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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는 구름을 타고(송대와 선녀동)


지리산에 들고자 산 아래 자리를 틀고서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핑계 삼아 굼뱅이처럼 침낭 속에서 뭉그적거리고만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악마와 천사가 싸움을 하고 있다. 이 비에 무슨 산을... 아니 이 사람아 여기까지 와서...

모처럼 만에 산에 들어 내 눈치만 보고 있는 산우들의 눈길이 애처로워 자리를 털고 일어난 시간이 10시, 산자락 한줄기라도 밟아 보기위해서는 서둘러야 할 시간이었다.



송대마을에 도착하니 비는 오는 듯 마는 듯 능개로 바뀌고, 구름이 하얀 성복을 입고 산 아래로 우리를 마중 나와 있다.

선녀굴을 거쳐 노장대에 오르면 그만이니 일정이 버겁지도 않고, 사방이 운무에 쌓여 조망이라고는 겨우 눈 앞 사물 분간하는 게 전부인 오늘은 선녀가 타고 다니는 구름에게나 길을 물어야지, 지도나 나침반은 그저 악세사리에 불과하다.

쉬엄쉬엄 산길을 오르며 두어 번 계곡을 건너면 주변에 듬성듬성 석축 흔적이 보인다. 전란 전엔 20여 가구가 살았다는 선녀동이라는 마을 흔적이다. 불과 반세기전, 아니 우리 부모님세대였는데도 바로 한 세대 뒤를 살고 있는 나의 상식으로는 저 척박한 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저 산비탈 절벽아래, 그것도 지천이 바위투성이인 좁은 골짜기 안에서, 들어난 돌들을 켜켜이 쌓아올려 손바닥만한 터를 만들고, 그 터를 일구어 호구지책이나 하며 사는 일이 전부였을 것이니, 저잣거리에서 과부 엉덩이나 주무르는 일은 어감생심, 선술집 상다리라도 두드리며 육자배기라도 뽑아보려는 생각 따위는 헛된 욕심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니 선녀라는 명칭은 더더욱 어울리지 않을 수밖에...

그러나 그들이 어떤 연유로 그곳을 들어왔든, 또 어떠한 방법으로 살아왔던 간에, 하루 종일 짙은 숲 그늘 속에 갖혀 끼니나 걱정해야하는 그들에게 사상은 무엇이고, 이념은 무엇이며, 전쟁은 왜 필요했겠는가? 그것은 다만 피 맛을 아는 맹수들의 먹이다툼에 굶주린 승냥이들의 제 밥그릇 쌈박질처럼 값없는 희생만이 있었을 뿐이다.

물소리가 멀어지고 본격적인 산길을 오르면 이제 막 익어가는 다래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구름알을 모아두었던 나뭇잎이 바람을 맞아 후두둑 후두둑 물방울을 흩뿌린다.

선녀굴.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녀굴, 그런 맑은 우물이 있는 선녀굴.

그러나 이미 시대적 타성에 물들어버린 내 사고는 음습함이 엄습해오고, 표정없는 마네킹마저도 낮설게 느껴진다.


이 땅의 마지막 빨치산, 망실공비, 남장여자, 여공비... 숱한 이름으로 회자되던 정순덕.

그러나 애초에 그녀는 빨치산이 아니었다. 아주 깊은 산골의 16살 순박한 시골 아낙에 불과했다. 십승지지를 찾아 나선 부친에 의해 내원골에서도 가장 깊숙한 안내원에 들어 신학문을 익힌 것이 없으니 좌우의 개념이나 이데올로기 철학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까지 사상적 무장이 남아있게 했던 것은 남편 성석조였다. 좌와 우, 둘 밖에 없는 선택에서 어쩔 수 없이 좌를 선택한 17살의 성석조, 그를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간 16살의 새색시 정순덕, 그러나 그 만남은 20일의 짧은 인연으로 끝나고...

숱한 고비와 사라져가는 동료들을 보며 그녀는 어떤 생각으로 산속을 떠돌았을까? 함께했던 주변 빨치산이 괴멸되고 모든 꿈이 사라져간 그 시간에도 투쟁의 그림자만이 몸 속 가득 베어있던 고독한 싸움은 진정한 조국통일이었을까? 못다 핀 젊음의 한이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검부락지 같은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도 기댈 산은 있었다. 언제나 포근한 지리산은 있었다.


증언에 의하면 선녀굴은 한때 정순덕과 그 일행이 숨어 지내던 곳이다. 휴전 후 파르티잔의 소탕이 1955년 공식적으로 마무리되고, 잔당 몇몇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도 다음해인 56년 마무리된다. 그러나 정순덕은 그 후로도 일곱 번의 겨울을 더 지리산에서 난다. 이들이 발각된 건 아주 우연이었다. 당시 마천지서의 사찰경찰(지역방위와 빨치산 잔당 소탕을 위한 임시 경찰)이었던 문영만과 지동식이 무료함을 달래려고 몰이꾼 허정갑과 사냥개를 데리고 곰 사냥을 나섰다가 사냥개에 의하여 발견되었던 것이다. 피아의 총격전이 있고난 후 빨치산의 사살을 목격하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하산했다가 다음날 제자리에 가보니 불에 그을린 개의 시체만 보이고 파르티잔은 보이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포상금을 노리고 수선을 떤 모양새로 몰려 한 편의 헤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던 그 사건은 다시 한번 겨울이 지난 다음해 11월, 내원골에서 마지막 빨치산인 이홍이가 사살되고 정순덕이 대퇴부에 관통상을 입고 생포되면서 전모가 드러난다. 당시 사살된 자는 이은조였고, 그들이 내려가자 둘은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이은조를 땅에 묻고, 개를 불지른 후 황급히 그곳을 떠났던 것이다.

(계속)

-구름모자-

  • ?
    김용규 2005.09.16 08:49
    선녀굴

    이끼낀 큰 바위는 하늘 향해 쭈욱 뻗고
    다래순 엉킨 덩굴 원시 닮아 신비로운데
    산허리 감긴 안개에 성모천왕 혼이인다

    산야를 누빈 여인 정순덕의 흔적 사글고
    빨치산 슬픈 사연 세월 아래 잔영되어
    산사의 목탁울림에 메아리로 목이메어라

    미움이 더 그리워 혼백이 된 주검이여
    응어리진 그 상처 이제 그만 쓰다듬고
    고옵게 진한 향불로 선녀의 혼 피우소서

    * 선녀굴과 가까운곳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름답고 세세한 필체의 구름모자님의 글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다음 글이 기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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