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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골짜기 봉산골

‘봉산封山’이란 나라에서 나무를 베어내지 못하게 정해놓은 곳을 말한다.

황장봉산黃腸封山, 율목봉산栗木封山, 태봉봉산胎封封山, 향탄봉산香炭封山, 진목봉산眞木封山, 선재봉산船材封山 등이 있는데 모두 특정한 목재와 임산물, 또는 왕실의 능묘를 보호하거나 포의를 묻기 위하여 지정했다. 이중 가장 많이 분포했던 것이 황장봉산이다.

이는 질 좋은 황장목, 즉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송목금벌松木禁伐 정책을 시행했던 것인데 주로 궁궐이나 관아 등의 대형건물을 짓거나, 중요한 교통수단인 배 또는 전선戰船을 만들기 위하여 썼던 보호정책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소나무는 깊은 산 절벽이나 바닷가에 형이상학으로 뒤틀어져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소나무가 토종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원래 우리나라의 토종 소나무는 황장목이었다.

최근 우리나라 산에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는 리기다소나무는 온 산이 헐벗었던 시절 우선 당장이 급했던 산림정책에 의하여 속성수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심어진 외래종이다. 제법 반듯이 커나가는 듯하지만 껍질이 두껍고 재질이 약하여 목재로서의 가치는 크지 않다.

황장목은 위아래의 폭도 거의 일정할 뿐 아니라, 껍질이 얇고 단단하며, 나이테의 간격이 좁고 황금색을 띄고 있어 ‘붉음과 황금’이란 색의 조화가 품격 높은 나무로 인식되기도 한다. 표피가 붉어 적송이라고도 불렀으며, 근세에는 운송수단이 철도로 용이해 지면서 부근 황장목 집하장이었던 경북 봉화의 춘양역에서 수도권으로 운반된 관계로 춘양목春陽木이라고도 불렀지만, 지금은 우리의 정서와 가장 잘 어울리는 금강송金剛松이라 부른다.

황장봉산의 기록은 영조 10년, 봉산에 대한 교령을 정리하여 편찬한《신보수교집록(新補受敎輯錄)》에 벌채와 화기금지를 밝히고 있고, 영조22년 기록에는 강원, 경상, 전라도의 32개 읍면에 41개소가 있었다 전하지만 충청이나 경기지방에도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울진 소광리 황장목이다.

내가 지금 티끌만한 기록도 없는 상황에서 ‘봉산’이란 골짜기 이름 하나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반야봉에서 북쪽으로 내리는 심마니능선의 황장목을 보고나서부터이다. 이 소나무는 산지식이 조금만 있어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토종 황장목이다.

부근 어느 지능을 올라 봐도 아직 상당한 분포의 황장목이 늠름하게 서있으며, 그 능선마루나 바위 등걸에 올라 모진 세월을 견디면서도 한점 흐트러짐 없이 하늘을 들어올린 자태는 삼천 번의 외침에도 굴하지 않은 한민족의 기상이 베어있는 듯하여 가히 배달의 나무로 칭송 받을만하다. 단지 분포의 입목본수가 약하고 수령이 길지 않은 것이 흠이지만 이는 일제 수탈 역사와 한국전쟁, 그리고 국가 감시망이 미치지 못하는 시절 도벌꾼들의 마구잡이 벌채가 그 장본인이다.

다만 내가 주장할 만한 근거를 전혀 찾아내지 못하였으니 그저 아직 남아있는 이름 하나로 어느 하 시절 달의 궁절이 있었다는 전설과 반야봉 주변의 찬란했던 원시림을 그리며 몽상가적인 추론으로 우기고 싶을 따름이다.



봉산골 오름길 초입은 달궁마을을 지나 성삼재 방향을 오르다 정령치 삼거리를 만나기전 급커브지점 좌측에 심원계곡 쟁기소를 내려서는 곳이 시작이다. 계곡엔 일반 탐방객들을 위한 조교가 놓여있고 반석위로는 보기에도 시원스런 청류가 흐른다.

15분 정도를 걸으면 첫 계곡 횡단지점이 나오는데 여기서 계곡을 건너 지능을 밟으면 심마니 능선상 전망대 구실을 하는 두리봉(1,450m)에서 하점골과 봉산골이 갈리는 지능으로 올라서게 된다.

여기서 봉산골을 오르려면 우리의 평소 습관처럼 산길에 대한 개념없이 계곡으로 들어서야 한다. 일반 등산객이 다닐만한 길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편할 정도로 원시상태이며, 다만 고로수 수액을 채취하기 위한 파이프와 이들의 작업로가 그나마도 어느 정도 가이드 역할을 한다.

처음부터 계곡을 차며 오르게 되고 간간이 계곡 옆 오솔길을 걷게 되는 경우도 있으나, 워낙이 좁은 협곡이어서 위험스런 산비탈과 골짜기를 반복하여 오르내리고, 몇 번씩이나 계곡을 건너야 하는 곡예사 외줄타기 같은 길의 연속이다. 첫 느낌이 우기나 동계에는 오름에 대한 생각 자체를 불허할 만큼 원시적이다. 여기서는 지도에 의지할 수도 없다. 지형도상의 등산로는 계곡우측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전혀 믿지 못할 선에 불과하다.

해발 900정도에서 흐르는 물길과 비켜 서있는 숨은 폭포를 하나 만난다. 떨어지는 높이도 상당할 뿐 아니라 수량도 만만치 않아 제법 사람의 눈길이 갔을 터인데도 전혀 아무런 표시가 없다. 하기야 지리산 숨은 계곡에 이런 곳이 한 두 군데이던가?

폭포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좌측으로 트래버스를 해야 한다. 제법 급한 경사이고 이내 숨소리가 커진다. 상부에 올라서면 산죽밭이다. 여기에서는 길 찾기에 주의해야한다. 좌측으로 이어진 너덜지대는 처음 얼마간 길처럼 보이나 그 너덜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간의 고행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곳을 그냥 차고 오르면 두리봉에서 시작하는 능선으로 붙을 수 있다.

봉산골을 계속해서 오를 양이면 계곡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산죽밭을 트래버스하듯 차고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봉산골엔 거대한 폭포가 굉음을 내며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4~5단 정도가 연이어서... 아마도 처음 만났던 숨은 폭포와 이어진 사춘간인 것으로 보인다. 산죽의 푸르름 저 끝에 검은 바위를 타고 흐르는 하얀 기둥과 물안개는 인적이 들지 않아 자연상태로만 지켜낸 이곳만의 특성일 것이다.

아직은 고로수작업을 하던 사람들의 지나친 흔적이 보이나 이것도 믿을만한 것은 못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나무와 호수설치가 용이한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 산꾼들의 오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긴가민가하거나, 두 방향이상 갈라졌다는 느낌이 들거든 우선은 계곡이 가까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그 긴가민가한 길도 확실한 사람흔적이라고 판단하긴 쉽지 않지만...  

폭포지대를 지나면 계곡의 물이 훨씬 줄어든다. 물론 지금이 갈수기인 점을 감안하면 우기에는 다르겠지만 우선은 사람을 긴장시키는 굉음이 없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계곡을 따르기로 한다. 물론 좌우 양측도 사람이 다닐만큼 용이한 지대는 없다. 어느 곳은 벽이고 어느 곳은 덤불숲이다. 하나라도 피해보려면 오르는 방향으로 시야가 트이고 잡아당기는 줄기라도 걸리적거리지 않는 계곡이 편하다.

계곡은 각이 거의 서있는 수준이다. 수량이 적다는 점만이 우리를 안심시킬 뿐 일부러 찾아오기는 힘들 듯 보인다. 때론 이끼가, 때론 너덜로, 때론 벽이 서있어 한걸음 한걸음이 신중해 진다.

어느 결엔가 물길이 끊기고 시야가 터져 뒤를 돌아보니 정령치 휴게소가 손톱만하게 보인다. 비로소 오늘 처음 제대로 된 하늘금을 본 것이다.

지난여름 큰 물에 사태진 곳은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이로 인한 잔돌들이 제멋대로 걸려있어 손놀림 발놀림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경사에서 잘못 건드리는 낙석 하나는 곧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상부로 올라갈수록 경사는 점점 더 상체를 일으키고, 주위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탈출할 만한 곳이 없다. 문득 돌아보니 두리봉이 건너편에서 삐죽이 웃고 있다.

사태가 끝난 지점에서 조금 더 올라 다섯 명이 겨우 엉덩이를 걸칠만한 공간을 찾아내고는 허기진 배를 채우고 일어서려는데 선두에서 더 이상 전진이 불가함을 알린다.

우리가 앉자있는 그곳에서 우측으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그것이 사람의 흔적인 것은 여린 나무를 낫으로 베어낸 자욱과 희미하지만 발 디딤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이다.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 저 아래 어느 지점에서 표지기를 본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인 것 같지는 않다. 조금 전 벽을 오를 때까지만 해도 투명하고 가느다란 고로수 수액 채취용 파이프 하나가 우측 사면을 타고 올라갔다.

짐작컨대 그들은 경칩 훨씬 이전 이른 봄에 작업을 나왔을 것이다. 이 골은 반야중봉에서 시작하는 높은 곳이다. 게다가 골이 협소하고 북향받이여서 일조량도 적다. 반야봉 골짜기에서 얼음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다 해서 얼음골이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작업을 나왔을 시기에도 그 얼음은 남아있지 않았을까? 작업은 마쳤지만 내려가기보다는 오르는 게 더 편하지 않았을까? 물론 사철 약초나 나물을 채취했을 터이니 어느 정도 산길은 알았을 터이고,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다녔던, 그야말로 심마니나 다닐 수 있었던 길이었겠지만 반야의 너른 품에 들어 사는 그들은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자기들만이 살아나갈 방법은 터득하지 않았을까?

흔적은 갈지자로 한번 꺾이더니 다시 벽이 하나 서있다. 그곳을 넘어서니 바위 위로 오지게 자란 가지들이 길을 막고 서있다. 억센 가지들을 부러뜨리며 그곳을 넘어서자 다시 여린 발디딤 흔적이 보인다. 분명 사람의 흔적이다. 성난 듯 일어서있는 바위틈이지만 그 틈 사이를 지키고 있는 나무의 밑둥을 잡고 오르니 비로소 너른 터가 나온다. 비로소 반야의 너른 둔부 아랫녘에 도착한 것이다.

이후부터는 점점 더 인적이 많아지고 나물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이 부근은 나물채취꾼들의 발길도 상당한 듯하여 여러갈래의 길이 보인다. 정점이 다했기에 점심 만찬을 위한 곰취 몇 장을 손에 쥐고는 키 작은 나무사이를 빠져 나오니 반야중봉 삼거리에서 심마니능선으로 내리는 지점이 불과 5분 거리였다.


사람은 적응을 하면서 자란다지만 위험은 적응만으로는 되지 않는 때가 있다. 때론 용기가 필요하고, 때론 기술이 필요하고, 때론 헤쳐 나갈 지혜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갖춰지지 못하면 그 위험함에 대한 기억은 고행, 사지, 다신 가지 않아야할 곳, 남이 가는 것을 말려야 하는 곳으로 밖에는 남지 않는다.

이 골짜기를 밟았던 기억은 10년이 훨씬 지난 어느 가을, 심마니능선 어느 지점에서 차고 내려섯던 기억인데 오늘은 그  흔적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오름의 상황에서 하나도 기억나는 포인트를 찾아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물론 코스가 같지는 않았지만 세월이 기억을 하얗게 지웠거나, 아니면 당시와 지금의 느낀 감정도 크게 변하여 매취를 시키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또 계절과 오르내림의 방향 차이도 있었을 것이다.

산을 향한 오름이란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짓이다.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오르는 것이다. 생각이 마음을 동하게 하고 그 마음이 일어서면 언제든지 올라야 하는 게 우리들이다.


‘봉산’

봉쇄의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오늘 이 봉쇄한 골짜기를 들면서 난 오름의 이유를 또 하나 만들었다.

우리가 생각을 가진 인간이라면 산은 오르는 곳임이 분명하다. 그 무엇으로 막든지 간에...


- 구름모자-

  • ?
    하해 2005.06.15 03:21
    유익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단편적으로나마 지리산 피아골에 봉산이 있었다라는 정도밖에 모르는데, 숨은 지리산의 역사를 날카로운 상상력으로 불러내는 듯 합니다.
    封山을 생각하면서 옛시대의 목재나 연료로써의 산림자원,산림정책,벌채,화전 등도 잇따라 떠올려 보네요.
  • ?
    신후 2005.06.15 12:25
    산림정책에 대한 이해 넗혀 주신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흔적 사라져
    가고 있는 10여년전에 올랐던 길을 힘들게
    오르시면서 혹 뒷 따르는 분 있으실까봐
    상세히 적어 주셨네요.
    "산을 향한 오름이란 인간이기에..."
    애 쓰셨고 강한 의지에 힘찬 박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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