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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은 자두인가?


지리산 오얏골은 서북능선상에서 정령치로 이어진 언양골의 우측 지능선과 세걸산 지능선 사이를 흘러 덕동마을에서 달궁계곡과 만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계곡이다.

덕동마을은 달궁계곡과 성삼재를 오르는 도로를 접하고 있어 지나치는 길손들이나 여름한철 더위를 피해 찾아든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기도 하는 곳이나, 그 위 오얏마을은 아름아름 귀동냥, 눈동냥으로 오지마을 찾는 사람들이나 우리같은 별종들 외엔 일부러 찾아드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발 700m에 위치한데다가 오름길도 일반 차량으로는 오를 수 없는 험한 산길을 손수 걸어서 올라야 하는 탓에, 손쉽고, 간편하고, 빠름으로 길들여진 현대인들치고 그 길이 가볍고 상쾌하고 낭만적인 일일 것이라 생각하며 시간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덕동마을을 지나면 어설프게라도 이어지던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끝나고 마치 임도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산길이야 어차피 흙길이라지만 사람사는 곳을 찾아가는 길이 누런 황토 빛 맨 살 길이라니 지리산 기슭에 기댄 자연부락 중에서도 오지중의 오지인 모양이긴 하다.

항상 함께 살면서도 서로를 경계하는 인간의 이중성은 예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르면서도 머릿속은 시종일관 이런 험한 곳 너머에 사람이 살고 있기나 한다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당체 믿겨지지가 않았다.

한 30분 정도를 올랐을까? 산모롱이를 돌자 거짓말처럼 아담한 분지 안에 오밀조밀 들어선 서너 채의 인가가 눈에 들어오고, 이른 아침 객꾼의 침입에 놀란 개 한마리가 조용한 산속의 정적을 깬다.

마을을 감아 안고 흐르는 내川는 동네 저 아래 있고, 전면 안산案山인 반야봉이 훤히 터진 골짜기 안으로 성큼 다가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오얏골에서 바라본 반야봉, 정상에 살짝 구름을 이고 있는 모습이 더 신비스럽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곳으로 올라왔던 것일까? 하고만은 땅덩어리 중에 어디 발붙일 곳이 없어 이곳에 터를 잡았던 것일까? 무엇으로 먹고 무엇으로 키우고 무엇으로 가르키며 무엇으로 살겠다고 이 깊은 산중을 택했던 것일까? 개딱지만한 집 한 칸 지을 터도 변변치 않고, 먹고살 것이라곤 종종걸음으로도 오르기 힘든 산비탈을 일구어 자급해야 했던 남채밭이 전부인 이 터를 삶의 안식처로 삼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같이 범인凡人으로 안주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문투성이인 이런 산골마을이 마냥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아마도 먼 옛날, 맨 처음 이곳에 터를 잡았던 사람은 필시 도망자였거나, 은둔자 신분이 아니었을까? 보이지 않게, 소문나지 않게 꼭꼭 숨어서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내가 지금 생뚱맞게도 이곳에서 이같이 불경스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들이 부득불 이곳에 은둔하게 된 것이 나라님이나 관리들의 잘못이거나, 아니면 누군가에 누명을 쓰거나, 피를 토하듯 억울함을 당하여 한을 품고 쫒겨오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래서 이젠 그런 앙금이 다 사라져 지리의 넉넉한 품에서 키운 호연지기만이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설에 의하면 백범 김구선생이 인천감옥을 탈옥하고 이곳으로 숨어들어 우물에 각覺자를 새겨 놓고 마음을 다스렸다하나 근거는 없다. 그만큼 지리산의 깊은 골에 들어섰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여기서 ‘오얏’이란 이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에는 이곳 지형을 외야골이라 표기해 놓았고, 일반 지도에는 오얏골로 나와 있다.

‘오얏’의 원 뜻은 자두이다. 자색계통의 붉은 보랏빛을 띄고 복숭아를 닮았다하여 자도紫桃라 했다가 자두로 변형되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 ‘오얏’의 순수한 우리말은 상당히 많은 이름을 뜻한다. 비근한 예로 살구, 배, 오이 등 과일과 외지다, 왼쪽이란 뜻의 위치, 그리고 까마귀, 기와라는 뜻이 함께 있다.

여기서 오얏이 자두나 살구를 칭하는 것은 아마도 두 나무의 원산이 중국이어서 우리나라로 전래되면서 비슷한 크기의 흔하지 않은 과일로서 혼용되지 않았나 싶고(지금의 자두는 개량종으로 재래종보다는 월등히 크다), 배는 원래 배골, 배나무골, 배내골 등의 우리말이 한문과 병행하면서 이李와 이梨가 같은 발음으로 혼용되어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쓰임은 마을의 생성과정이나 지역별 특수성 또는 변천과정에 따라 다르다.

오이는 예로부터 ‘외’라 했고, ‘외밭’은 옛말로는 ‘외’가 ‘ㅣ’로 끝나는 소리이니 ‘외받’, ‘외앋’으로 변형 되었다는 것이다.1)
또한 “외얀‘이란 뜻은 외지다는 고어이며, 왼쪽은 전라도 방언으로 ’오약‘, ’외약‘이라 불렀고 이것은 꼭 왼쪽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기준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마을에도 종종 이렇게 쓰이곤 했다.
그리고 흔하진 않지만 까마귀는 한글이 한문의 오야烏也로 이기되면서 변형된 것으로 보이며, 기와라는 뜻은 기와의 ’와瓦‘자가 ’오아‘에서 ‘오야·외야’ 등으로 전음되고 그에 사잇소리가 끼어 ‘오얏·외얏’으로 변형된 것이며, 한자어로는 ‘와동(瓦洞)’ ‘와곡(瓦谷)’으로 썼다. 2)


이 같이 비슷한 이름들이 우리나라에 쓰인 지명은 오얏골, 오얏말, 오얏재, 오야골, 외야골, 외얏골, 외얏, 오리골, 왼골 등이 주로 쓰였으며, 남한에만 이러한 지명은 약250여 곳이나 된다.

(계속)

- 구름모자 -


주) 1), 2)김준영 전북대 명예교수 『지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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