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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주고 싶지 않은 이름 선유동 - 3


상불은 문자 그대로 윗 부처이다. 그렇다면 가운데 부처와 아랫 부처도 있게 마련이다. 세 부처가 있다는 골짜기는 상불재에서 불일폭포로 내려가는 내원골 일대를 이르는 말이다. 전하는 바로 상불재 부근을 상불이라 한다는 걸보면 상불재와 내원재 사이에 있는 봉우리, 즉 관음봉을 이르는 말인 듯 하고, 불일폭포 주변이 하불, 그리고 그 가운데를 중불이라 전한다.

명칭의 의미가 말해 주듯이 골짜기는 지리산에 몇 안 되는 명당이다. 그런 연유에서였는지 내원골 안은 원래 십여 가구의 민가가 있었다 하나 6.25동란으로 소개 된 후 수도자가 들어오면서 부처마을이 되었다는 것인데 근자에 회자되는 예기로는 득도나 깨침을 얻은 이들의 예기보다는 양기가 너무 세어 주체하지 못하였다는 사이비 종교와 같은 이야기만 전한다. 아무래도 든 자들의 침묵과 빈 자들의 웅변 차이가 아닌가 한다.

이종길님의 「지리산」에 서옥계 할머니에게서 채록된 ‘화개타령’을 보면 “미륵쟁이 독부채는 후후 천세를 통하고, 그 산 경치 다 보아도 상불, 하불이 명지로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 부근이 명당임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노래로 외관적인 편견으로는 좁고 어설픈 듯한 계곡처럼 보이지만, 하불부근 즉 불일폭포주변만 들어서도 이 계곡이 범상치 않음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더구나 불가에서 내원內院이란 도솔천兜率天 안의 칠보로 이루어진 궁으로 이곳에는 미륵보살님이 머물면서 남섬부주에 하강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불교와 미륵신앙과는 다른 듯 보이지만은 내원의 원래 자리는 석가모니가 태어나기 전에 머물렀다는 곳이므로 굳이 따지자면 종속관계이나, 불교의 폐혜가 나타나고 내세불교도 미흡하던 시절에 새로운 천신을 요구하던 민초들에게 같은 맥락의 인물과 이상세계의 극락정토를 만들어낸 것이니 마찰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융화가 이루어진 민초들의 마음속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골짜기라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수행자, 수도자의 골짜기가 맞을 성 싶다.



관음봉에서 바라본 내원골, 좌측지능의 주름을 보면 얼마나 많은 기를 함축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삼성궁 내림길과 갈리는 상불재를 지나면 입장료 값이라도 다 했다는 듯 등산로의 폭이 현격하게 줄어든다. 관음봉까지는 산죽이 키가 높고 때론 깊은 숲을 헤쳐 나가야 하지만 정수리에 서면 때때로 먼 경치를 내주곤하여 짜증 섞인 길만은 아니다.

내원재에 도착하면 우측으로 산길이 급하게 꺾인다. 이 산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처음엔 급경사, 그다음엔 너덜길이다. 계절도 계절이지만 생각보다는 인적이 확실하여 더덜강 위라도 인적을 찾을 수 있는 게 다행이다. 이런 길은 상불재에서 내리는 지계곡이 합수되는 지점을 만나면서 평온을 되찾고, 계곡다운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합수점을 지나 얼마가지 않으면 옛 인가 터가 나타나고, 계곡을 건너면 대나무 울타리가 엮인 선방이 보인다. 석양의 선방은 너무 고즈녘하여 계곡물소리가 아니면 깊은 산중 동굴 속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이곳을 막 벗어나면 우측으로 형이상학인 지능이 보이는데 바로 남명 조식선생이 예기하던 만길 낭떨어지의 비로봉이자 청학이 놀던 곳이다. 바로 이 봉우리와 혜일봉 능선이 끝나는 지점이 불일폭포에서 내리는 골짜기로 입구부터가 너무 좁아 사람 하나 들어가기도 어려울 듯 보인다. 그 골짜기 안에 최치원이 말년공부를 하고 신선이 되었다는 옥천대가 숨어있다.

예서는 널찍한 길을 따라 쌍계사 까지 나올 수 있다.



옥천대가 숨어있는 불일폭포계곡, 사람 하나 들어갈 틈새가 없는 듯 보이는 협곡이다.



이상향, 청학동, 무릉도원, 피안, 극락정토, 도솔천, 유토피아, 파라다이스....

이들의 공통점은 난세이거나, 불안하거나, 스스로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거나, 새로운 자각의 불가사의한 힘을 빌리고자 할 때 나타나는 용어들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살이가 편안하고, 즐겁고, 서로 이해하고, 희생하며, 나보다 남을 더, 개인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아는 시절에는 외세外世는 꿈꿀 필요조차 없는 허황한 곳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금 난 어느 곳을 찾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 구름모자 -  



[참고문헌]
지리산  수문출판사  이종길
지리산에가련다  도서출판 한울  김양식
선인들의지리산유람록  도서출판 돌베게  최석기외


  • ?
    슬기난 2006.02.22 19:55
    쌍계사 스님들의 눈을 피해 오르던 내원골, 지천으로 널려있던
    두릅나무밭이 눈에 선합니다.
    지나는 발길마다 소상히 내력을 밝혀가며 산행하시는 모습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뜀뛰기가 주특기인지라 많은 배움 감사드립니다.
  • ?
    선경 2006.02.26 10:12
    지리산행의 철학이 담긴 내적산행도 같이하시는
    구름모자님따라,,,,지금 나또한 어느곳을 찾고 있는지
    다시금 되돌아봅니다
  • ?
    섬호정 2006.03.01 16:42
    쌍계사에서 기도 참배 중, 불일폭포를 홀로 오르다 협곡 문전에서(바로 저 곳?...), 길도 없는 듯해,산죽 속을 흐르는 맑은 물에 주저 앉아 물 수행만 하고 되돌아 온 40 代 일이 떠올라 ,
    늘 불일 폭포에겐 참회하는 마음입니다. 좋은 글 읽으며 다시 그 곳 오를 일 꿈꿉니다.Annapolis 에서 합장

  • ?
    김현거사 2006.03.04 05:47
    이 글 읽으며 이번 봄에는 꼭 이곳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글이 너무 잘 써졌군요.
    전에도 이 싸이트 최화수님 글 읽고 달빛초당에 갔던 일 생각납니다.
    그 덕에 김필곤 시인을 알았고,

  1. No Image notice by 운영자 2002/05/22 by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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