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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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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지리산 아래의 아이들은 어떻게 생활을 했을까?

도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의 관점에선 참 신기한 사례일지도 모른다. 문화적 환경적 차이때문에 말이다.




옛날과 요즘은 확실히 문화의 차이가 난다. 주변 환경이 옛날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 것이다. 우리 윗 세대들이 느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변화의 환경을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 문화가 그것이고, 생활 환경의 변화, 여러 생활 도구등의 변화로 인해 가치관이나 생활 패튼도 함께 변화되어 왔다.

내가 초등학교를 거의 보낸 60년대( 64년 ~ 69년)와 지금을 새삼스럽게 비교를 해 보면 더 더욱 그런 변화의 느낌을 실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때 주로 신었던 신발은 검정 고무신이었다. 당시에 검정 고무신은 질기기로 유명하여 너 나 할 것 없이 거의 만년신이란 상표가 붙은 검정 고무신을 즐겨 신었는데 그 새 고무신도 아껴 신는다고 어떨 때는 고무신을 벗고서는 손에 쥐고 맨발로 걸어 다녔던 기억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옛날의 실화이다.

또 하나 비가 올 때 주로 손에 쥐어진 것은 비닐 우산이었다. 비닐 우산은 비닐이 얇아서 자주 찢어지곤 하였는데 요즘 같으면 비닐 우산은 1회용인데 당시에는 그것을 두고두고 사용되어진 것이었기에 대부분 한쪽이 찢어진 채로 사용되어졌다.

양산을 사용한 집은 그래도 상당히 부자라는 소리를 듣고 사는 집이었다. 그런 비닐 우산이 요즘은 완전히 없어졌다.


검정고무신 외에 신발로 주로 사용되어진 것이 바로 베 구두였다. 베 구두라는 말을 요즘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베 구두 대신에 운동화라는 말이 그 지리를 메꾸고 있는 것이다.
검정고무신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그래도 부잣집에서 주로 사용되어진 그 신발을 난 초등학교 때 딱 한번 신어 봤다. 그 베 구두는 비가 올 때 빗물이 안으로 스며 들어오는 단점이 있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거의 모두가 책가방 대신에 책 보따리를 사용하였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이 책 보따리를 사용하였는데 이 책 보따리(보자기)는 다용도로 이용되기도 했다.

학교의 화장실을 짓기 위하여 강가에 가서 모래를 운반하는 요긴한 도구로 이용된 이 책 보따리는 너무 오래 사용한 나머지 대부분 아이들이 여기 저기에서 구멍이 난 보자기를 메고 다니는 것을 목격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책 보자기는 먼 길을 오고 갈 때 간편해서 좋은 점이 많았다. 어깨에 당실히 묶어 메고서 달음박을 치기가 참 용이하기도 했었다. 양 손이 자유스러웠으니 그만큼 활동 량이 많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당시엔 가게를 대개 점방이라 불렀다. 요즘의 구멍 가게 정도였지만 당시엔 점방집의 아들은 상당히 주변의 아이들의 부러움을 받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 점방에 우리들에게 상당히 인기 있었던 물건들이 있었는데 붉은 색의 화약이 남학생들의 눈길을 많이 받았고, 여학생들에의 기호 물건은 풍선껌이었다.

60년대에 거의 전국적으로 풍선 껌 유행이 번졌다. 귀한 껌이기도 했지만 그 껌을 잘근잘근 씹다가 세련되고 기술적으로 불룩하게 풍선을 불어 대면 크게 불 줄 아는 사람은 상당히 세련된 사람으로 취급을 받기도 했다.

당시엔 공놀이도 참 즐겨한 놀이중의 하나였는데 요즘처럼 큰 축구공은 학교밖에 없었으며 그것도 허락된 시간이나 제한된 공간에서만 사용되어질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에게 주로 사용된 공은 주먹마한 고무공이었다.

그 고무공으로 강가의 공터에서나 집에서 공차기 놀이의 주 도구로 이용되었다.

축구뿐 아니라 공치기 놀이, 그 공을 지붕 위에 올려 차 놓고 내려 올 동안 숨는 숨박꼭질 놀이도 멋진 놀이였으며 그 고무공은 남학생 뿐 아니라 여학생의 공치기 도구로써도 많이 이용된 참 요긴한 놀이도구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이들은 공치기 놀이를 전혀 하지 않는다. 놀이 도구가 부족했던 시기였기에 창조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것들이 자꾸 보급되어졌는데 그 중에 즐겨 한 놀이가 사방치기 놀이었다.

소를 먹이러 가기 전 동네 정자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식힐 겸 해서 또 즐겨한 놀이가 공개놀이(공기돌 놀이)었다. 다섯 개 공기놀이도 있었고 많은 공기돌 놀이도 있었다. 당시엔 그 놀이에 귀신같이 잘 하는 아이는 항상 목소리가 컸으며, 기가 펄펄 살아 있었던 것 기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춥고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에 수없이 이루어졌던 이런 경험적인 것들이 얼마나 많이 창의적인 요소로 작용되었을까?

그런 교육 이론들을 일선에서 벌써 수십년 간 적용해보고 또 새로운 이론들을 창출해 내고 접목을 시켜 보려고 하는 과정 속에서 생각해 보건대 옛날의 이런 자기 주도적 놀이 문화가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엄청나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을 해 본다.

교육 활동 속에는 참 많이도 잠재적 교육과정을 손 꼽는다. 뚜렷이 무엇을 학습한 것은 없는데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 내면화되어지는 것을 잠재학습이라 한다.

이런 잠재 학습들이 발전적인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고 여럿이 함께 어울리는 과정속에 얻어진 인성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긍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 ?
    오 해 봉 2006.06.28 02:00
    김선생님과 저는 10년차이가 나는것 같습니다,
    60년 중1때 4.19, 61년 중2때 5.16이 났으니까요,
    그때는 모두가 가난했고 모두가 검정고무신에 보리밥을
    싸가지고 다녔답니다,
    저때는 비닐이 보급되지 않아서 반에서 2-3명 부잣집 애들만
    한지에 기름을먹인 지우산을 갖고 다녔지요,
    저희동내 에서는 남자5명 여자2명이 동창이었는데 모두 비맞고
    뛰어 다녔 답니다,
    미끌려서 논속으로 넘어지기도 하였지요,
    학교에서 집까지는 1.6km 였고요,
    비올때는 비료 포대속에 코팅된 종이로 책을싸고 책보로 2중으로
    싸면 책이 젖지 않았지요,
    3개반씩 1000명이 넘던 학생수가 지금은 50여명 이라고 하드군요,
    늦은시간 브라질과 가나의 축구를보며 뭉쿨한 회상의글을 읽었습니다,
    김용규선생님 고맙습니다.
  • ?
    로즈 2006.11.09 11:35
    세월을 뒤적여 언제적이었던가요.. 매일 새로웠던 어린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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