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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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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의가 주는 즐거움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들겨 주고 부자 폼나게 사진 한 장 찍어 주고 길을 재촉한다.

  “빨리 왔다, 이제부터는 무리하지 날고 천천히 가자. 무릎 아파지면 힘들다”

  법계사로의 하산은 처음이다. 이 코스로 도합 3번 등정한 적은 있으나 1번은 법천골로, 한번은 종주길로 그리고 작년에는 백무동으로 하산했었다.

  정상에서 내려와 서쪽으로 향하니 뭔가 이상하다. 거의 정상에 붙어 있었는데 이상하게 비탈진 그 악몽의 돌 밭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이를 붙잡고 물으니 중산리 길 맞단다. 조금 더 가다 영 아닌데 싶어 또 물으니 장터목에서 내려 가란다.

  우씨 완전히 스타일 구겼다. 바로 잘못 시인. 되돌아 가자니 인상들이 상당히 험악해진다. 부끄러운 탓도 있고 제대로 길을 찾아 두어야 갰다는 생각 냉큼 앞서 걸었다.

  겨우 내려 가는 곳 파악해 두고 기다리고 서 있으니 30대 중반정도의 5명이 캔맥주를 들이키고 있다. 그런데 어랍쇼. 캔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게 아닌가?

  신기한 눈길로 쳐다 보고 있으니 부른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귀한 것을 감히----“
  “한잔만 하세요” 못 이기는 척 한잔 들이키니 정말 시원하다. 무슨 호사인가? 원을 그린 자리 한가운데 가방형 아이스 박스가 놓여 있다.

  “힘들게 이곳까지 들고 오셨습니까? 대단합니다.”
  “한마디로 미쳤죠.”
  “제 입으로 그렇게 표현할 순 없고---“
  “그래도 입이 즐겁잖아요”

  그렇다. 특별한 희열을 필요로 한다면 반드시 특별한 노고가 따라야 한다. 참 정열적인 사람들이다.

    작년에는 하산 길에 수박 두 덩이를 짊어 지고 가는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과연 꼭대기까지 먹어 치우지 않고 가져갔을까 궁금하다.
차마 뒤 따라 온 친구를 위해 한잔을 더 요청할 수는 없었다. 지난번 종주 때 높은 산을 오르는 고행자에게 있어 무게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친구야 원망마라

  밥 지을 곳을 향해서

  역시 그 길은 힘들었다. 지리산 최고의 난구간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법계사 코스의 마지막 500m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그 다음이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이어지는 끝없는 계단 하산길, 그 다음이고 화개재에서 이어지는 철 계단이다.

  거의 기듯이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니 그 길을 3번이나 오른 입장에서 가엾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힘 내세요” 사실 산길에서는 거짓말이 큰 보탬이 되기도 한다, 물론 지나치면 좌절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법계사 하산길 역시 만만치 않다. 어찌 이 산은 하산길이 더 힘들다는 느낌 마저 주는 걸까? 당연한 돌길, 계단, 가파름을 거쳐 사이 사이 오르는 분들에게 거짓말 꽤나 했다.

  서서히 나도 짜증이 나고 법계사까지는 가야 시장기를 채운다는 생각이 앞서는데 이정표 인심은 너무 박하다. 물론 사이 사이 마련해 둔 구조용 이정표가 500m 간격으로 있어 대충의 속도는 짐작할 수 있지만 ---.

  “제발 국립공원 관리하시는 공무원 여러분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주기적으로 이정표 좀 더 마련해 주십시오. 최소한 구조용 표식 밑에 주요거점까지의 거리라도 좀 써 주세요.”

  쇠로 된 fence가 너무 반갑다. 법계사 로타리 산장.

그  런데 그 콸콸 넘치던 물 웅덩이 위를 나무 뚜껑이 굳게 막고 있다. 산장 공익근무자에게 물으니 절에 가서 물 떠오란다. 이런 제기랄----.

  일단 남은 수통 물부터 끓이려 버너와 가스 통을 끄집어 내는데 옆에 계신 베테랑처럼 보이는 분 왈  “안 맞으텐데요”

  앗불사! 가스는 원통형을 버너는 스탠드형을 들고 왔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 진다. 저 배고픈 중생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재빨리 공익요원에게 이 버너에 맞는 가스통 파느냐고 물으니 있단다.

  천만 다행이다. 이 난관을 극복하지 못했으면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는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물이 끓을 때 쯤 거북이들 나타났다. 햇반 데우고 라면 끓이고 준비 끝.

  “야. 반찬 끄집어 내라”
  “아빠 배낭 보세요”
  “아까 니 배낭에서 끄집어 냈잖아”
  “없어요”

  이런. 두 부자 국물이 샌다 어쩌구 하더니만 부식통 천왕봉에 祭物로 두고 왔다. 환경 오염 제대로 했다. 내년에 찾아 먹자

  3천원짜리 캔 김치. 정말 먹기 힘들다, 배가 덜 고픈 탓도 있겠지만. 옆 테이블에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세 쌍의 부부가 도시락을 거의 비운 모양이다. 곁눈질로 보니 찬이 좀 남았다.

  “ 야! 원인자 부담이다. 김치 구걸해 와라”
  “ 니가 좀 해라”
  이런 세상에 미리 도착해서 물 끓여 오만 짓 혼자 다 했겄만----. 그래 적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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