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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2 12:48

박달내와 삼신산 - 2

조회 수 2157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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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내와 삼신산


단천골은 화개동천에서도 비교적 작은 계곡에 속한다. 여기서 작다함은 주능에 기대지 못하고 해발 천이백인 삼신봉을 주산으로 하여 시작하는 골짜기이고, 물을 모이는 폭도 그리 크지 않다는 예기에 불과할 뿐, 계곡의 규모나 멋스러움, 예스러움이 떨어진다는 예기는 아니다.

찾아가는 입구는 화계에서 의신방면으로 오르면 연동골 올라가는 삼거리 바로 위에서 옛 신흥사가 있었던 왕성초교를 만난다. 이곳에서 몇 개의 급커브를 꺾으면 곧 화개동천에 걸려있는 교량을 하나 건너게 된다. 여기서 동쪽으로 첫 번째 만나는 계곡이 선유동 입구이고, 두 번째 만나는 계곡이 단천골이다.

단천마을은 단천골 위에 놓인 단천교를 건너 조금 나아가다 우측으로 보이는 좁은 통로로 들어서야 한다. 마을까지는 오리 남짓 되고 콘크리트포장이 되어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차량으로 쉽게 통과하는 탓에 계곡 하류부에 있는 도깨비소, 독아지소, 종재기소하는 정감 넘치는 경치를 그냥 지나치게 된다는 것이다.

단천마을에 들어서면 이 좁은 골에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있나 싶었던 조금 전 분위기는 순간 사라지고, 왠지 모를 풍요로움과 정감이 느껴진다. 해발 오백정도의 산기슭에 앉자있는 모양새가 우선 따뜻한 양지녘이고, 전면은 툭 터져 시원한 느낌이 드는 한편, 계곡은 무언가 깊은 비밀을 안고 있는 듯 마을 저 아래쪽에서 꺾인 계곡 안으로 깊숙이 숨어들어가 신령스런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다.

원래 이 골짜기는 덕산장을 넘나들던 사람들의 통로였으니 지금의 박단샘 부근으로 오르는 길이 정석이었겠으나 지금은 거의 묵어있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삼신봉 정상 바로 아래쪽으로 오르는 길이 더 확실하게 열려있다. 그러나 오늘 목적지는 그도 저도 아닌 용추폭포가 있는 골짜기였다.

단천골 오름길은 마을 앞 대숲 사이로 오르는 길과 마을 못 미쳐 우측 계곡 건너에 있는 농로를 이용해 나가는 길이 있는데 우린 후자를 택했다.

계곡엔 잠수교가 놓여 있다. 계곡 건너에 있는 경작지를 가는 농로이다. 이 농로 끝 지점을 통과하여 나아가면 밤나무와 드릅나무가 심어진 묵정밭이 나타나고, 길은 이 묵정밭과 산비탈로 이어진다. 먹을 것마저 궁핍했던 시절, 돌투성이뿐인 산비탈을 골라 만들어냈던 저 다랭이 밭도 한때는 소중한 재산이었겠지만 이제는 일굴 능력도 지을 의미마저도 없어진지 오래인 듯 보인다. 그것이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모를 일이긴 하지만...

묵정밭이 없어진 듯하다 다시 나타나면 우측으로 조그만 지곡이 하나 내려오고, 바위 위에 조그만 케른이 보인다. 단천마을 앞에서 오면 처음 계곡을 건너게 되면서 만나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 곳을 막 벗어나면 우측에 계곡이 하나 갈린다. 바로 용추폭포골이 시작되는 곳이다.

용추폭포는 이곳에서 약 100여 미터, 어제 잠깐 내린 비의 영향도 있겠지만 오늘도 날씨는 여전하여 계곡의 바위들은 기름이라도 바른 듯 미끄럽다. 벌써 몇 번째 넘어지는 소리가 일행들 틈에서 들린다.

용추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 상당히 많은 분포를 보이는 귀한 용어이면서도 흔한 이름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유독 지리산에서만은 그 이름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내가 아는 용추폭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강원도 동해 두타산과 경상남도 함양 기백산에 있는 용추폭포이다. 모두 다 비상하는 물줄기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소가 폭포의 정석을 보여주는 수작들이다.

그런데 이 골짜기의 폭포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우선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과 깊은 산중을 연상시키는 주변 풍경, 그리고 지리산만이 가질 수 있는 정감이 잔뜩 베어있다. 게다가 오늘은 물줄기가 얼어 두 개의 기둥이 벽에 매달려 있다. 오늘 같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유일한 풍경이다.



용추폭포. 가뭄인 탓에 수량은 적었지만 그 위용을 느끼기엔 충분한 모습이다.


길은 계곡을 우측에 두고 산죽 속으로 나있다. 의외로 족적은 뚜렷한 편이다. 조금 후 갈림길, 지형을 보니 좌측 조그만 지능의 바위를 돌아가는 길이다. 망설이다 계곡의 경치가 궁금하여 아래쪽으로 내려선다.

그러나 그 길은 완전치 못한 길이었다. 바위가 미끄럽기도 하였지만 길마저도 희미하여 억지로 뚫어야 했다. 계곡을 한번 건너고 너덜지대와 덩굴 숲을 헤치고 나가자 전면에 거대한 암반군이 보인다. 계곡은 지금까지의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치 아름다웠고 첫 번째 지계곡이 갈리는 지점이었다.

계곡을 빠져나와 제 길로 올라선다. 얼마 후 관리가 허술한 묘지를 하나 만나고, 미로같은 산죽 속을 헤쳐나가면 두 번째 지계곡이 갈리는 지점이 나온다. 여기서 산길은 두 계곡의 중간에 있는 작은 지능을 올라서게 된다.

너덜이 끝나면 오래된 인가 터가 보인다.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라도 보여주는 양 깨진 사기조각이 낙엽을 비집고 내다보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고된 된비알이다. 어디 한 발자국이라도 새어나갈 틈이 없는 외길이다. 아니 그냥 외길이 아니라 지금 걷고 있는 발 밑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해볼 수조차 없는 위험지대이다. 때론 바위모퉁이를 돌기도 하고, 그 바위를 직접 넘어가야하며, 그도 저도 아니면 부근에 있는 나뭇가지라도 잡고 시름을 해야지만 올라설 수 있는 길이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구름이 아래에 깔려있다. 아니 아래뿐만이 아니라 위쪽에도 덮여있다. 아래에서 밀려오는 구름, 그리고 위에서 내려오는 구름, 포위망을 좁혀오 듯 어느 순간 우린 산과 구름에 갇혀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에도 마음을 다스리는 건 자연에 순응하며 길을 내어주고, 때론 알몸으로 우리에게 몸을 맡기는 저 비탈의 나무에게서 무욕을 털어낸 삶의 역정을 배울 따름이다.

눈이 내린다. 처음엔 싸락눈인 듯 하더니 이내 습설로 바뀐다. 비록 그 양이 많지 않더라도 지금 이 산죽 밭의 눈은 고생길이 두 배이다.

경사는 조금도 수그러들 줄 모르고, 하나둘 흩뿌리는 눈, 줄창 넘어오는 바람, 옷깃을 스치는 산죽, 이럴 땐 아무 생각도 없이 걸어야 한다. 귀찮다고 짜증을 낸다든지, 피해보고자 억지를 쓴다든지, 어떤 요행수라도 써보려고 만용을 부리는 건 수고로움만 더할 뿐이다. 그저 찬찬히 내어주는 선답자의 흔적을 따라 오르고 또 오르면 그만이다.

절벽아래 비박 터가 하나 보인다. 무슨 연유였는지는 모르지만 꽤나 궁박한 상황에서 급조한 듯한 느낌이 묻어난다. 이 곳을 올라서면 비로소 경사는 약간 누그러진다. 그러나 그 위험도가 다 끝난 건 아니다. 아직도 수시로 바위가 앞을 막고, 산죽밭에 내린 눈은 옷을 적신다.

능선을 나아가면 전망 좋은 바위가 앞을 막고 그 우측을 돌아내려서면 깊은 산죽 밭이다. 곧 나타날 것만 같던 남부주능은 예서도 한참이다.

바람이 넘나드는 소리가 제법 위압감이 느껴질 즈음 널다랗게 산죽을 베어낸 공터가 나타나고, 예서도 20여분을 더 차고 나와서야 남부능을 만난다.

삼신봉에서 오는 사람들이 흠뻑 젖은 우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쳐다본다. 서둘러 재무장을 하고 앞 시간을 계산해보니 이미 해지기전 하산은 어려울 것 같았다.

이 길은 아무리 계절이 좋아도 내림길은 추천하고 싶지 않은 길 아닌 길이었다.


바람이 요동을 치는 구름 속에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뒷사람을 기다리다 문득, 오늘은 어느 수수께끼가 가득한 깊은 골짜기를 들어갔다가 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마도 저 골짜기에 숨겨진 최흥명의 천명을 중흥시킬 비밀은 쉽게 밝혀지지 않을 듯싶어 보였다.


- 구름모자 -

  • ?
    섬호정 2006.02.09 17:02
    구름모자님! 용추골 얼음기둥 사진 까지 올려주신 글에...
    수수께끼 같은 골짜기를 함께 헤매며 읽다가
    네거리의 적색신호등을 만나 잠시 쉬는 환한 기분입니다
    힘든 계곡길을 헤치며 쓰신 글을 참으로 잘 읽습니다
    고맙습니다



  • ?
    섬호정 2006.02.09 17:13
    위 아래에서 좁혀오는 ~'산과 구름에 갇혀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그 순간에도 마음을 다스리는 건 자연에 순응하며 길을 내어주고, 때론 알몸으로 우리에게 몸을 맡기는 저 비탈의 나무에게서 무욕을 털어낸 삶의 역정을 배울 따름이다.'대목으로
    험난한 길에서도 한 마음을 다스리는 여유를 깊이 배웁니다.

    신선하고 유익한 산행기에서 무욕의 삶 한 역정 을 다짐하는
    날이 됩니다. Annapolis 에서 gkqwkd
  • ?
    섬호정 2006.02.09 17:14
    다음 글을 기대하며 건필하시옵길 빕니니다

  1. No Image notice by 운영자 2002/05/22 by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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