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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5.03.14 11:19

'오얏'은 자두인가? -2

조회 수 2127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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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오얏’이 삼국시대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왔던 과일인데도 원 뜻인 자두나무가 많아서 붙졌다는 지명유래 전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오히려 살구나무나 배나무에 관한 지명유래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이한 사항 하나는 이러한 계통의 지명 중 가장 많은 것이 배도, 살구도 아닌 기와를 굽던 마을이 있는 곳에서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달궁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달궁은 마한의 별궁으로 71년간 통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황장군과 정장군의 전설이 있는 황령치, 정령치, 3성이 지켰다는 성삼재, 8장수가 지켰다는 팔랑치가 있는 곳이다. 궁터에는 지금도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고, 덕德동이 바로 당시 왕이 덕을 베풀던 장소라는 전설이 있으며, 달궁과는 지척이다.

그러면 궁궐을 짓는데 기와는 필수였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곳 오얏골도 기와와 관련된 것은 아닐까? 그러면 혹시 와운마을도...

그러나 이러한 환상은 그곳에 터잡고 계시는 김병식 할아버지에게서 여지없이 깨진다. 그분 말씀은 배꽃이 피는 마을이란 뜻의 이화동(梨花洞)이라 한다. 역시 이곳도 자두는 아니었다.


마을을 가로질러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사실상 오얏골 본류를 처음 만나는데 마을 상수원을 취수하는 조그만 콘크리트보가 하나 놓여있다.

어차피 이곳에 들었으니 발자욱이야 생기겠지만 혹시 모를 티끌하나라도 남기지 않기 위하여 마음부터 추스른다.

길은 골짜기를 따라 너덜강 사이로 놓여있지만 눈이 깊어 허방을 짓는 일이 많아 깜짝깜짝 놀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듬성듬성이라도 사람흔적을 표시해 놓은 표지기가 훌륭한 이정표 구실을 한다.

길은 계곡을 한번 우측으로 건넌 후 줄곧 계곡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 있어 설령 길 흔적을 놓쳤다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물론 눈이 없었다면 선행자의 흔적을 찾아 오르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만도 아닐 듯싶다.

마지막 된비알을 싸리 줄기를 잡고 올라서면 서북릉상 세걸산에서 정령치방향으로 첫 번째 봉우리가 바로 코앞인 마루금이다.

지도를 놓아보니 아마도 덕동이나 오얏마을 사람들이 운봉장을 보러 다녔다던 정각재는 그 너머에 있는 듯 하다.

드문드문 터지는 햇살 사이로 바라보이는 지리산 원경이 오늘따라 신비할 정도로 가깝게 보인다.
반야봉이 바로 코앞이고, 상정산 능선 너머로 천왕의 세봉우리가 뚜렷하다. 내가 서있는 능선에서는 북으로는 끝을 알리는 바래봉의 초지가 완연하고, 남으로는 만복대의 정수리가 하얀 눈을 쓰고 있다.


서북주능의 북쪽 모습. 멀리 철쭉군락지의 초원과 바래봉이 확연히 나타난다


서북주능의 남쪽모습, 만복대 정수리가 하얗고, 허리를 가로지른 정령치도로가 상흔같아 안스럽다


삼정산능선 너머로 보이는 천왕봉. 웅장함의 대명사다


여기서 하산 방법은 다양하다. 바로 옆에 있는 무명봉에서 지능선으로 내리는 길이 하나 보이고, 세걸산에서 세걸능선이나, 세동치에서 반선 또는 그 반대편의 전북학생교육원으로 하산할 수도 있고, 시간이 남으면 부운치나 바래봉을 연결해도 된다.

만복대 방향은 언양골에서 달궁으로 내려설 수 있고, 정령치에서 짧은 마감을 할 수도 있다.


문득 오늘 산행중 떠오른 고사성어가 하나 생각났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이 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이다.

최근 나랏님도 절대적으로 신임하여 삼고초려 했다는 국가 요직에 계시는 한 분이 갓끈 한번 잘못 고쳤다가 여론에 밀려 결국 그 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세상은 직접 보는 눈, 직접 듣는 귀보다, 보이지 않는 눈, 들리지 않는 귀가 더 무섭다는 걸 일깨워준 교훈 이었다. 숨김에는 영원한 비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른 골짜기는 ‘오얏’없는 오얏골 이었다. 다시 말해 신을 고쳐 신고, 갓을 고쳐 써도 누구하나 의심할 사람 없고, 소문낼 사람 없는 그런 곳이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백옥처럼 하얀 은백의 골짜기에 내가 찍는 발자욱이 부끄러움을 느낄만큼 조용한 하루였다.

그때서야 그들이 왜 이곳으로 들어왔는지가 어렴풋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아마도 그들은 남들에게 쫒겨 온 게 아니라, 싸우고 모함하고 의심하고 질투하는 그 혼탁한 세상을 벗어나 스스로 마음을 씻어내려 이곳에 들지 않았나 하고 말이다.


- 구름모자 -



  • ?
    허허바다 2005.03.15 00:23
    저길을 마음 속으로 다시 느껴 봅니다...
    차거움이 제격인 저곳.
    잔잔한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 ?
    선경 2005.03.15 11:53
    닉네임 구름모자처럼 ...
    하이얀산길 끝닿은 빨간모자가 상큼하군요
    의미깊은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겨울이 다하는 계절과 함께요
  • ?
    lithium polymer 2009.06.2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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