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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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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풍요속에 요즘 입맛과 옛날의 입맛이 완전히 달라진 듯 하다.

나이의 탓도 있으려니와 현재의 환경으로 인한 여러가지 접하는 음식 문화 때문에 확실히 옛날과는 입맛이 달라진것 같다.

당시엔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가난하고 물질의 풍요가 요즘과는 아주 달랐던 시기였기에 누구에게나 그리움같은 추억거리가 있으리라. 그 중에서도 먹는 것에 관한 추억거리가 더 많았던 기억은 당시엔 충분치 못했던 환경 때문에 먹는 기본욕구의 불만족이 풍요속의 환경에서 오히려 강한 그리움과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지리산 아래에서 나고 자란 탓에 지리산 부근에서의 잊혀진 맛의 문화를 한번 쯤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비슷한 또래의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어렸을 때의 지리산에 관한 이야기를 내어 놓으면 도시 환경에서 자란 분들은 매우 의아해 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시대적인 환경에서 자랐어도 지리산 아래의 환경과 그 외의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의 문화가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을 그네들과의 대화속에서 많이 감지를 해 보곤 했다.



( 사진 : 서정이 흐르는 강 카페, http://cafe.daum.net/lovingriver)


잊혀진 맛의 추억속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봄이 되면 많이도 먹어 본 송구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기억을 하고 있을런지!

송구는 어머니께서 봄에 산에서 산나물이나 고사리를 꺾으러 가셔서 갖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소나무의 가지를 꺾어 와서 겉 껍질을 낫이나 칼로 살풋 벗겨 내고 나무의 목질 부분과 겉 껍질 사이에 있는 부드러운 껍질을 벗겨 먹은 것이다.

껍질을 통 채 씹어 먹는 것이 아니고 껍질의 물만 먹어 대는 것인데 소나무의 향긋한 향기와 함께 약간 달착지근하면서도 근근한 맛이 우려 나오는 그런 맛이 있었다.

간식거리가 없을 때의 그런대로 송구 하나를 꺾어다 줄 때엔 참 반가운 마음으로 송구 껍질을 벗겨 먹었던 기억이 난다. 보리고개 시절엔 먹을 양식이 없어서 송구 껍질이 아주 요긴한 음식의 재료가 되었다고 한다.

세월과 함께 송구라는 낱말 자체를 잊어 버린지 오래다.

4월이 되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솟아 나는 찔레 줄기를 꺾어 먹던 기억도 생생하다.

찔레 줄기가 땅에서 곧바로 솟아 오르는 것을 꺾어 내면 그것이 아주 통통하고 먹을 부분이 많아서 좋았다. 역시 찔레 줄기의 겉 껍질을 벗겨 내고 연한 줄기를 먹을 때 연하고 부드러우면서 상큼한 향기까지 나는 그런 찔레를 많이 먹어 보았다.

요즘도 산에 가갈 때면 찔레 줄기를 곧잘 꺾어 먹곤 한다. 아이들에게 찔레 줄기의 껍질을 잘 벗겨서 먹어 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것이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늦은 봄이 되면 잔디 사이에서 자라는 삐삐를 뽑아 즙을 빨아 먹었던 기억도 있다. 하얀 꽃이 피기 전에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즙 액을 빨아 먹는 것도 참 심심하고 무미 건조할 시절엔 그런대로 재미있는 간식거리였으며 입을 즐겁게 해주는 먹거리였다.


60년대 쯤엔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 있었던 것은 껌이라는 존재였다. 처음엔 달콤한 단물을 들이키는 재미도 있었지만 아주 오래동안 입 운동을 시킬 수 있으며 먹을 거리가 없었을 시기에 무엇인가 씹을 수 있다는 것 자체의 즐거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게 껌이었다.

문제는 그런 껌을 살 용돈이 없었기에 혹시 부모님의 귀한 용돈으로 껌 한개를 가질 경우엔 그 껌의 양을 많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

산에 가면 소나무의 송진을 떼어서 껌과 함께 씹어 대면 진한 송진의 향기가 나는 송진 껌이 되었고 적은 양의 껌을 한입 가득하게 씹을 수 있었다.

또 하나 껌의 양을 많게 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바로 밀 알을 잘근잘근 씹어 내면서 부드러운 녹말 즙액과 껌을 섞는 방법이었다.

봄이 되면 또 하나 맛 있는 간식거리가 있었는데 산의 밭가에서 잘 자라는 딱주라는 더덕 비슷한 약초를 캐어서 먹는 재미도 참 즐거웠다.

딱주라고 했지만 정확한 학면은 잘 모르겠다. 백과사전에 딱주라고 치니까 전혀 나오지 않는다. 어찌 되었건 우리들은 딱주라는 뿌리를 자주 캐어서 뿌리의 겉 껍질을 손톱으로 잘 벗겨서 하얀 속살을 맛있게 베어 먹었는데 그 딱주는 아주 단 맛과 향긋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잇는 고급 간식거리였다.

지금도 엄천골의 야산에 가면 딱주가 참 많으리라 여겨진다.

감자삼굿 해 먹기, 밀살이 해 먹기, 가재 구워 먹기등등 60년대엔 너 나 할 것 없이 야성적인 먹거리를 참 많이도 개발해 냈고 그런것이 당시의 문화였으며 전통화 되다시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주 고급으로 아이들의 입 맛을 돋궈 주는 것은 엿이었다. 마을의 주변에 가게가 있었다면 군것질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나 당시에 내가 자란 동강 마을에서는 가게까지 아주 멀었기 때문에 군것질을 하기 위해 가게까지 간다는 것은 아예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자연에서 군것질의 거리를 장만했고 그런 것에 잘 익숙해져 있었다.

혹 화계장날이 되면 어머니께서 장에 갔다 올 때 꼭 사오는 사탕 한개를 입에 물고 아껴 아껴 단물을 빨아 먹던 기억은 사치스러운 행위이기도 했다. 혹 다 식어 버린 풀 빵 한개를 얻어서는 그것을 한 입 베어 물고 아끼다가 또 아주 조금 달착지근한 맛 만 보다가 결국에 다 먹어 버리면 참 아쉬웠던 그 옛날의 기억들이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기억이리라.

누룽지와 삶은 고구마, 썩은 감자를 물에 삭여 빵으로 쪄서 만든 감자떡도 고급스러운 음식이기도 했다.

보리 겨를 체로 쳐서 부드러운 부분을 빵으로 쪄서 먹은 개 떡이라는 게 있었다. 개 떡은 가루로 존재 했을 때는 하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데 떡으로 쪄서 먹어 보면 입 안에 까끌한 느낌과 함께 아주 거친 맛이었다.

그 개떡은 아이들이 먹기 싫어 했던 것 같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옛날의 간식거리와 먹거리가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런 먹거리들을 요즘 식으로 좀 더 발전시켜 웰빙 식품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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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인 2007.11.07 17:49
    찔레순
    피비
    뱀딸
    망개
    먹땅갈
    쫑감...
    김용규님의 기억력과 감성(?)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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