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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골엔 어릿광대가 없다


광대(廣大)골, 원뜻은 너무도 뻔한 넓고 큰 골짜기란 뜻이다. 실재 이 계곡은 지리8경중 달 밝은 밤의 경치가 일품이라는 월야로 등록(비록 근세일 지라도)된 벽소봉을 축으로 덕평봉, 형제봉, 삼각고지 사이를 아우르는 큰 골짜기이고, 이름을 가진 비린내골, 우수청골, 생이바위골과 더불어 10여개의 크고 작은 골짜기가 모여 큰 내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이 골짜기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왔던 것은 군사정권시절 만들어진 군용도로 때문이다. 산모롱이를 도는 길이 구절양장 이어져 산길을 걷는 맛이 없을 뿐아니라, 한여름엔 시종일관 뙤약볕을 걸어야하고, 그나마도 인간의 편리를 위해 존재하는 인공적인 요소는 지루함만 더할 뿐이어서 긴급시 탈출로로 이용하는 사람 외에는 찾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던 곳이다. 그런 탓에 지리산의 한 중심부에 있으면서도 지리산의 느낌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지리산속의 외인지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이 골짜기가 등산인들에게 어필되기 시작한 건 뭐니뭐니 해도 지리산자연휴양림이 들어선 94년 이후이다. 비록 국립공원지역 밖이라 하나 원시림이 보전되어있고, 그 넓은 골짜기를 기반으로 다양한 산림문화휴양시설들이 들어서 있으니 찾는 이마다 칭송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산을 목적으로 하는 산꾼들보다는 아직 행락인파가 많아서인지 능선길 외엔 제대로 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에겐 더욱 다행스런 일이긴 해도...



이른 아침 찬 공기를 가르며 지리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선다. 행여 계절을 보내는 아쉬움이라도 들킬까봐 물소리가 조용하고, 주인 잃은 낙엽이 산기슭을 맴을 돈다.

소금장수길 입구인 백두대간 안내표지판 뒤쪽으로 몸을 숨긴다. 가뭄 탓인지 여린 물줄기를 흘리는 계곡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길이 나뉘는 삼거리에서 소금장수길과 좌측 비린내골을 나누는 능선을 확인한 후 우수청골로 올라선다.

우수청골은 정말로 하얀 옷을 즐겨입던 수수한 우리네 여인을 닮았다. 어디 하나 자랑거리 삼아 뽐낼만한 경치하나 갖추지 못하고, 그저 저 좁은 밭뙈기 몇 평, 저 산비탈에 일군 삿갓배미에도 정성을 들여 김을 매던 바로 얼마전 우리네 여인들의 모습이다.

골 안은 맺힌 한도 그 시름에 지쳐버린 듯 쇤소리를 하고 을씨년스런 나목만이 윙윙거린다.

일찍 찾아온 추위에 나뭇잎 이불을 쓰고 있는 듯한 널찍한 와폭에서 배낭을 풀어 다리쉼을 한다.

정말 이 골짜기는 찾는 사람이 없었다는게 맞는 표현인가보다. 인적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흔한 표지기도 하늘에 별따기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지난 가을 낙엽 이불을 씌고있는 우수청골. 원시적인 느낌이 가득하다


이 곳을 지나면 계곡은 완전한 원시상태다. 때로는 이런 곳이 걷기가 편하다. 머리 쓸 일없이 그냥 계곡을 고집하며 올라가면 그만이니까. 여느 계곡과 다르게 가로막힌 벽도 없고, 위험을 무릅쓸만한 지형도 보이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이 산중에 선행자가 없는 원시적인 계곡을 내가 처음 밟는다는 느낌은 고행을 감당할 만큼 이상의 뿌듯한 감정이 남는다.

너덜강 사이에서 겨우 겨우 들리던 물줄기도 어느새 끊어지고, 좌측에 터가 있는 듯보여 올라서 보지만 예전에 인간의 손길이 미쳤던 완전한 터는 아니다.

듬성듬성 바위지대가 보이고, 억센 숲을 피해 살아있는 너널강을 걷는 길은 숨소리도 크게 내면 않된다. 언제일지 모르는 복병들이 함정을 만들고 부비츄렙을 만들어 사람을 놀래킨다.

어느 순간 좌측으로 인적이 있는 듯 느껴져 위를 보니 계곡쪽은 벽지대이다. 고난은 예고하고 있지만 선택의 폭은 극히 좁다. 가능한한 오를 수 있는 바위는 직등하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산죽을 헤쳐야 한다.

마지막 한 파스, 지독한 산죽 숲을 뚫고 나오자 비로소 벽소령 도로이다. 한 두 개 눈발이 날리는 듯 하더니 곧 멈추고 멀리 형제봉이 뚜렷하다.

잠시 숨을 들인 후 비린내골을 찾아 나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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