다 보면 법천골 길과 법계사 길이 나뉘는 곳흔들다리 밑 두 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작은 개울이 하나 있다. 법천골 계곡은 계속 이어져 중산리 계곡의 주류를 이루게 되고 하산길 중심으로 좌측에서 흐르는 지류는 무릎 정도까지 담글 수 있는 개울 같은 곳이다. 양말 벗고 발 담그니 정말 시원하다. 진정한 깊은 산 계곡의 맛이다. 거북이 부자에게 손짓하니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다.

  실은 이런 여유를 가지고 쉬엄 쉬엄 정취를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등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워낙 여유를 주지 않는 장엄한 산이라 이렇게 사간과 거리의 여유를 만들지 못하면 이런 즐거움을 맛 볼 여지 없이 땀만 흘리게 된다.

  땀을 충분히 식히고 길을 나서니 짜증이 날 때쯤 중산리 야영장이다. 파이프로 쏟아지는 물에 세수하고 머리 감으니 시원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즐겁다.

  그런데 바로 옆 나무 그늘에 크게 누워 잠든 부부가 참 정겹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신선이 따로 있을까?

  드디어 법계교 도착. 17시 30분. 정확히 12시간 20분 걸렸다. 당일 코스 시도 3번 만에 유일하게 해 떠 있을 때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매표소 지나 캔 맥주 한잔 들이키고 나서 이제 등 붙일 곳으로 가야 한다. 이 노회한 고양이 짱구 굴려 민박 예약하면서 pick up 부탁했다. 2002년도 중산리 시외버스 터미날에서도 한참 산쪽으로 잡아 둔 민박집에 차를 두고 이곳에서 차를 가지러 걸어 가다 결국 택시 신세를 졌던 그 악몽이 너무나 지독해서 였다.

  도착한 경차 타고 기니 이런 터미날 지나서 한참이다.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거리다. 만약 동행인들 걸렸다면 나 맞아 죽었을 거다.

  도착해 여장 풀고 백숙 한마리 부탁하고 계곡에 몸 담그니 참 좋다. 이래서 이곳을 찾는다. 일찍 골아 떨어진 친구 아들 무시하고 둘이서 오랜만에 자연을 벗삼아 통음하니 친구가 좋다.

  한가지 흠. 닭 백숙 정말 맛 없다. 도데체 어찌 제대로 쌂지도 못한단 말인가? 아마 잡아서 냉동상태로 둔지 오래인 모양이다. 2004년 종주때도 화엄사에게 주문한 백숙이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이번에도 2% 부족한 부분이다. 어찌 세상만사가 100% 만족스러우리오

  전구지 찌지미(부추전의 순 경상도식 사투리)에 방아, 탱초 곱빼기로 넣어 먹으니 백숙보다 백번 낫다.

  다음 날 아침 서둘러 떠나자는 사춘기 친구 아들 반 협박으로 앉혀 놓고 40대 중반 친구 둘이서 중산리 계곡에서 개헤엄 치니 즐겁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은 걷기가 불편하지 않다. 지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적어도 2~3일간은 발걸음 떼어 놓기가 불편했는데 최근 친구 부자도 별 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제 괴롭더라도 계곡에 들어 가 좀 움직인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다른 분들도 지치고 귀찮더라도 바로 쉬지 말고 조금씩 움직일 것을 권한다.

  진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또 다른 동창 불러 진주 비빔밥 얻어 먹고 상경길. 얼큰한 소주에 취해 깊은 잠에 빠졌다.


  2002년 이후 5년 동안 6번 지리산을 찾았고 1번의 종주와 1번의 일출 성공. 그러나 공통점은 늘 그곳에 나의 고교 동창이 있었고 늘 그 동행은 달랐다.-이번만은 예외-그랬기에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도 시도할 수 있었다.

  산은 늘 그곳에 있다. 이 일정에 이어 어느 산사를 찾아 2박3일간 머물 때 동행인이 그런 화두를 던졌다.

  “천년이 넘었다는 저 은행나무의 무엇이 천년이 되었나요? 그 어느 것도 천년이 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천년간 이곳에 천년동안 은행나무가 있었다는 것만이 사실입니다.”

  그렇다. 변화 속에 흐름만이 존재하고 나도 변함없는 곳을 찾을 때 마다 나만 변해 왔다.
  
  이제 지리산 동쪽 자락은 웬만큼 섭렵했다. 법천골, 법계사, 백무동, 대원사, 종주능선, 화엄사, 뱀사골, 쌍계사길. 서쪽 자락을 좀 밟아 보고 싶고 특히 봄, 가을의 지리산을 보고 싶다. 앞으로 몇 년 아니 몇 번이나 더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산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테고 나의 정열이나 용기, 아니면 동반자가 먼저 사라지겠지. 힘이 있는 날까지 산을 찾아 몸과 마음의 때를 벗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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