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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6.08.02 11:29

이곳은 지리산 맞다

조회 수 329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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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지리산 맞다(웅석봉~백운동)


‘백운’이란 흰구름이다. 대개 이러한 이름을 가진 곳은 산마루 정상이 보통이다. 그만큼 산이 높거나 신령스러운 기운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산마루가 아닌 계곡이 백운이다.

이러한 명칭을 가지고 있는 계곡은 우리나라에도 몇이 더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내설악에 백운폭포가 있는 백운동이요, 또 하나가 전라북도 진안군 덕태산 기슭에 있는 백운동이다. 둘 다 어디에다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빼어난 곳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그런 계곡이 지리산 기슭에도 있다. 그것도 오래전부터 선인들이 즐겨 찾아 시와 풍류를 즐겼다는 곳이니 여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곳은 아니다. 증명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동천洞天이라는 이름이요 다음이 바위에 새겨진 각자들이다.

‘~동천’이란 산으로 둘러싸인 물 맑고 경치가 빼어난 곳이요, 도교에서는 신선들이 사는 곳, 즉 이상향이라는 뜻이다. 지리산부근에도 화개동천, 악양동천이 있고, 우리나라 곳곳엔 가야산의 홍류동천, 두타산의 두타동천, 천축산의 불영동천 등이 있다.

각자로는 남명선생의 흔적인 ‘남명선생장구지소’(남명선생이 탁족을 즐길 때 지팡이와 나막신을 벗어 두었던 곳), 계곡의 아름다움을 새긴 용문동천, 백운동, 영남제일천석, 등천대 등이 있다.

다만 목욕을 하면 스스로 깨쳐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다지소(多知沼)를 비롯해, 청의소, 아함소, 장군소, 용소, 백운폭포, 탈속폭포, 용문폭포, 오담폭포, 수왕성폭포, 십오담폭포, 칠성폭포 등 수 많은 이름들이 있으나 우리 같은 나그네에게는 일일이 배려하지 않는다. 더 깊은 공부를 하라는 의미와 세상에 알려져 더럽히느니 아직은 조용히 남겨져 후대를 기약하려는 의미가 동시에 느껴진다.

계곡을 직접 오르려면 산청군 단성면에서 국도20호선을 타고 시천면 방향으로 가다가 칠정마을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되고, 내림길로 이용할 경우 이방산이나 수양산을 올랐다가 하산하는 방법, 그리고 밤머리재에서 웅석봉을 들렀다가 달뜨기능선을 타고 내와 닥바실골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된다.  



밤머리재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태극종주꾼들의 발길이 잦아 제법 많은 산꾼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새벽녘부터 부지런을 떨며 이른 아침을 들은 후 따가운 햇살이 넘어오기 전 자리를 턴다.

오름길은 언제나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머릿속에 있는 길인데도 왠지 억지로 걷는 발길처럼 걸음은 갈지자로 샘통을 부린다. 숨은 또 목을 차고, 이마를 흐르는 땀은 자꾸만 눈을 자극한다. 저길 왜? 오늘 아님 어때? 하면서도 마음은 늘 한 곳에만 있으니 그 것도 병은 병이다.

첫 번째 쉼터에 도착해서는 땀을 들인다. 그제서야 하늘이 보인다. 시원한 바람이 흐른다. 이상하다. 그 바람은 방금 내가 올랐던 길에도 불어왔는데 새삼스레 지금 느끼는 것일까? 사람의 심성은 참으로 묘한 것이다. 한 곳에 두고서도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천왕의 모습이 하늘 중간에 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난 후, 바다 저 멀리 아련하게 떠있는 섬처럼 신비감이 감추어져 있다.

말풀들이 자란 산길은 융단길이다. 어느 궁궐에서도 걸어보지 못할 양탄자이다. 싱그러울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빗질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실처럼 가는 잎새, 활처럼 부드러운 곡선, 잔잔한 미풍에도 화답하는 온화함, 거센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기품, 거친 대지를 덮어주는 포근함... 이 산은 정말 저 풀들이 아니었으면, 아니 오늘 이곳에서 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이 후줄근한 기운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웅석봉 정상을 오르기전 삼거리. 오늘 예정 길에 굳이 들를만한 이유가 없는 정상은 미련을 버리고 샘터에서 식수만 준비한 채 달뜨기능선으로 접어든다. 시야는 트이지 않았어도 시원스런 길이다. 수양산과 이방산을 나누는 삼거리까지 일직선으로 달리는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으아리가 함박 웃는다. 여린 넝쿨로 남에게 몸을 기대어 힘들게 기어올라 박약할 것 같으면서도 주먹만한 꽃을 달고 있는 걸 보면 산중의 삶을 즐기는 듯 보인다.




달뜨기능선에 핀 으아리꽃. 함박웃는 모습이 산을 즐기는 듯 보인다



이 길은 설렁설성 걸어도 된다. 웅석봉 정상이 해발 천백이고, 오늘 내림길의 분기점이 해발 9백을 조금 넘으니 길게 늘어선 달뜨기능선의 줄기 흐름은 거의 평지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게다가 백운동계곡을 다 한다해도 하루일정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조급한 마음도, 힘든 기운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고령토토취장 능선을 밟으려다 늪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냥 진행한다. 닥바실골 삼거리에는 훼손을 위한 또 다른 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연료용 기름통이 올라와 있고, 바닥엔 지저분한 넝마들이 널려있다.

백운동계곡 내림길은 금방이었다. 완만한 분지를 지나 졸졸거리는 계류를 따르면 이내 합류점이 나오고, 옛 인가터를 지나면 곧 임도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당분간은 계곡을 좌측에 두고 임도를 따라 나아가게 되는데 내내 그런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이곳 임도역시 임산물체취, 산불예방, 지역주민의 소득증대... 등을 운운하는 기능은 전혀 하고있지 못함이 분명하다. 오히려 기존의 훼손 외에 또 다른 훼손을 부체질하는 역할이 더 가까운 듯 보인다.

백운동 계곡의 진면목을 보려면 임도 상부, 처음 교량을 건너는 곳에서 우측 등산로로 접어들어야 한다.  등산로와 접하여 이어지는 계곡은 시작부터 선경으로 이어진다. 온전한 등산로를 따르면 중간에 계곡을 한 번 왕복하여 점촌마을까지 이어지지만, 그 아름다운 백운계곡을 소리로만 느낄 뿐이어서 직접 계곡을 타고 내려서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롭고 동천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계곡은 전반적으로 바닥이 넓고 백옥처럼 하얀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생각만 조금 달리하면 왜 이곳이 하늘의 흰구름이 아닌 계곡의 흰구름인지를 알 수 있다. 물은 넓게 흐르다 때론 모여서 한곳으로 길게 흐르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하늘을 날아올라 커다란 함지박으로 쏟아지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아직도 자리를 찾지 못한 거대한 바위덩이가 계류와 실갱이를 하며 물부채를 펼치고, 물도리에서는 마치 무인도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나무처럼 모진 삶을 이겨낸 나무들이 다리쉼을 하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선경이요, 어디에 있어도 마음 편안한 수채화다.





백운동계곡. 흰암반을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눈부시다




이 계곡을 내려오는 시간은 2시간 정도이다. 그런데 실제 내려오고 나면 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를 모른다. 그만큼 시원하고 후련한 기분이 계곡에 있는 내내 생각 속에 함께 있다.

지리산의 제일 끝자락, 한 몸에 나고서도 한때는 내놓은 자식처럼 천덕꾸러기취급을 받아왔던 웅석봉, 거기서도 다시 흘러 닿는 능선 끝머리, 이제는 더 이상 흐를 맥이 없는 그곳에서 하얀 구름으로 승화되어 흘러내리는 이 골짜기는 누가 뭐래도 지리산이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희고 깨끗한 정신과 기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 구름모자-

  • ?
    선경 2006.08.07 12:11
    하이얀 미소로 반겨주는 으아리꽃의 순백처럼~~~
    시원한 지리계곡의 물줄기다라 시원스레 산행기 보고갑니다
    늘 행복한산행되세요~~~
  • ?
    세영 2006.08.07 18:24
    산악잡지 기사보다 훨씬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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