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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를 오르는 길은 제법 험난하다.

우측에 보조자일이 묶여있긴 하지만 손에 땀 꽤나 쥐고나야 올라설 수 있다.
이후 얼마간은 다시 평이한 모습을 보이다가 또 하나의 폭포를 만난다.
규모는 이전 폭포보다 다소 적지만 모양은 훨씬 더 준수하다. 전면이 툭 터져있어 바라보는 이에게 시원스러움을 줄 뿐아니라 제법 너른 소를 하나 만들어 놓고 있어 폭포로서의 구색은 다 갖춘 셈이다.



얼음쐐기골 상류의 폭포. 이름도 없는 폭포지만 폭포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다 갖추었다.



이 폭포를 지나면 합수부가 나타나고 단아한 터가 하나 보인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왜정시대 산감 다끼의 표고막터라는 곳인데 이 터의 원주인은 다끼가 아닌 듯 하다.
왜냐하면 그 곳엔 오래된 기와파편이 보이기 때문이다.
표고막터에 굳이 기와를 얹은 집이 필요할리도 없거니와 다끼의 집은 명선봉에서 토끼봉방향으로 총각샘을 못미친 지점 1,542봉에서 흘러내리는 능선과 지능선 사이 안부 1,050m 지점에 그 터가 남아있으니 말이다.

다만 석축을 쌓는 기술이나 상태로 유추해 보면 다끼의 손이 가지 않았나 싶다.
우리의 고전적인 방식은 향교나 큰 서원, 사찰, 성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마름돌쌓기 형식의 켜쌓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반해 마름모 형식의 골쌓기는 그들이 쌓는 방식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곳은 무명암자 터였던 표고막터가 맞을 듯 싶다.


이곳은 왜정시대 오시마와 다끼가 산림감시를 위하여 말을 타고 다녔다는 산길이 와운마을에서부터 이어져있다.
이곳이 동경제국대학연습림이었으니 감시하는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기분 나쁜 일임에는 분명하다.
남의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품새 좋은 재목을 골라 표고를 기르고 지들 나라로 가져갔으니 감시는 곧 수탈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게다가 사냥개와 함께 말을 타고 총을 차고 다녔다는 모습을 상상하면 넉넉지 않은 산골살림에 제 할일 제쳐두고 억울한 품을 팔아야 했던 민초들의 고생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최근에야 세상에 노출된 와운능 중허리길은 와운마을 통나무산장(천년송 계단 앞)을 건너면서부터 시작되지만 초입부에서 뱀사골 본류가 있는 능선을 돌아기 전까지는 옛길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모퉁이를 도는 어느 순간 걸음이 길 위에 있다.
오시마 집터를 만나기 전 잠시 뱀사골 등산로를 만나는 지점 말고는 중허리길을 걷는 내내 그런 식이었다.
왜냐하면 60여년을 묵혀놓은 길이 돌로 정비해둔 길은 형태가 아직 남아있지만 토사로 형성된 지역은 사태가 졌거나, 아니면 잡목과 산죽이 우거어서 그 길 위를 걸으면서도 긴가민가를 반복해야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시 말타고 지나다니기 어려운 너덜강이나 바윗길은 돌로 정비를 해둔 반면 토사 길은 열어놓기만 했던터라 세월이 흐르면서 길 상태가 역전된 것이었다.



표고막터의 석축과 기와파편. 왜인의 기술이 가미된 돌쌓기이며, 다끼가 살기전 무명암자 터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끼의 표고막터까지는 물길을 건너는 세 개의 골짜기를 돌 때마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능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다.

다끼 집터는 표고막터에서 우측 계곡을 건너 산사면으로 고도 없이 이어져 있다.
현장에서 보면 확연하지만 지도상으로도 1,542봉에서 흘러내린 능선과 어느 결에 생겨난 지능을 사이에 두고 아늑한 지점에 숨겨져 있다.
깊은 산중치고는 상당히 너른 터이지만 해발이 높아 사람들이 터 잡고 들어와 살기는 적당치 않아 보인다.
표고를 재배했다는 다끼 역시 수확 철이 끝나는 겨울엔 동네에 내려와서 살았을 듯 싶다.

여기서 내림길이 뱀사골이라면 다끼 집터에서 작은 계곡을 따라 얼음쐐기골 중단부로 내려설 수도 있고, 지능선 너머 산태골로 내려설 수도 있다.
물론 지능선을 따라가면 B급상태의 길이 산죽밭 사이로 열려있어 뱀사골 본류를 만나는 능선 끝머리 절벽에서 우측 얼음골 초입부로 내려서면 그 옛날 산판도로 흔적이 계곡 건너에 있다.


또 하나 집고 넘어가야할 것이 빨치산 사령부터다.

이태(본명 이우태)의 남부군을 보면 거림골에 있는 환자트에서 제2의 선요원을 따라 남부군 본대를 찾아 나선다.


「명선봉부근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지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얼마를 가자니까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숲이 우거진 은은한 골짜기가 나타났다.
전북 남원군에 속한 배암사골이라는 깊고 아름다운 골짜기였다.
계곡을 따라 얼마를 내려가니 산죽을 덮은 초막 하나가 바른편 숲속에 보였다.
그것은 전북도당 사령부가 초소로 쓰던 초막이었다. 전북사령부는 언제부터인가 그 계류 맞은 편 사면에 아지트를 잡고 옮겨와 있었다. (중략)

나는 5개월 만에 백운산에서 헤어진 전북사령부를 다시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가슴을 설레이며 시냇물을 건너 잡목 숲을 얼만큼 오르니 꽤 급한 사면에 지붕 없는 노천트가 층층이 들어서 있고 낯익은 사람들의 얼굴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하략)」


다시 해석해 보면 두 사람은 명선봉 부근에서 지능선을 타고 내려와 뱀사골 본류를 만나고, 다시 얼마 후 전북유격대사령부 초소를 만난다.
그 계곡을 건너 잡목 숲을 얼마쯤 오르니 지붕 없는 노천트가 층층이 들어서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단심폭포 부근에 전북유격대사령부가 있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내려오면서 바른편, 즉 오르쪽에 있는 전북도당사령부 초소를 만나 계곡을 건넜으니 얼음쐐기골로 들어선 것까지는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을 표현한 ‘얼만큼’의 관념적 표현과 ‘꽤 급한 사면에 층층이 들어선 노천 트’가 논쟁의 요소인 듯 하다.
다끼의 집터로 보아 ‘얼만큼의 거리’와 ‘층층이’ 들어선 트는 맞는 듯 보인다.
다만 급사면의 표현인데 ‘층층이’의 또다른 표현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전북도당 총사령부였으니 상당히 너른 터였을 것이고, 그 정도를 수용할 만한 장소라면 현재까지 이 부근에서 발견된 ‘층층이 들어선 터’가 이 곳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은 능선상에 노출된 장소가 아니라 명선북능과 얼음골로 흘러내리는 작은 지능 사이의 안부여서 은폐 엄폐가 가능한 곳이었다.

물론 확실한 장소가 나오기 전까지의 가정이긴 하지만...


표고막터가 있는 합수부에서 우측 지계곡은 꽤 험한 계곡을 따라 명선봉 옆 주능선으로 올라서게 된다.
좌측 지계곡은 또다시 둘로 나뉘어 와운능(명선북능)으로 올라서는데 하나는 명선봉 아래 헬리포트로 올라서고, 또하나는 1,436봉우리 안부로 올라선다. 최근에 지리꾼들이 밟았던 흔적을 제외하면 모두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이고, 너덜강과 잡목 그리고 상부에서는 산죽과 한바탕 씨름을 해야 한다.

와운능에서는 와운마을로 내려가는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
다만 876봉우리 안부에서 와운계곡으로 내려서도 되지만 능선을 계속 차고 내려갈 경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짧은 길이지만 길이 점점 희미해져 방향을 잃게 되면 뱀사골에 있는 반야교 전으로 내려서게 되고, 아니면 와운마을 진입부 사태난 지점 옆으로 내려서게 된다.
또한 와운능에서 명선봉을 거쳐 주능으로 들었다면 내림길은 더욱 다양하다.
귀로를 북사면으로 택했다면 화개재에서 뱀사골을 택하거나, 연하천을 거쳐 양정마을로 내려서면 되고, 남쪽으로 택했다면 명선남능이나 절골로 해서 삼정마을로 내려서면 된다.


얼음골의 느낌은 그렇다.

아직도 꽁꽁 얼어붙은 냉기가 풀리지 않은 듯 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마저도 풀리지 않는 오뉴월에 석빙고 같았다.


-  구름모자 -

  • ?
    moveon 2010.09.18 09:33
    내내 기다리다 읽는 기록.. 기다리는 만큼 재미가 있군요. . 폭포위 산꾼들의 모습이 폭포를 더욱 아름답게 여기게 합니다. "냉기가 풀리지 않은 듯.. 하고 싶은 이야기마저도 풀리지 않는 . . " 멋진 표현 내내 읊조리면서 다음 산행기도 기다려 봅니다.
  • ?
    선경 2010.09.21 23:26
    해박하시고 상세하신 산행기속으로 빠져들어가는
    행복한시간입니다
    저도 진원님과 함께 다음편을 기다려봅니다^^*
    감사드립니다 구름모자님~~
  • ?
    끼득이 2010.09.30 09:33
    맨위의 사람이 이만한 크기라면 이 얼음골 폭포의 크기는 참으로 웅장할 듯 싶습니다.
    '냉기가 풀리지 않는 오뉴월의 석빙고' 같은 얼음골엔
    이름없이 숨져간 많은 이들의 한이 서려있는 건 아닐런지요?

    옛문헌을 기초로 길도 없는 길을 찾아나서며 퍼즐을 맞춰나가는
    구름모자님의 글은
    한편의 소설을 읽는 듯 푸욱 빠져버리고 맙니다.^^
    일교차가 심한 요즈음 감기조심하시고요.

    그쪽 전주의 '세계소리축제'인가 큰 행사가 있던데,
    그때문에 더 떠들썩하지는 않는지요?
    새로운달 시월,,
    말을 살찌우듯 몸과맘을 살찌우는 한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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