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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한 만남 그리고 새로운 화두

  08:53 망바위 도착

  동행들과 다소 거리를 두고 먼저 도착하여 여유가 있어 산림보호법(?)을 위반하고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무니 참 맛이 좋다. 배낭을 배게 삼아 한 5분 눈을 붙이고 나니 한결 상쾌하다.

  늦게 도착한 일행들 탄성을 지른다. 이곳 바위에서 세 아들과 세 아비가 각각 기념촬영을 한 곳이다. 잠깐 3년 전 추억을 더듬고 있는데 중년의 한 분이 나타났다.

  전 직장의 상사였고 지금은 그 회사의 사장이며 고교 선배인 분. 2003년 그 회사와 인연을 다한 후 첫 대면이다. 깍듯이 예의를 갖추니 다소 의외라는 듯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15년간 같은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아마 손을 마주 잡은 횟수가 한 손으로 꼽아도 남을 정도로 살갑지는 않은 분이셨는데,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주 오나”
  “5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 산이 좋지”
  “그런데 동행 분들은---“
  “응, 혼자야 이제는 집사람이 같이 다니지 않으려 해. 혼자 다니는 게 편하지”
  “그렇긴 하지만 하지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세석에서 좀 늦게 일어났다는 이야기에 미루어 아마 어제 아침 일찍 노고단 정도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60 나이에 혼자 지리산 종주라. ‘저런 집요함과 도전 정신이 우리나라 굴지의 사랑자리로까지 이끈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행한 친구도 동문이라 소개를 했다.

  2002년 첫 지리산 등반 때 천왕봉에서도 지인을 만난 적이 있다. 특별히 등산 동호회 활동을 한 적도 없고 지근의 거리에 적을 두고 산 적도 없는데 우연인지 아니면 내가 아는 사람이 많은 건지---.

  실은 내가 그 회사를 떠난 이후 생활은 옛날같지 않고 생활 속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마다 그 때를 곱씹어 보지만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닌데 이분 역시 내 회사 생활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던 사실이 이 등산길에 화두를 보탠다.

  이제 장터목까지 그리 멀지 않다. 내쳐 걸으면 30~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곱지 않은 모습

  10:00 장터목 산장도착. 그리 나쁘지 않은 진행이다.

  장터목에 도착하니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여전히 안개는 자욱하고 조망도 별로다.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일단의 어린 아이들이 조잘조잘 떠들어 댄다.

  인솔자 인듯한 어른이 떠날 준비를 하라는 큰 소리가 들리고 나는 늘 그랬듯이 ‘장터목 산장’이라는 현판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주변사람에게 부탁하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우루루 잔걸음을 옮기더니 땅 바닥으로 손을 뻗고 허리를 숙인다.

  가만히 사태를 살펴 보니 짐을 싼 자리에서 햇반 빈 그릇이 발견 된 모양이다. 누구 것이냐고 물으니 임자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버린 아이가 가져 가야 한다고 대답을 하고 화가 난 어른은 “제가 가져 가겠습니다.”라는 지원자가 나오기까지 계속 엎드려 뻗쳐와 소위 원산폭격을 반복한다.

  무더운 여름 가장 나이들어 보이는 아이가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심지어 미취학 아동으로 보이는 아이까지 줄잡아 20 여명이다.

  교육적 의미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인솔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정답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 교육효과를 위해 저 아이들에게 지극히 일차원적인 방법을 동원하다니---.

  일전에 학원에서 맞아 다리에 멍이 들어 온 아들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적절한 수준의 체벌은 교육효과가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체벌은 일정 자격을 갖춘 사람이 순수한 목적으로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어찌 된 판인지 교육자인 교사의 체벌은 문제가 되고 지식(?) 전달자인 학원 강사의 체벌은 문제가 없는 세상이니 참 답답하기 그지 없다.

  매질로 사람을 다스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부를 수도 대우할 수도 없다. 뭔가 다른 방법으로 이끌어 갈 재주를 가진 사람만이 지도자일 수 있다.

  과연 저 아이들의 부모는 저 인솔자의 인격을 어떻게 판단하고 저 어린 것들을 맡겼을까? 주변 몇몇 어른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급기야 어떤 사람을 참견을 한다.

  “저렇게 어린 아이들 이렇게 통제하지 않으면 사고 나요”
  “그러면 데리고 오지를 말아야지”

  묵묵히 쳐다만 보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까지 한다. 나도 학원 선생을 어떻게 믿나? 영 마음이 무겁다.

  앞 서거니 뒷 서거니 천왕봉으로 향하며 아이들에게 한두마디 물으니 마산에 있는 택견학원에서 왔단다. 마산, 내 고향이도 한데--. 동행한 친구 아들이 무슨 의미인지 심상치 않은 어조로
“ 아빠 마산에서 왔데----“

  
  정상이다

  3년 전 이 동행을 포함 세 부자가 지리산을 찾았을 때는 늦은 시간에 시작했고 등정길에 시간도 많이 걸려 천왕봉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하산길마저 길어져 어둠속에서 텐트를 치느라 무지 애를 먹었다.

  “앞으로 길은 어떠냐?”
  “등성이 길인데 뭐, 이전보다는 훨씬 편해”- 사실 거짓말이다.

  또 뒤쳐진 친구를 기다려 지리산 비경 중의 하나인 주목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 내쳐 잰 걸음으로 천왕봉으로 향한다.

  11시 10분. 등정 6시간 만이다. 참샘, 망바위, 장터목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것을 감안하면 그리 나쁘지 않다. 어쩌면 경험이 적은 사람들을 몰아 붙이지 않았나 싶다.

  한국인의 기상 어쩌구---.

  별로 붐비지 않지만 안개로 조망은 별로다. 땀흘리고 오는 모습을 스틸로 찍기 위해 자리를 잡고 기다려도 보이지 않는다. 포기.

  가만이 앉아 전화기에 입력된 227명중 40명을 엄선하여 SMS를 날린다.

  “여기는 지리산 천왕봉. 5번째 등정 성공”

  한번에 날릴 수 있는 사람이 20명이 한도라 재차 20명에게 문자 날리기를 시도하는 동안 답신들이 방해한다. 무시하고 다 날렸다.

  한 두 명은 직접 전화를 주기도 했는데 통화를 위해 마치 잠자리 채를 든 어린이처럼 이리저리 흔들어 대는 내 모습이 스스로 우스워 전원을 꺼 버렸다.

  약 15분 후 두 부자는 나타났고 남한 제1봉에-사실상- 오른 감격에 겨워 “야 엄마에게 전화해라”----.

  별로 눈에 뜨이는 것도 없고 하산을 재촉한다.

  이제는 별로 새롭지도 감격스럽지도 않은 이 곳. 최근에 읽은 책 ‘사막을 건너는 다섯가지 방법’에서는 인생이란 지도가 있는 등산이 아니며 또한 정상에 오르는 것이 절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이르고 있다.

  이제 조금 그 이치를 깨닫고 있는 중이고 그래서 내려가기에 성공하고 싶다.

  이 책속에 담긴 이야기 중에는 에베레스트를 겨냥한 사람들 중 사망자 대부분은 하산 길에 목숨을 잃었다는 대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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