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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206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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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쟁이 욕심이 만들어 낸 길


백무동에서 인민군 총사령부터가 있는 창암의 곁가지를 1시간여를 오르면 소지봉에서 내려오는 능선을 만나게 된다. 이 길은 국립공원 외 지역으로 함양군에서 파르티잔을 모티브로 탐방로와 조형물을 조성해 놓아 길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다만 표정없는 마네킹 모습이 흉물스러워 야간에라도 한번 조우해본 사람이라면 등골 오싹한 소름을 한번씩은 돋아내야 한다.

이 소지봉 능선에서 칠선계곡방향으로 트래버스를 하듯 나아가면 머지않아 칠선폭포 바로 전 지계곡 앞으로 나서게 된다. 길은 거의 고저차가 없이 평안하여 힘들이지 않고 내려설 수 있다.

괄괄한 칠선폭포를 지나면 곧 대륙폭포 삼거리가 나온다. 대륙폭포는 주능의 하봉과 초암능상의 촛대봉 사이를 흐르는 계곡에 있어 칠선계곡과는 약간 비켜 서있는 폭포지만 칠선 본류에서 불과 50여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옥같은 암반 위를 비상하는 자태가 우아하여 칠선골의 여느 폭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작이다.



(대륙폭포, 비상하는 모습이 그지없이 시원스럽다)


다시 칠선의 본류를 30여분 오르면 계곡을 막아서고 있는 삼단의 폭포가 나온다.

이 폭포의 첫 느낌은 도도하다는 것이다. 상단은 정갈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듯 다소곳한데 반해, 중단은 양 갈래로 나뉜 커다란 물줄기가 마치 구렁이가 미끄러지듯 흘러 내려와 한 곳으로 파고든다. 그 아래 웅덩이는 청량하면서도 수심이 깊어 섬짓한 기운이 돋는다. 폭포 중단에 그리 깊은 소가 만들어진 곳은 지리산에서 그리 흔치 않은 광경이다. 마지막을 비상하는 물기둥은 어느 폭포보다 과감하다. 깊은 골을 돌아 하나 망설임도 없이 수직으로 낙하하여 웅장하고 거침없는 칠선의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여기서 마폭까지는 칠선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평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애초부터 이곳이 크고 작은 바위가 뒤엉킨 정돈되지 않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것은 천왕봉과 중봉의 사태로 흘러내린 바위들이 계곡을 메워 오랫동안 갈고 닦았던 예전의 정갈한 모습을 덮여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흔적은 아직 지리산 곳곳에 남아있어 지리산을 바라보는 산꾼들도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자연의 섭리가 그렇듯 대륙폭포 아래쪽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마폭을 만나게 되면 계곡 건너로 천왕봉을 직등하는 기존 등산로에 표지판이 보이고, 우측엔 삼층폭포가 한가롭게 물을 쏟아낸다.

마폭골은 여기서 마폭의 우측을 돌아 올라야 한다.

아마 이 길을 처음간 산꾼은 굉장한 에고이스트였을 것이다. 여기서 길다운 길이 있는 천왕봉 직등길도 곧추선 능선길로 한 시간여를 올라야 하는데, 시치미 뚝따고 막아서 있는 저 폭포 위를 오르려고 마음을 먹었다는 자체가 웬만큼의 고집쟁이 아니고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하늘을 향해 바로 올라설 수 있는 용기는 범인들에게는 생심은 있을지언정 시도 자체가 두려움일 수밖에 없다.

그뿐이 아니다. 이곳은 지리산 봉우리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가슴 철렁한 사태가 정수리에서부터 흘러내려 금단의 지역임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찾아 나선다는 자체가 우선 단순한 모험심 하나 가지고는 어렵다. 폭포 뒤 그저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기둥 뒤로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아니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올라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굉장히 이기주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오름길의 상태는 처음부터 시종일관 된비알이다. 그것도 두 발이 아닌 네 발을 사용해야하는 코스가 더 많다. 동계라면 전문장비에 프론트포인팅을 각오하고 올라야만이 가능한 곳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마폭에서부터 약 500m정도의 고도가 하나의 폭포로 연결되어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수직으로 일어서 있느냐 와폭으로 누워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물론 아직 사태의 잔해들이 군데군데 남아있어 미관을 해치고 있기는 하지만, 맨살을 들어낸 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 역시 자연의 가장 자연스런 자기 치유 방법이다.

마폭골의 백미는 5단 폭포이다. 그 거대한 사태에도 아직 꿋꿋이 그 자태를 잃지 않고 있는 걸보면 이 골짜기 폭포로서의 맹주로 인정할만하다. 우선 벽 자체의 높이가 최고이고, 비상하는 물줄기는 여느 폭포처럼 한 곳으로 모여 웅덩이로 쏟아 붓는 단순한 모양이 아니다. 한줄기가 둘로 퍼졌다가 다시 모이고, 두 줄기는 다시 또 네 줄기로 나뉘었다가 다시 모인다. 마치 비행을 마치고 착지를 시도하는 학의 자태를 연상케 한다. 한 다리는 땅을 내딛듯 길게 뻗고 한 다리는 다음 동작을 위해 살짝 오므린 모습인데다, 날개는 상향으로 펼쳤다가 막 접어 지상착륙을 위해 내딛는 형상이다. 위엄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폭포이다.
이 폭포 역시 우측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다.



(마폭골의 백미인 5단 폭포, 꿈을 그려내듯 뭔가 하나 이미지를 형상해 내려는 듯한 느낌을 주는 폭포이다.)


수량이 한결 줄어서이지 그 위쪽도 폭포의 모습은 여전하다. 수량이 적은 지금의 계절이라도 한 치의 흐트러짐을 보이면 그것은 곧 위험을 예고한다.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정점까지 올라서야 한다.

사태의 사발점이 보이고 물길이 끊긴다 싶으면 우측 멀리 천왕봉을 오르는 철계단이 마루금을 이루고,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자부심 섞인 에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사태지역은 복구공사를 실시해 그대로 오를 수도 있지만 사태의 끝마무리 지점에서 좌측 숲길을 오르는게 더 안전하다. 물론 얼마간의 덤불을 헤쳐야하긴 하지만...

마폭에서 중봉안부까지 약 두 시간이 걸렸다. 거리야 불과 2km남짓이지만 모자란 새벽잠과 된비알을 올라서는 고단함을 풍광 좋은 경치 핑계로 둘러대며 틈만나면 눌러앉자 쉬는 바람에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하봉의 헬리포트에서 점심을 풀어 소중하게 준비해간 삼겹살과 곰취 향기를 마음껏 누리니 세상 부러운게 없었다.

내림길은 당초 하봉 안부에서 대륙폭포가 있는 합수골로 할 예정이었이나 사태의 진행이 마무리되지 않아 위험할 것으로 판단해 초암릉상의 촛대바위에서 합수골 지계곡으로 꺾어 대륙폭포로 내렸다.

대륙폭포를 만난 후 새벽녘 오름길을 다시 걸어 백무동에서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긴 거리여서 하루 마무리가 벅찬감도 있었지만 생각보다는 크게 지루하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유쾌한 하루였다.

천왕의 성모가 얼굴을 부비며 부둥켜 안고 어깨를 다독이며 안아주던 그런 마음 이었다.
  


- 구름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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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로 2005.07.01 11:55
    저 아름다운 곳을 언제나 가보려나 마음은 벌써 지리로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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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후 2005.07.01 13:00
    구름모자님의 산행길은 날 자꾸만 유혹합니다,함께 그길을
    가보고 싶노라고...기회가 닿으면 함께 가고 싶습니다.
    산행달력에 날짜 올리시면 시간 적정할때 꼬리글 달죠.
    올려 주신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 ?
    zoom 2005.07.04 08:57
    이번엔 저도 칠선으로.. ^^;
    창암능선도 오랫만에 가보고 싶고...
    마음만 항상 지리에 있습니다.
  • ?
    구름모자 2005.07.04 11:12
    진로님 지리는 항상 그곳에 있습니다. 몸도 ㅁ바음도 쉴 수 있는 곳이니 언제든지 달려가십시요
    신후님 미리부터 코스를 잡아놓고 오르진 않습니다. 가능하면 전날, 그렇지 않으면 당일날 출발하면서 코스를 결정할때도 있습니다
    zoom님 칠선도 창암도 모두 잘있습니다. 일부러라도 훌쩍 떠나보십시요. 목마름은 채우셔야 갈증이 해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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